[미디어SR 전문가 칼럼=장혜진 시인]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시설에서 가장 목소리가 크다. 그 목소리의 울림이 마치 저 깊은 동굴을 한 바퀴 돌아서 밖으로 나온 느낌을 준다.그녀가 소리를 한번 지르면 시설 밖에까지 들릴 정도다.평소에는 애교가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의 방에 들어가거나 자신의 물건을 만진다거나 하면 비명에 가깝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한 달 조금 더 남은 올해가 지나면 그녀는 마흔이 된다. 마흔을 불혹의 나이라고 하지만, 그녀에게 불혹은 없을 것 같다.먹는 걸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아무리 큰
[미디어SR 전문가칼럼=장혜진 시인] 배추밭을 지나치면서 부터 차의 속도를 늦춘다.60㎞에서 40㎞로 또 30㎞에서 20㎞로 속도를 점점 낮추면서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로 접어든다.길 옆으로 서 있는 막 자란 풀이 열린 창문으로 고개를 들이미는데도 나는 야박하게 쌩 지나쳐간다. 출근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한다.울퉁불퉁한 자갈이 깔린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면서 부터 주변을 두리번 거리게된다.거의 아침 선생님들의 출근 시간에 맞춰 주차장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덕이씨가 어디 쯤 있는지 눈에 담으려고 찾아보니 오늘은
[미디어SR 전문가칼럼=장혜진 시인] 그날은 평소보다 퇴근이 좀 늦었다. 부랴부랴 시장(김삿갓 방랑시장)에 도착해보니 문을 닫고 있거나 이미 닫힌 상점들이 많았다.통닭집은 다행히 문이 열려 있었다.낮 시간 동안 시장 골목을 가득 채웠을 고소한 기름냄새도 손님 끊긴 저녁시간이라서 인지 옅어진 듯 했다. 막 문을 닫으려는 주인 아주머니께 통닭을 주문했다.내일 통닭 두마리가 필요한데 출근길에 찾아갈 수 있는지, 아침 8시까지 준비해 줄 수 있는지 문의했다.보통 튀김닭을 아침일찍 찾을 수 있게 주문하는 경우는 드물 것 같았고 또 많지도 않
[장혜진 시인] 오늘 7월1일, 그녀를 만난지 꼭 9개월째가 되는 날이다.일년도 채 되지않은 날들이지만 돌아보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그 첫번째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형성되는 신뢰로인해 파생되는 긍정적인 부분들, 그 긍정적인 부분이 이끌어내는 가슴벅찬 기쁨,그랬다.그녀를 처음 만나 오늘이 되기까지 짧다면 짧은 날들이지만 그녀가 보여준, 현재도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에 감동하면서 큰 기쁨을 느낀다.처음 그녀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받은 느낌은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그리하여 어느곳에도 쓰여지지 못하고 한쪽으로 비켜 놓았을
[장혜진 시인]인디언 부족 중 테와 푸에블로족은 봄이 막 시작되는 달월을 '삼나무에 꽃바람 부는 달' 이라 표현한다 더라.인디언 부족이 아니더라도 봄의 문으로 훅 들어오는 바람에 호들갑스럽게 옷깃을 여미지 않았다.이즘에 부는 바람과 햇살에서 이르다 싶으나 풋콩의 비린내가 날 듯 말 듯 하기까지 하다.겨우 한뼘자란 보리싹을 싹둑 베어서 데쳐 먹을 수 도 있는 달이고 숲속을 거닐다 보면 투두둑 툭, 잔 나뭇가지들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달이다.겨우 내 붙들고 있던 마른 가지를 내려놓거나 떠나보내는 소리들 인 것이
[장혜진 시인]올 겨울들어 처음으로 함박눈이 소복소복 쌓이도록 내렸다. 참으로 소담스럽게 내렸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어릴적 추억이있다.나 어릴적에는 겨울에 눈이 한번 내렸다하면 문밖을 나가지 못할만큼 내렸다. 그덕분에 어른이 된 지금도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눈처럼 쌓여서 오래도록 녹지않고 남아 있는지도.....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창문에 매달려 눈이 얼마나 쌓이나 하고 기다렸다.백설기떡을 찌려고 물에 불려서 빻아놓은 쌀가루 같은 눈이 하염없이 내리기를 창문에 턱을 괴고 마냥 기다렸다.들숨날숨으로 창문이 반
[장혜진 시인]어제와 오늘 하늘이 뿌옇게 흐려있다.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시골이 이정도라면 도시는 또 얼마나 더 뿌연 하늘일지 걱정이다. 도시에 나가있는 자식들을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흐린 하늘을 보다가 내 어릴적 기억이 떠오른다.희뿌연 , 그것이 나쁜 미세먼지라 해도 순간 먼 시간속 그리움을 불러내는 .....내 어릴적 겨울은 뿌연, 아니 뽀얀 안개같은 수증기로 시작되었다.겨울이 시작되면 지하실의 연탄화덕 위에 커다란 솥이 올려져 있었고 반쯤 열린 솥 뚜껑 사이로 쉴새없이 새어나오던 뽀얀 수증기가 그렇게 신
[장혜진 시인]고깔모자를 쓴 목각인형이 귀뚜라미에게 말했다.너는 왜 가만히 서 있는 내게 다가와 나를 성가시게 하는거지?목각인형의 머리위를 막 지나가며 앞날개를 비벼 소리를 내던 귀뚜라미가 대답했다.밤 낮 계속 혼자 서있는 네게 친구가 필요할 것 같아서...내가 친구해주면 캄캄한 밤 혼자 서 있어도 무섭지 않을 것 같지 않니?목각인형이 피식 웃었다.그리고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볼멘소리로 말했다.이것봐! 성가신 귀뚜라미? 네가 가을이면 찾아와서 불러대는 그 엉터리 노래에 내 귀가 뚫어질 것 같다구! 어떤날은 네 노랫소리가 오른쪽귀로
[장혜진 시인]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하는 요즘이다.분명 다름인데 나는 틀리다고 여기며 살아왔다.그리고 그 다름 인 지극히 정상적인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이유는 당연한 것이라 여겼기에..... 오늘은 웃는 모습이 정말흰색 패랭이꽃을 닮은 소녀의 두 손에 수예실을 꿴 바늘을 들려주었다.양손을 움직여서 스스로 밥을 떠 먹는 일조차 힘에 부쳐서 밥과 반찬이 담긴 식판을 받으면 작은 한숨부터 먼저 폭 내쉬는 흰색 패랭이꽃을 닮은 소녀는 내가 근무하는 시설에서는 중증에 해당한다. 벽이나 등
[장혜진 시인]나보다 다섯살 아래 지인이 작은 스텐레스 양푼에 밥을 비벼오더니 양푼째로 식탁에 올려놓고 먹자했다.그릇에 덜어먹자 했더니 비빔밥은 이렇게 먹어야 제맛이라고 크게 한수저 떠서 입으로 가져가 맛나게 먹었다.하긴 비빔밥은 그리 먹어야 제맛이란 말에 끄덕끄덕 동의를 하면서도 실은 나는 예쁜 그릇에 보기좋게 담아 먹는 걸 선호한다.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서 보기가 달라지기에..... 사실 음식을 준비하고 차리는 주부 입장에서 가장 성가신 부분이 뒷설거지다.나 역시 음식 만드는 일은 즐겨 하지만 뒷설거지는 즐
[장혜진 시인] 엄마 밥 드셨어요? 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왈칵 쏟아져…….안부를 묻는 아들의 전화 목소리만 듣고도 한없이 눈물이 나고 슬프다는 친구와 노래방을 다녀왔다.노래방 갈 일이 별로 없는 우리들 이기에 마음껏 노래라도 부르며 마음을 다스리기를 바라는 마음에 저녁을 먹고 집에 잘 있는 친구를 밖으로 나오게 한 것이다. 친구는 한달 쯤 후에 사돈이 될 집안과 상견례를 앞두고 요즘 마음이 좀 그런가 보다. 첫아들을 장가보내는 일에 벌써부터 품이 허전해 눈물 바람 잘 날 없는 요 며칠을 보내고 있다.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만나지도
내게도 애착 인형이 있었지.갈색 털을 가진 품에 쏙 들어오는 작은 곰 인형.언제부터 애착 인형이 되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이에서 소녀로 막 접어 들 때까지 품에 안고 잠들었던 곰 인형이 문득 그립다.반쯤 열어 둔 창문 틈으로 한기가 들어와 잠이 깬 새벽 같은 시간이면 더욱 그립다. 손때가 묻어 볼록한 배 부분이 맨질맨질해지고 동그란 양쪽 귀 테두리의 털이 빠져나가 볼썽사납다고 곰 인형을 볼 때마다 버리자고 성화를 부리셨던 할머니도 그립다.까만 단추 두 개를 콕 박아 놓은 것 같았던 두 눈은 에나멜 칠이 벗겨져 반짝임을 잃
[장혜진 시인]처서가 지나고 건들바람 불어주니 살 것 같다.더위를 유난히 타는 체질이라 매해 여름이 시작되기 전부터 올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까하는 걱정으로 계절을 맞이했다.아이들마냥 손가락을 펴서 여름의 시작부터 끝나갈 즈음의 개월 수 를 헤아려보며 몇개월 정도를 견디면 가을이 오는구나를 매해 헤아려보았다. 모기입이 옆으로 돌아간다는 처서가 지난지 며칠이나 되었는데 요즘 모기는 건강관리를 잘했는지 이틀 전 두곳이나 물렸다. 잎이 비뚤어져도 무는 데에는 지장이 없는가보다하긴 사람도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해야 된다지..... 모기
오늘은 깊은 잠속에 빠져들고 싶다.바람이 자꾸 커튼을 흔들며 소리낸다.강건너 기찻길. 철로를 구르는 긴 행열의 바퀴소리마저 일어나라고 보채며 지나간다.무심히 커튼자락을 걷어올리니 난간위에 앉았던 참새 한마리가 놀라 황급히 날아간다.강물을 건너다 보았다.심심한 듯 지루하게 흐르는 듯 하다.그 위로 낮에 내려오는 진초록의 거대한 새 한마리, 새의 공통이름은 ,페러글라이딩, 바람을 타고 강물위를 빙빙돈다.구름도 낮게 내려와 있구나.바깥은 저리 수런수런한데, 깊은 잠속을 헤매다 부스스 일어나 이제서야 밖이 궁금해진다.위 글은 5년 전 쓴
[미디어SR 장혜진 시인] 5년 가까이 하던 작은 음식점을 그만 둔 지 두어달이 되었다.그동안 가게를 하면서 구석구석에 내 손길이 머물지 않은 곳이 없을만큼 정성을 쏟았던 공간이라 그만 둘 때 마음이 좀 그랬다.이러했다. 저러했다. 뭉뚱그려 그랬다. 서운한 마음 반. 시원한 마음 반.시원 섭섭한 마음으로 가게를 접으면서 한가지가 좀 걸리는 일이 있었다.그게 무엇인가하면 바로 제비였다.창공을 날으는 제비 때문에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가게를 처음 시작했던 5년 전 그해 봄날에 제비 한쌍이 바깥 출입문 윗쪽 처마에 둥지를 틀
얼마 전 꽤 오랜만에 그녀를 보았다.그녀는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를 알고있었다.개인적으로 친분이 닿아있는 건 아니지만 표면적인 밖으로 드러나있는 그녀의 신상에 대해 조금은 알고있었다.이웃들이 오며가며 한 마디씩 건네주는 이야기를 들어 조합해서 알게 된 그녀의 신상이었다.오늘도 예전처럼 그녀 옆에는 그녀의 시어머니가 붙어있었다. 어쩌면 내가 오늘처럼 우연히 그녀들을 목격하지 않았던 날들에도 늘 지금처럼 옆에 착 붙어서 다녔을 것이다.그녀의 수호신처럼.....그런 이유는 몇년 전 그녀가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아침이면 대문 안쪽에 붙어있는 우편함을 들여다보는 일이 열살 즈음의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가슴 두근거리며 또 설레는 일이었다.오늘은 혹시....하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했다.우편물을 가져다주는 집배원이 이른 아침에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눈 뜬 아침이면 세수도 하기 전 우편함을 먼저 들여다 본 후에야 아침을 먹었다.커다란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대문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보는 날은 정말이지 심장 뛰는 소리가 귀로 다 들릴만큼 쿵쾅거렸다.그 쿵쾅거림에 다리힘이 다 빠질지경이었다.그러나, 겨우 열살의 어린 아이에게
그럴 것 같다.남자 인 아버지도 외로울 것 같다.남자가 아버지가 되기 전, 아니 더 더 이전, 코밑에 덜 여문 밤송이 가시같은 수염이 삐죽삐죽 돋아나기 시작하면서 가슴에도 외로움이 자라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남편이 변했다.아버지가 변했다.아니, 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속을 밖으로 조금 내보이는 것 같다.아버지라는 존재는 가족에게 언제나 든든한 기둥이여야 하기에 외롭다는 나약한 말이나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자신 스스로를 더 깊은 고립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변해가는 건 맞는 것 같다.조금씩...나는 이 남자가 노래 부르는
문득 현실의 문이 열리지 않을 때, 손잡이가 손아귀에서 헛돌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낼 때면 나는 현실의 문 옆으로 비켜서 있는 또 다른 문의 손잡이를 돌려서 연다.돌아서 가는 길처럼 손잡이가 빙그르르 돌아간다. 직선이 아닌 구불구불한 길을 걷다 보면 시간은 좀 지체되더라도 곧은 길을 빨리 걷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 그 길가에 계절이 내려앉고 또 피어나고 물드는 모습을 보며 천천히 걷노라면 숨 쉬는 일이 수월해진다.구불거리는 길 어디쯤 박혀 영영 그 자리에 붙박이가 될 운명을 타고났을 작은 돌멩이가 툭 내 발길에 차여 가슴 설레는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