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장혜진 시인 본인 제공
사진 : 장혜진 시인 본인 제공

[미디어SR 전문가 칼럼=장혜진 시인]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시설에서 가장 목소리가 크다. 그 목소리의 울림이 마치 저 깊은 동굴을 한 바퀴 돌아서 밖으로 나온 느낌을 준다.

그녀가 소리를 한번 지르면 시설 밖에까지 들릴 정도다.

평소에는 애교가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의 방에 들어가거나 자신의 물건을 만진다거나 하면 비명에 가깝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한 달 조금 더 남은 올해가 지나면 그녀는 마흔이 된다. 마흔을 불혹의 나이라고 하지만, 그녀에게 불혹은 없을 것 같다.

먹는 걸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아무리 큰 것도 한입에 다 넣어 버리고마는 식성 좋은 그녀, 매일 밤 소변 지도를 하지 않으면 이불에 실례를 하고 말지만 그래도 밉지 않다.

평소에 너무나 붙임성 있고 귀엽게 행동하는 터에 그녀에게 매료된 때문인지 소변묻은 이불을 세탁하는 번거로움 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는 서로 눈빛만 마주쳐도 어느 정도 서로가 원하는 걸 알아차리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1년 전 그녀의 담당이 되었을 때 참으로 난감했다.

낯선 이의 손길을 거부하며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게 하는가하면 눈빛만 마주쳐도 소리 지르며 거부하는 그녀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챙겨야할지 그저 막막할 따름이었다.

더구나 처음 사회복지사로서의 일을 시작하면서 담당하게 된 거주자이고 보니 앞이 캄캄했다.

그녀는 청각 장애와 지적장애가 있는 분이라 일반적인 쌍방소통은 도저히 불가능한 상태였다. 서로 소통하려면 시간을 갖고 다가가야 하는데, 마음이 급한 나는 자꾸 서두르며 다가갔다.

밤이나 낮이나 복도와 본인의 생활실에 소변을 보는 바람에 하루에도 몇 번씩 청소와 환복을 되풀이해야 했다.

지린내를 풀풀 풍기며 생활실을 오가는데 정말이지 내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내 담당이 된지 한 달이 지나도록 그녀는 나를 경계하면서도 내게 관심이 있는지 주변을 맴돌며 나를 지켜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 역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녀를 관찰했다. 낯설기는 서로가 마찬가지라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그녀가 나를 지켜보는 걸 느끼면서도 무심한 듯 행동했다.

나는 그녀의 상태와 심리를 이해하고 그녀는 나에 대한 경계심을 낮추며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배어가는 시간을 우리는 견뎌내며 한발 짝 가까워졌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 즈음에 이르자 아침에 출근을 하면 그녀가 내게 다가와 나의 냄새를 맡으며 킁킁거린다. 2층 거주자 분들의 생활실로 올라와 복도를 걸어오는 동안 내 옆에 착 붙어서 책상 앞까지 따라오며 기분 좋을 때 내는 웃음소리를 내며 눈이 안 보일 정도로 웃는다.

이렇게 되기까지 서로가 기다려 준 것이 고마웠다. 나도 그녀도.....

조금씩 내 가까이에서 서성이기 시작할 때 그녀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진심으로,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눈을 맞추고 웃어주었다. 경계심이 풀어지게 하려고 매일아침 출근하면 안아주고 개별서비스 지원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시간대 별로 소변지도를 하고 식사 후 양치질을 할 수 있도록 칫솔에 치약을 짜주며 양치하라는 시늉을 하면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따라 하고.....

그렇게 조금씩 다가갔다.

연필을 손에 쥐어주고 공책에 뭐든 써보라고 하면 "안해 안해"라고 소리치며 거부하다가 겨우 동그라미 몇 개를 그리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먼저 공책에 간단한 꽃그림을 그리고 따라 그려보라고 눈짓을 하자 그녀가 세상에나! 내 그림과 비슷하게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닌가.

그날의 그 먹먹했던 감동을 다시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그날 이후로 그녀가 기분이 좋을 때 마다 연필을 쥐어주고 그림을 그리게 하거나 감정기복으로 주변 거주자 분들에게 소리 지르거나 할 때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환경을 지원했다.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도 하면서 격해진 감정을 가라 앉힐 수 있도록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였다.

자신이 매일 그린 그림을 파일에 잘 보관하는 걸 본 그녀가 어느 날은 그림을 그려서 내게 자랑하듯 내밀며 파일을 보관하고 있는 서랍장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자신이 그림을 그렸으니 그곳에 보관해 달라는 의미로 느껴져서 그림을 받아서 파일에 끼워 넣으니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내며 다시 그림을 그렸다.

그녀는 그렇게 틈틈이 그린 꽃그림을 내게 자랑하듯이 보여주면 참 잘 그렸다며 알아듣지 못해도 칭찬의 말을 하며 안아준다. 안아주면 어쩌면 그리 폭 안기는지, 체격은 나보다 더 크면서 순한 아기처럼 안긴다.

소변 실수하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낮에는 아예 실수하지 않게 되었다. 야간에는 종종 실수를 했지만 그 역시 시간대 별로 지도를 할 경우 실수하는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지난 일 년 동안 그녀에게 쏟은 정성과 관심으로 그녀의 변화된 모습을 지켜보며 그녀와 나 자신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서툰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주고 마음을 열어 준 그녀와 포기하지 않고 애쓴 내 자신에 대한 고마움.....

눈치는 또 얼마나 빠른지, 내가 컴퓨터 앞에 앉으면 얼른 다가와서 안경을 내민다. 그리고 얼굴을 턱 밑으로 집어넣고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면서 히히히 웃는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 그리고 직장에서 내가 케어 해야 할 대상이 이렇게도 사랑스럽고 마음이 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게 된다.

요즘은 바느질도 가르치는데 잘 따라와 주고 있다. 아직은 바느질 땀이 엉성하지만, 바늘에 손가락 찔리지 않고 꿰맬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기에 그림 그리기에 이어 또 다른 도전이라고 생각하며 한 땀 한 땀 바느질 땀을 이어가며 그녀와 나 사이의 간격도 더욱 촘촘하게 좁아 질 것으로 기대하며 2층 생활실을 오르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계단 앞에 얼굴을 빼 꼼 내밀고 나를 기다리는 그녀를 만나 서로 안아주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날들이 행복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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