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제공

[장혜진 시인]

인디언 부족 중 테와 푸에블로족은 봄이 막 시작되는 달월을 '삼나무에 꽃바람 부는 달' 이라 표현한다 더라.
인디언 부족이 아니더라도 봄의 문으로 훅 들어오는 바람에 호들갑스럽게 옷깃을 여미지 않았다.

이즘에 부는 바람과 햇살에서 이르다 싶으나  풋콩의 비린내가 날 듯 말 듯 하기까지 하다.
겨우 한뼘자란 보리싹을 싹둑 베어서 데쳐 먹을 수 도 있는 달이고 숲속을 거닐다 보면 투두둑 툭, 잔 나뭇가지들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달이다.
겨우 내 붙들고 있던 마른 가지를 내려놓거나 떠나보내는 소리들 인 것이다.

씨앗을 잎을 틔우는 달인 요즘 며칠 전 시골에 다녀왔다. 고추모종을 가식하는 날에 맞춰 새참내는 일손을 거들어주러 다녀왔다
앙증맞은 떡잎 두잎을 달랑 달고  빽빽하게 붙어있는 고추 모종을 조심스럽게 떼내어서 한 포기씩 작은 포트에 옮겨심는 날  온동네 어르신들이 하우스안에 옹기종기 모여서 고개를 숙이고 조심조심 고추 모종을 가식을 하고 계셨다.

한포기를 뽑아 엄지와 검지로 슬쩍 문지르기만해도 연둣빛 묽은 풀물로 변해 버릴 것 만 같은 여린 순이 거칠고 투박한 손길에 고이 모셔저 한포기 한포기 작은 플라스틱 포트에 심겨지면서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봄햇살 가득 받으며 쑥쑥 자라서 앙증맞고 흰 꽃을 피우고 그 꽃 진 자리마다 수수알갱이 같은 열매가 다글다글 열릴것이다.
바람의 부채질과 햇살의 따뜻한 이불자락을 덮고 달빛의 자장가로 쑥쑥 자라서 반질반질 윤기나는 고추가 되겠지.....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세상 사 살아가는 일이 힘겹고 버거울 때 발 아래를 내려다 보게된다.
나의 발 아래 내 커다란 몸을 떠받들고 있는 그곳, 땅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복잡다단한 일 못지않게 나의 발 아래 세상에서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지.
내 육중한 무게에 짛눌려 압사 당하지 않고 살아내야 하는 무수한 숫자의 여린 생명의 존재들을  내려다보며 순간 숙연해진다.

그런 연유로 이 계절이면 발걸음을 옮기는 일이 조심스러워진다.
벙글벙글 핀 벚꽃에 정신이 팔려 위를 올려다보며 걷다가 발 아래 핀 노란 냉이꽃을 짓밟거나 이제 막  몽오리를 터뜨리는 보라색 제비꽃잎을 뭉게는 일이 있을까 싶어 벚꽃을 곁눈질하며 걷는다.

봄의 문이 열리고 문고리를 잡은 손이 설레임으로 떨리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이 봄을 또 맞이 할 수 있음에 무한 감사를!
이 복잡다단한 세상에 저 여린 순들과 조우할 수 있음이 기쁨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