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진 시인 본인 제공.
장혜진 시인 본인 제공.

[장혜진 시인] 

오늘 7월1일, 그녀를 만난지 꼭 9개월째가 되는 날이다.
일년도 채 되지않은 날들이지만 돌아보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그 첫번째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형성되는 신뢰로인해 파생되는 긍정적인 부분들, 그 긍정적인 부분이 이끌어내는 가슴벅찬 기쁨,

그랬다.
그녀를 처음 만나 오늘이 되기까지 짧다면 짧은 날들이지만 그녀가 보여준, 현재도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에 감동하면서 큰 기쁨을 느낀다.

처음 그녀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받은 느낌은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그리하여 어느곳에도 쓰여지지 못하고 한쪽으로 비켜 놓았을 실타래와 같았던 그녀, 스스로 뒹굴며 주변의 온갖 먼지를  뒤집어 쓴 엉킨 실타래의 모습을 한  그녀였다

살아오면서 어찌어찌 하다보니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과 가까이 접할 기회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런 내가 장애인시설에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내 입장에서는 모험에 속했다. 하얀 백지상태에서 그녀를 만난 셈이다.

그녀 또한 경력이라고는 전혀없는 완전  초짜에다가 더구나 거친 세상과 부딪혀 본 적이라고는 없이 그런대로 곱게 오십이 조금 넘게  살아 온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녀. 장애인 시설의 거주자. 난  그녀를 케어하는 생활지도사. 우리는 그런 사이로 만났다.

처음 그녀를 만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로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로 소리를 지르며 내 주변을 서성거렸다.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내 주변을 맴돌며 탐색하는 눈빛을 보냈다. 조심스럽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면 소리 지르며 휙 다른 곳으로 가버맀다가 어느새 다시 주변을 맴돌고,
그러기를 반복하며 나를 향한 그녀의 탐색전은 시작되었다

무엇을 어떻게든 해주고 싶어도 모두 거부하는 상태로 보내다가 내가 마음을 바꿨다. 기다려 보자는 쪽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낯섦음의 시간이 점차 지나고 조금씩 서로에게 동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그녀가 나를 탐색하는 시간에 나도 그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신체적 정신적 사항이 아닌 그녀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일.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의 문을 조금씩 열게 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어떤날은 아침에 출근하면서 들꽂 한송이를 꺾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물론 거부 당했다. 몸을 뒤로 빼면서 싫다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돌아섰다

그 다음날은 나뭇잎을 주워다 손바닥위에 놓아 주었더니 손을 털어서 떨어뜨렸다.
그러면 나는 무심히 다시 주워들고 향기를 맡거나 예쁘다고 혼자 좋아했다
그녀는 그런 내 행동을 자신의 방 문 틈으로 엿보고 있었다.

어느날은 과자나 빵을 사들고 가서 그녀가 내게 다가오도록 유인도 했다.
내 책상근처로 슬금슬금 다가오면 과자를 하나 주었다. 손을 내밀고 받으려하면 입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가까이 온 그 순간 가만히 안아주었다.
그러기를 반복하며 서로간에 놓인 벽을 조금씩 허물어갔다.

그녀는 청각장애와 발달장애를 가진 올해 서른 아홉의 통통한 소녀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하고 수시로 감정기복을 보이며 그 감정기복에 의해 서 소변실수를 하고 모든 의사소통을 소리지름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막무가내 거주자였다.

그런 그녀가 조금씩 달라졌다. 변해갔다.

꽃을 꺾어다주면 환하게 웃으며 꽃을 받아서 코에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그 꽃을 들고 기분좋다며 폴짝폴짝 복도를 뛰어다녔다.

내 껌딱지처럼 내가 움직이는 곳을 따라다녔다. 시설밖으로 잘 나가지 않으려해서 애를 먹었는데 손을 잡고 이끌면 밖으로 나와서 함께 산책도 하게 되었다.

산책하는 내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눈이 안보일 정도로 눈웃음을 웃으며.....

그렇게 변해가는 그녀가 이제는 그림도 그리게 되었다.
손에 연필이나 펜을 쥐어주면 그저 동그라미만 몇개 그리거나 하더니 이제는 꽃을 다 그린다.

얼마전에는 줄기와 잎을 그렸다. 기뻐서 너무 기뻐서 그녀를  꽉 세게 안아주었다.

나는 그녀를 수시로 안아준다. 눈 맞추고 웃고 볼을 만져주며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하며 화장실로 스스로 향한다. 물도 혼자 내린다.

처음 만났을 때는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일들을 척척 혼자 해낸다.
매일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 웃으면 눈이 안보이는 그녀. 정신없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나를 지켜보다가 다가와서 나의 냄새를 맡으며 안아주고 가는 그녀.

참 사랑스러운 여자다.
사람은 사랑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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