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진의 세상 풍경] 나도 한때는 아이였지.....
[장혜진의 세상 풍경] 나도 한때는 아이였지.....
  • 장혜진 시인
  • 승인 2019.08.30 16: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 : 장혜진
사진 : 장혜진

내게도 애착 인형이 있었지.

갈색 털을 가진 품에 쏙 들어오는 작은 곰 인형.
언제부터 애착 인형이 되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이에서 소녀로 막 접어 들 때까지 품에 안고 잠들었던 곰 인형이 문득 그립다.
반쯤 열어 둔 창문 틈으로 한기가 들어와 잠이 깬 새벽 같은 시간이면 더욱 그립다.
 
손때가 묻어 볼록한 배 부분이 맨질맨질해지고 동그란 양쪽 귀 테두리의 털이 빠져나가 볼썽사납다고 곰 인형을 볼 때마다 버리자고 성화를 부리셨던 할머니도 그립다.
까만 단추 두 개를 콕 박아 놓은 것 같았던 두 눈은 에나멜 칠이 벗겨져 반짝임을 잃었었지만 난 그래서 더 좋았다.
눈빛이 더 깊어진 것 같아서, 그 다정하게 깊어진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 같아서.....
 
내가 아이에서 소녀로 자라는 동안 곰 인형도 조금씩 모양이 변해갔다.
볼록하던 배는 납작해고 탄성을 잃은 솜이 눌려져서 모양이 변하는 거겠지만 나는 갈색 곰이 점점 더 좋아졌다.
애착이 깊어질수록 곰을 앉혀놓거나 품에 안고 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곰 인형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은 일이 못내 미안하다.
내 어린 시절과 사춘기 소녀 시절을 함께했는데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다니. 참 미안하게도 그저 곰이라고만 불렀었다.
이제라도 이름을 지어주고 싶으나 곁에 없다.
나의 애착 곰이.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품에 있어야 할 곰이 없었다.
땟국물 흐른다며 빨아야 한다고 또 성화를 부리는 할머니의 잔소리를 피해 집을 나설 때면 이불 속이나 옷장 속에 숨겨놓았다가 밤이면 안고 잠들었었다.
그런 내 곰이 그날 아침 일어나보니 사라진 것이다.
 
이불을 들고 찾아봐도 없었다. 온 방을 다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할머니에게 달려다 곰을 보지 못했냐 물으니 모른다고 하셨다.
그런데 할머니의 그 알 듯 모를 듯한 웃음이 입가에 번지고 있다 느끼는 순간 나는 현관문을 박차고 계단을 단숨에 뛰어 내려가 쓰레기통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쓰레기더미 속으로 갈색이 보였다. 내게 구해 달라는 듯 그 짧은 팔을 쏙 내밀고 있었다. 내 팔 역시 그때는 짧았기에 곰에게 닿지 않았다 아무리 뻗어서 휘적거려도….
 
분노에 차 다시 계단을 뛰어 올라가 할머니에게 화를 내며 곰을 꺼내 달라고 했지만 쓰례기통에 들어가서 진짜 더러워져서 안 된다는 단호한 대답뿐이셨다.
그리고 덧붙이는 야속한 말씀이 할머니도 팔이 닿지 않아서 꺼낼 수 없다고….
 
다시 현관 밖으로 나온 나는 대문의 빗장을 열고 계단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내 기억으로 아마 지금쯤의 계절이었지 싶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쓰레기를 가져가는 청소부 아저씨를 기다리는 시간이 참 길었던 것 같다. 뒤쫓아 나오신 할머니의 집으로 들어가자는 말씀에도 아랑곳 않고 고집스럽게 계단에 앉아있었다. 새로 깨끗하고 예쁜 곰 인형을 사주신다고 어르고 달랬지만 나의 곰을 버릴 수 없었다. 더구나 그 냄새나고 차가운 시멘트 쓰레기통 속에 쑤셔 박혀있다니 얼마나 더럽고 무섭고 내게 서운할까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 이른 새벽에.
 
긴 기다림 (내게는 아주 긴 기다림이었다. 얼마의 시간을 기다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었다.
청소부 아저씨가 리어카를 끌고 나타나서 네모난 철재 쓰레기통의 문을 열자 쓰레기들이 와르르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나는 그 와르르 쏟아지는 쓰레기들 속에서 나의 곰을 찾아내느라 눈에 불을 켰다.
혹시나 아저씨가 삽으로
퍼담다가 나의 곰을 다치게 할까 봐 미리 말했었다 저 속에 곰이 들어있으니 조심해 달라고 나의 곰이 있다고 구해야 한다며….
조심스런 아저씨 손길 덕분에 나의 곰은 비록 오물을 뒤집어쓰긴 했지만, 무사히 내 품으로 돌아왔다.
세제 팍팍 푼 물에 몇번이나 들락날락 목욕을 한 후 다시 내 품에 안겨 함께 잠들고 조잘조잘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나의 곰. 애착 인형.
 
그런 나의 곰이 어느 순간 어떻게 사라졌지 그 기억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미안해진다.
귀에 곰의 심장을 대고 있으면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할머니에게 달려가 들어보라고도 했었다.
곰이 살아있다고 심장이 콩콩 뛴다며.....
 
이렇게 40년 가까이 된 기억들이 그리움이 되어 돌아오는구나. 부지불식간에 찾아와 이른 새벽 다시 잠들지 못하게…….
나의 곰 넌 어디에 있는 거니.....

장혜진 시인 jmo0108@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법인명 : 주식회사 데일리임팩트
  • 제호 : 미디어SR
  • 등록번호 : 서울 아 02187
  • 등록연월일 : 2012-07-10
  • 발행일 : 2012-06-18
  • 사업자 등록번호 : 774-88-00676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영등포, 라00676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53-1 대오빌딩 5층
  • 대표전화 : 02-6713-3470
  • 대표자 : 전중연
  • 발행인/편집인 : 전중연
  • 고문 : 이종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균
  • 미디어SR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고충처리
  • 보도자료 수신처 : press@mediasr.co.kr
  • Copyright © 2019 미디어SR.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