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군 신선길 장애인시설에서 쓰는 시인의 편지

몸은 불편해도 마음은 해맑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장혜진 시인 본인 제공.

[미디어SR 전문가칼럼=장혜진 시인] 배추밭을 지나치면서 부터 차의 속도를 늦춘다.
60㎞에서 40㎞로 또 30㎞에서 20㎞로 속도를 점점 낮추면서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로 접어든다.

길 옆으로 서 있는 막 자란 풀이 열린 창문으로 고개를 들이미는데도 나는 야박하게 쌩 지나쳐간다. 출근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한다.

울퉁불퉁한 자갈이 깔린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면서 부터 주변을 두리번 거리게된다.

거의 아침 선생님들의 출근 시간에 맞춰 주차장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덕이씨가 어디 쯤 있는지 눈에 담으려고 찾아보니 오늘은 늦잠을 잤는지 시설쪽으로 올라가는 언덕 중간쯤에서 구르듯이 달려온다.

저러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내려오지 말라며 손사래를 쳐도 본척만척 내달려온다. 저 짧은 다리에 바퀴라도 달았는지 이럴 땐 엄청 빠르다

가까이 다가 올 수록 덕이씨의 표정이 더 자세히 보인다.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다. 아니 최고다. 언덕을 구르 듯 내달려 올 때 부터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다.

감정 기복이 없이 기분이 좋을때 나오는 덕이씨의 행동 표현임을 알기에....

수시로 변하는 감정에 따라 웃다가 울다가 화내는 일의 반복적 행동을 보이다가 저렇게 활짝 웃는 순간이 덕이씨가 가장 귀엽고 행복해 보이는 순간이다.
내게로 막 달려와서는 웃으며 들고있는 가방을 내 놓으란다. 

오늘은 내가 백팩을 메고 왔는데 덕이씨는 백 안에 무언가 주전부리가 있을거라는 걸 알고있다. 괜찮다고 해도 앞길을 막고 손짓을 하며 내놓으란다.

하는 수 없이 백을 건네주자 자신이 등에 메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다시 언덕을 뛰어 올라간다. 오늘 기분이 최고인지 온몸을 좌우로 흔들며 뛰어 올라간다. 뒷모습이 흡사 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개구쟁이 초등하고 1학년의 품새와 비슷하다.

귀엽다. 마흔살의 나이에 저리 천진난만할 수 있다니 .....

덕이씨는 다운증후군 장애인으로 올해 마흔살의 총각이다. 다운증후군 장애를 가진 분으로서는 건강한 편이며 비장애인의 생애주기로 비교한다면 80세 가량의 고령에 해당된다. 몸은 조금 불편하지만 마음만은 정말 해맑다. 

저리 밝고 장난꾸러기같은 모습에 나를 비롯해 시설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의 사랑을듬뿍 받는다

어제 아침에도 식사시간에 밥을 먹다말고 엉엉 울었다. 음식을 씹다가 또 혀를 깨물었기 때문이란다.

하루에 한번 정도는 혀를 깨무는데 동글동글한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밥숫가락은 계속 입으로 가져간다. 그럴 때는 머리를 몇번 쓰다듬어주면 금세 뚝 그치고 다시 웃는다.

그렇게 착하고 순한 덕이씨가 이틀 전 아침 출근시간에는 애를 좀 먹였다.
그날도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두리번 거리며 덕이씨를 찾아보니 길 건 너 벤치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덕이씨가 그렇게 앉아있다는 것은 기분이 가라앉아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럴 땐 인사도 안하고 받지도 않는다. 코앞까지 다가가서 말을 걸어도 처음보는 사람 대하 듯 맹숭맹숭하게 쳐다본다

덕이씨 앞에 쪼그려 앉아서 눈 맞추고 계속 말을 걸면서 시설로 올라가자고 손을 잡아 끌면 그제서야 덕이씨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엄마 보고 싶어..... 엄마 ....엄마 온데? 엄마 온데? 엄마 와 저기 온데....."라면서 작고 통통한 손가락을 펴서 언덕 아랫길을 가리킨다.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데 며칠에 한번 있는 일이지만 그럴 때 마다 가슴이 아파 덕이씨를 꼭 안아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준다. "엄마 와요.....엄마 오고 있데요...그러니까 올라가자...추워요 감기 걸리면 엄마한테 혼나요...가자.....가요...."라며 손을 잡아끌면 그럴 땐 또 말귀를 잘 알아들으며 "엄마 온데? 엄마 와?" 라고 물어보며 표정이 밝아지면서 따라 일어나곤 한다.

그래도 그날은 고집을 크게 부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고집을 많이 부리는 날에는 10분 가까이 마주보고 앉아서 설득해도 바위처럼 꼼짝도 않는다. 그런날은 설득하기를 포기하고 담당 선생님에게 연락해 인계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일곱명의 여자반 장애인들에게 서둘러 가야한다며 발길을 재촉한다. 덕이씨 손에 과자 한봉지를 쥐어주고 혼자 언덕을 올라오면서 몇번이고 뒤를 돌아보게 된다. 덕이씨가 어떨 때는 손을 흔들어 주기도한다 .

걱정말고 어서 올라가라고 말하는 듯 해서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하지만 느린 걸음으로 언덕을 오르게 된다. 무심결에 자꾸 뒤돌아보면 "엄마 온데!"라며 환히 웃는 덕이씨의 목소리가 자꾸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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