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화·DB하이텍, 자사주소각 주주제안
안건통과 두고 대주주 국민연금 의결 관심
KT&G에 자사주소각 제안한 행주펀엔 '반대'
회사측 자사주소각 안건엔 '찬성'한 국민연금
시장에선 "국민연금은 회사측 거수기" 비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사옥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사옥

[데일리임팩트 박민석 기자 ] 국민연금이 유독 주주들이 제안한 자사주 소각 안건에만 반대 표를 던지는 가운데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해당 안건에 대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에 관심이 쏠린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과 DB하이텍은 각각 행동주의펀드와 주주연대로부터 올해 주주총회에서 자사주소각 관련 안건을 상정해줄 것을 제안 받았다. 두 기업 모두 국민연금이 지분을 10% 가까이 보유한 대주주로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달 박철완 전 상무와 연합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으로부터 △정관 일부 변경의 건(주주총회 결의가 있는 경우 자사주는 이사회 결의 없이도 소각) △자사주 소각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의 건 등 3건을 제안 받았다.

차파트너스는 금호석유화학이 보유한 발행주식 대비 자사주만 524만주(18%)에 달한다며, 주가 저평가 원인으로 미소각 자사주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차파트너스는 정관 변경을 통해 주주총회 결의만 있으면 이사회 동의 없이도 자사주 소각이 가능하게끔 바꿀 계획이다. 또한 정관변경 이후 자사주를 연말까지 50%, 내년에 남은 50% 소각할 것을 제안했다.

김형균 차파트너스 본부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미소각 자사주는 기업 저평가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라면서 "금호석화가 과거에 자사주 처분 가능성을 발표했는데 이는 주가가 저평가 받는 배경"이라고 말했다.

DB하이텍도 최근 소액주주연대로부터 자사주 소각 여부를 주주총회서 결정하는 정관변경과 자사주 소각 안건을 제안 받아 안건으로 상정했다. 현재 DB하이텍은 유통주식 수 대비 자사주 272만주(6.14%)가량 보유 중이다. 

자사주 소각은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발행 주식 수를 줄여 주주 가치를 제고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자사주 소각은 이사회 결의 사항이기에, 사측이 소각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에 최근 주주들은 정관 변경을 통해 주주총회에서 자사주 소각을 논의할 수 있도록 바꾸려는 것.

다만 주주들이 제안한 자사주 소각 관련 정관변경이 주주총회를 통과하기 위해선 '큰손' 국민연금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관변경은 특별결의 안건이기에 주주총회에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2/3 이상과 발행 주식총수의 1/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자사주 소각 두고 사측이 제안하면 '찬성'-주주가 제안하면 '반대'

현재 국민연금은 금호석유화학과 DB하이텍 지분 각각 9.27%, 9.18%를 보유한 대주주다. 결국 정기주주총회에서 대주주인 국민연금의 표심이 캐스팅 보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국민연금은 이전부터 주주들이 제안한 자사주 소각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사측이 제안한 안건엔 찬성하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실제 지난해 정기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펀드 FCP(플래쉬라이트캐피탈)가 KT&G에 제안한 자사주 소각 결정 방식 관련 정관 변경 안건에 국민연금은 '과도한 주주 제안'이라며 반대 한 바 있다. 결국 국민연금 반대 여파에 따라 해당 안건은 부결됐고, FCP가 KT&G에 제안한 자사주 전량 소각 안건도 자동 폐기됐다.

작년 3월 대전 KT&G 인재개발원에서 '제36기 정기주주총회'가 진행 중이다. 사진. KT&G
작년 3월 대전 KT&G 인재개발원에서 '제36기 정기주주총회'가 진행 중이다. 사진. KT&G

국민연금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KT&G 정관변경 안건은 수탁자책임위원회에서 개별 위원들이 토론을 통해 결정한 사안"이라며 "세부 반대 사유는 공개가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외에서 사측이 제안한 자사주 소각 안건에 대해선 우호적으로 의결권을 활용했다. 국민연금은 지난 3월 삼성물산이 정기주주총회에서 제안한 129만5411주(1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안건에 찬성했고, 이어 6월 동원산업이 임시주총을 통해 보유한 350만주(약 1600억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결정한 안건에도 역시 찬성표를 던졌다.

해외에서도 사측이 제안한 자사주 소각 안건엔 찬성표를 던졌다. 김 본부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노보노디스크, ING, ASML, 줄리우스베어 등의 사례로 제시하며 "국민연금은 해외투자 기업의 2023년 정기 주총 자사주 소각 안건에 대해 모두 찬성했다"며 "이번에 반대한다면 모순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국민연금의 제안 주체별 자사주 소각 안건에 대해 의결권 행사 방향이 다른 이유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하 수책위)' 논의 여부에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일반적인 국내와 해외 의결권 행사 방향은 기금운용본부에서 결정하지만 주주제안에 따른 자사주 소각, 문제 이사의 선임 등과 같이 논의가 필요한 주주제안 안건 일부는 수책위에서 결정한다.

수책위 구성원은 총 9명으로 각각 지역가입자단체, 사용자단체 및 근로자단체가 각 3인을 추천으로 구성된다. 특히 지난해 구성된 수책위 2기에는 기업 친화적 성향의 위원들이 늘어나 경영진에 친화적인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사측에만 우호적인 국민연금 표심...올해도 주총 거수기?

국민연금이 자사주 소각에 대해 사측이 제안한 안건에만 찬성하는 것을 두고 '사측 거수기' 라는 비판도 나온다.

자사주 소각이 상장사 주가상승으로 이어져 기금 수익률 제고에 영향을 미치는데도, 주주들의 제안에만 반대표를 행사해 수탁자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국민연금은 의결권을 보통 투자 기업 경영진의 의사를 존중하는 경향이 있어 주주총회에서 '사측 거수기' 라는 오명이 항상 따라 붙는다"라며 "2017년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 후 반대 의결권 비율이 높아지긴 했으나, 타 주주들의 권리보다 경영진을 고려하는 성향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기금 수익률이 중요한 국민연금이 자사주 소각을 제안 주체에 관계 없이 찬성표를 던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지난 한 해 동안 자사주를 가장 많이 소각한 메리츠금융지주(5889억원)와 KB금융지주(5717억원) 의 연간 주가는 각각 42%, 13%씩 상승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