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가 전종만 씨

은퇴 전부터 도보여행을 해왔다는 전종만 씨를 선유도 공원 근처 한강변에서 만났다. / 사진 = 구혜정 프리랜서.
은퇴 전부터 도보여행을 해왔다는 전종만 씨를 선유도 공원 근처 한강변에서 만났다. / 사진 = 구혜정 프리랜서.

[데일리임팩트 권해솜 기자] 도보여행을 자주 한다기에 인터뷰 장소를 선유도 공원 근처 한강변으로 정했다. 작은 배낭과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타난 전종만(62)씨. 만나고 나니 목적지를 향해 걸어야만 할 것 같다. 공무원 생활 35년을 마치고 은퇴한 지 이제 1년 8개월. 50이 되고부터 인생이 생각보다 즐겁다는 걸 깨달았고, 은퇴 후 삶은 생각보다 더 신난다고 그는 말했다. 도보여행의 즐거움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마라톤과 산행 대신 택한 도보여행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길은 다 다녀본 거 같아요. 한강 주변은 코스가 참 잘 돼 있어요. 미사리에서 당산역까지 걸으면 8시간 정도 걸리더라고요.”

전씨는 2021년 양천구청에서 건설관리과 과장으로 정년을 맞이했다. 기자를 상대하고 관할 구 전반을 대내외에 알리는 홍보과에서 7년 일했고, 주민센터에서 동장으로도 활동하며 주민들과 오랜 시간 함께했다. 구청 내 직원은 물론 여야 구의원, 주민들까지 두 팔 벌려 전씨를 환영할 정도로 평판 좋은 인물이다. 퇴임 이후에도 쉴 틈이 없다. 그의 SNS를 보다보면 신출귀몰하다 싶을 정도로 다양한 장소를 다니는 걸 알 수 있다.

“내년 4월에는 도보여행가의 성지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동료 두 명과 함께 걷습니다. 은퇴하고 나니 긴 시간 유럽에도 갈 수 있게 되는군요. 한 50일도 체류할 것 같고, 주변에 좋다는 곳도 여행할 계획이에요. 다녀오고 나면 은퇴 후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실행에 옮길 준비를 할 겁니다.”

전국을 다 가보자며 '행복한 뚜벅이' 동아리를 만들었다. 강원도 태백에서. / 사진 = 전종만.
전국을 다 가보자며 '행복한 뚜벅이' 동아리를 만들었다. 강원도 태백에서. / 사진 = 전종만.

도보여행은 은퇴 전부터 해왔다. 마라톤도 좋아했고, 산도 좋아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다리도 걱정되고,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니 걷기가 제일이었다.

“현역이던 2015년쯤 도보여행 사내동아리를 먼저 만들었습니다. ‘행복한 뚜벅이’라고 이름 짓고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어요. 당시 15명이 모였고, 여행가 한비야가 국내여행했을 때의 코스를 골라 걸었습니다. 지금은 은퇴자와 현역이 함께 움직이는 동아리로 한 달에 두 번 정도 모이고 있어요.”

이들의 첫 여행지는 섬진강이었다 섬진강 발원지인 데미샘에서 광양제철소까지 150km를 열댓 명이 함께 서울을 벗어나 걷고 또 걸었다.

“한 번에 걷지는 못하고 봄·가을로 나눠서 5일씩 열흘 갔습니다. 걷는 길은 물론 좋고, 밤에는 특히 반딧불이를 볼 수 있더라고요. 섬진강 줄기에 골짜기가 생각보다 아주 많거든요. 장관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제가 살면서 봤던 풍경 중 손에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물안개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영원히 잠들어도 될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황홀해요.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00km도 걸었고요. 현직일 때는 한 달에 한 번씩 1박 2일 혹은 휴가 등으로 시간을 내어서 종주했습니다.”

미얀마 껄로(Kalaw)에서 만난 아이들. / 사진 = 전종만.
미얀마 껄로(Kalaw)에서 만난 아이들. / 사진 = 전종만.

전국을 다 가보자는 것이 ‘행복한 뚜벅이’의 콘셉트였다. 혹시나 외국에 가게 되면 오지를 찾아 떠나자는 의견이 있어 2018년에 미얀마 껄로로 향하게 됐다.

“3일 동안 72km를 걸었습니다. 껄로가 오지이기는 하지만 다른나라 사람들도 많이 오는 트레킹 코스였어요. 가기 전부터 미얀마에 가면 그곳 학교에 기부도 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갖자고 했습니다. 출발 전까지 한 달간 물품을 모았어요. 아이들에게 줄 연필, 티셔츠 같은 거요. 홍보하려고 만든 볼펜이나 연필들 질이 좋잖아요. 우리는 잘 쓰지 않는 것인데 말이죠. 선물로 줬더니 너무 고마워하고 좋아해줬습니다. 이후에 베트남이건 어디건 다니고 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다 무산됐죠.”

지금도 꾸준하게 걷는다는 전씨는 예전에 비해 한 번에 걷는 길이를 줄였다고 했다. 이제 조금은 즐길 수 있어서라고 말했다.

“한 번에 30km에서 50km 정도 걸었는데 요즘은 좀 줄여서 20km 내외로 걸어요. 그땐 정말 걷는 게 목적이고 걷는 행위에만 치중했던 거 같아요. 자주 걸어서 그런지 이제는 여유도 생기고 지금은 조금 즐길 줄을 알아서 20㎞ 내외가 된 거죠. 도보여행은 다니면 다닐수록 매력적입니다.”

국내는 안 갔다 온 곳이 없을 정도지만 여행은 물론 건강을 생각해서 걷고 있다. 혼자서도 걷고, 여럿이 함께 걷는다. 그와 아내는 원래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살아왔지만, 그래도 함께 걷지 못하는 게 그로서는 나름대로 아쉽다고 한다.

전씨는 우리나라 길 중에서도 추천하고 싶은 길이 있다면, 바로 남해바래길이라고 했다. “4월에도 다녀왔어요. 제가 이 길을 참 좋아하는데 총 240km라고 해요. 제주올레길과 비교하자면 제주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면서 걷지만, 남해바래길은 섬과 섬들이 다 연결돼서 섬도 보고 여수도 보이고요. 사람 사는 공간과 자연이 다 접목돼 있어요. 음식도 다 너무 맛있어요. 경상도 음식이 맛없다고 하는데 남해는 달라요. 진짜 맛있더라고요. 아직 완주를 못 해서 가을에 또 한 번 가려고 합니다.”

걷고 또 걷다보니 일반여행과 도보여행 사이에 차이점도 있었다. 바로 먹는 것에 대한 갈망의 차이였다.

“일반여행은 이동하다가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도보여행은 그렇지 않아요. 길을 걸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편의점을 많이 이용합니다. 음식점에 들어갈 필요가 없어요. 어떨 때는 음식을 안 먹고도 하루 종일 걸어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물만 먹어도 그냥 걸을 수 있더라고요. 걷고 있다는 자체가 너무 좋아서 그런 거죠. 물론 걷기가 끝나면 어딘가에 가서 맛있는 걸 먹지만, 걷는 그 시간 동안에는 꼭 뭘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하게 됩니다.”

전종만 씨가 양천구청에 있을 때 만든 '행복한 뚜벅이'는 은퇴자와 현역이 함께하는 동아리가 됐다. / 사진 = 전종만. 
전종만 씨가 양천구청에 있을 때 만든 '행복한 뚜벅이'는 은퇴자와 현역이 함께하는 동아리가 됐다. / 사진 = 전종만. 

은퇴 후 달라진 세상을 보는 시선

여행에 눈을 뜨고 보니 꼭 멀리 가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 주변을 다니고, 혼자 훌쩍 떠나니 일상의 공간도 여행지가 됐다.

“친구들하고 서울에 살면서 하는 서울여행도 해봤습니다. 가고 싶은 지역에 방 하나 얻어놓고 진짜 여행자가 되어서 서울을 둘러보는 거죠. 최재원 작가의 ‘작은여행,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옆 동네, 가까운데 안 가본 곳에 가서 새로운 발견도 하고 말이죠. 호텔에서 짐을 풀고 저녁에 나와서 인사동 이런 곳에서 밥을 먹어요. 다음 날 북촌, 인사동, 경복궁 돌아다니는 것도 좋았습니다. 때로는 혼자서도 길 밖을 나가기도 합니다. 제 차를 가지고 나가서 요즘 흔히 말하는 ‘차박’을 해요. 암튼 도보여행 이후 다닐 곳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다양한 지역을 다니고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내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후 시작한다는 특별한 계획에 대해서도 전씨는 들려줬다.

“퇴임하고 나서 바로 성공회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해 사회복지상담을 전공하고 있어요. 동기들과 함께 노인돌봄 분야 협동조합을 만들려고 합니다.”

동장 생활을 하다보니 주민들이 사는 모습을 많이 접하게 됐고, 노인들에게 말벗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가가호호 방문해 보면 아무 말도 없이 하루를 보내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일할 당시 수요 조사를 해보니 80%가 말벗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협동조합을 만들어 어르신을 위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해 볼 생각입니다. 말처럼 쉬운 건 아니지만요. 걷고 여행하는 건 생활의 일부이자 취미이고 활력소입니다. 나만의 힐링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보탬이 되는 은퇴생활을 해나갈 수만 있으면 바랄 게 없습니다.”

한참 도보 여행에 관한 얘기만 듣다가 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니 너무 인생설계를 꽉 차게 만든 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렇지 않아요. 은퇴 이후 활동은 제가 즐겁기 때문에 선택한 거잖아요. 매일 이걸 다 하고 사는 건 아니니까요. 도보여행과 협동조합 설립 외에도 캘리그라프도 하고, 연극 낭독모임에도 나가고, 글도 쓰고, 책 읽는 걸 좋아해서 도서관에 앉아서 책을 읽기도 합니다. 비율로 따지자면 도보여행은 제 은퇴생활에 있어 20% 정도로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퇴직하고 나니까 굉장히 행복해요. 뭔가 더 하고 싶고 그렇습니다.”

도보여행을 언제까지 하고 싶으냐고 물으니 “죽을 때까지”라고 말하는 전씨.

“스페인 다녀와서 하고 싶은 일도 추진하고, 또 아직 가보지 않은 오지에도 가봐야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또 걸으러 나가야죠. 퇴임한 지 2년도 안 됐으니, 잉크가 아직 마르지도 않은 상태입니다. 더 멋진 제2 인생을 위해서 즐겁게 살아갈 겁니다.”

은퇴하기 5~6년 전부터 준비를 했지만, 현실은 또 달라서 매일이 도전이고 할 일이 태산이라는 전씨. 취미를 살리면서 은퇴한 공직 시니어로서 사회에 보람있는 역할을 해나가려고 한다.

전종만 씨는 유쾌한 사람이다. 30년 넘게 공무원 생활을 했다지만,  유연하게 사람들과 잘 섞일 줄 안다. 은퇴하고 2년이 다 돼가는 그의 인생에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까 궁금하다. / 사진 = 구혜정 프리랜서.
전종만 씨는 유쾌한 사람이다. 30년 넘게 공무원 생활을 했다지만,  유연하게 사람들과 잘 섞일 줄 안다. 은퇴하고 2년이 다 돼가는 그의 인생에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까 궁금하다. / 사진 = 구혜정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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