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영상과 함께 사는 시니어들

'중년 엄마 춤바람 브이로그'라는 제목의 영상. / 사진 = 유튜브 채널  '조신후의 콘텐츠 시니어랩' 갈무리.
'중년 엄마 춤바람 브이로그'라는 제목의 영상. / 사진 = 유튜브 채널  '조신후의 콘텐츠 시니어랩' 갈무리.

[데일리임팩트 권해솜 기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은퇴는 사회로부터의 고립이었다. 죽는 날을 잡아놓은 것도 아닌데 ‘여생을 산다’라는 말로 은퇴 이후의 삶을 표현했다. 요즘 은퇴는 의미가 많이 달라 보인다. 일하느라 지금까지 억눌렀던 욕구를 풀거나,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을 즐기는 분위기다. 늙어서 서러운 게 아니라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또 멋지게 살아가는 시니어들을 찾아봤다.

함께 연기하고 발산하는 남녀

유튜브 같은 동영상 사이트를 들여다보면 몇 년 전과는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예전에는 한 명의 영상 제작자(크리에이터)가 화면에 나와 시청자와 일대 일로 대화하는 구도였다. 이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해 드라마나 개그 콘텐츠를 선보이기도 하고, 같은 안무를 여럿이서 추는 등의 도전(챌린지) 영상을 올려놓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콘텐츠가 많아지고 다양해지다 보니 이를 따라 하는 채널이 새롭게 생겨났다. 지난 5월 유튜브에 개설된 ‘조신후의 콘텐츠 시니어랩’은 대단히 많은 구독자를 보유했다거나 인기가 급상승한 영상은 없지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주체가 시니어다. 눈으로만 유튜브 콘텐츠를 소비하던 이들이 실제 카메라 앞에 서서 숨겨왔던 끼를 발산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유튜버 랄랄의  노래에 맞춰 춤추거나 성형외과 진료를 보는 의사 등 다양한 소재의 콘텐츠를 시니어배우들이 소화하고 있다. / 사진 = 유튜브 채널  '조신후의 콘텐츠 시니어랩' 갈무리.
유튜버 랄랄의  노래에 맞춰 춤추거나 성형외과 진료를 보는 의사 등 다양한 소재의 콘텐츠를 시니어배우들이 소화하고 있다. / 사진 = 유튜브 채널  '조신후의 콘텐츠 시니어랩' 갈무리.

채널에 등장하는 이들은 광태시니어예술단 소속 시니어배우다. 유튜브 기반 웹드라마나 숏 무비(이야기를 짧게 구성한 영상) 출연은 물론 연극 공연도 한다. 특히 유튜브로 송출되는 웹드라마와 숏 무비는 내용에 따라 오디션을 매번 거쳐야만 콘텐츠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 명연기라고는 할 수 없지만 새로운 환경과 직업에 도전하는 이들의 풋풋함이 느껴진다.

한창 인기 있는 유튜버 ‘랄랄’이나 개그맨 강유미의 ASMR(속삭이듯 말하거나 소리를 내는 콘텐츠) 인기 동영상을 시니어 분위기로 패러디한 점이 흥미롭다. 이들이 따라 만드는 대상의 성격이 강한 만큼, 카메라 중앙에 자리 잡고 화끈하게 자기를 표현한다.

이 채널에서 만드는 콘텐츠 중에는 지금 시니어 세대의 이야기도 있다. 살면서 몰랐던 부모 세대의 또다른 생활 혹은 현재 나보다 어린 과거의 나와 만난다는 콘셉트 등 시니어의 시각으로 발견하고 알리는 활동이 참신하게 다가온다.

5060 모여 셔플 댄스 추는 ‘댄싱다연’

‘광태시니어예술단’이 연기에 집중하는 시니어라면, 춤에 진심인 시니어도 있다. 계속해서 통통 뛰며 몸의 방향을 바꾸면서 추는 셔플댄스, 마이클 잭슨 ‘춤’ 하면 떠오르는 ‘문워크’ 등 눈으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어려운 춤에 빠진 ‘댄싱다연’이다.

'댄싱다연' 채널의 쇼츠영상. 셔플댄스를 추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공연팀과 쉘위셔플이 모여서 춘 영상도 보여준다. / 사진 = 유튜브 채널 '댄싱다연' 갈무리. 
'댄싱다연' 채널의 쇼츠영상. 셔플댄스를 추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공연팀과 쉘위셔플이 모여서 춘 영상도 보여준다. / 사진 = 유튜브 채널 '댄싱다연' 갈무리. 

'댄싱다연'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고 5060 중년여성에게 인기가 높다. 2020년에 유튜브를 개설했으며, 10만 명 넘는 구독자가 댄싱다연을 따른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구독자) 수도 4만8000명이니 비연예인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녀의 영향력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인기에 힘입어 중년공연팀 ‘셔플 오십스’, ‘쉘위셔플’ 등 이벤트를 만들어 춤을 추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교류한다.

댄싱다연이 SNS에 올리는 영상에는 함께 만나 춤을 추는 영상도 있지만, 전문 댄서들이 춤추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만드는 학습 프로그램(튜토리얼) 영상이 많다. 발이 가는 방향, 몸을 트는 방법, 손동작 등을 천천히 시연한 뒤 리듬에 맞춰 동작을 종합해서 보여준다. 그녀는 셔플을 완벽하게 추는 전문 댄서는 아니다. 영상 자막에도 ‘이 동작이 잘 안 된다’, ‘멋있게 보이지는 않는다’ 등 자신도 도전 중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도 댄싱다연이 5060 중년 여성에게 귀감이 되는 건 ‘자신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같이 하면 나도 저 사람처럼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 말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과 옷을 맞춰 입고 거리로 나가 평소에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생소한 춤을 출 수 있는 용기를 댄싱다연이 심어준 셈이다.

올봄 인터뷰했던 윤유선 독립서점 화서가 대표는 셔플댄스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댄싱다연의 영향이었다고 했다. 윤씨는 “전문 댄서도 아닌데 나와 비슷한 나이의 여성이 노력하는 모습에 자신감을 얻었고, 언젠가 도전하고 싶다”고도 고백했다. 

시간이 갈수록 실력도 늘고 스타일도 멋져지고 있는 '60대 주유소 사장님'(가운데) / 사진 = 유튜브 채널(위)과 틱톡(아래) ‘춤추는 명상러’.
시간이 갈수록 실력도 늘고 스타일도 멋져지고 있는 '60대 주유소 사장님'(가운데) / 사진 = 유튜브 채널(위)과 틱톡(아래) ‘춤추는 명상러’.

'60대 주유소 사장님'의 아이돌 댄스

최근 쇼츠(짧은) 영상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60대 주유소 사장님’은 틱톡과 유튜브 등에서 활동하는 ‘춤추는 명상러’와 협업하고 난 뒤 인기 상승 중이다.

'60대 주유소 사장님’은 2012년에 ‘윌리TV’ 채널을 유튜브에 개설해 활동을 하지만, 평범한 일상을 올리는 정도다. 채널 초기에 춤을 찍어놓은 영상이 있기는 하나, 본인이 나오지는 않고 다른 사람들을 찍은 영상이 대부분이다. 본인 채널에는 잘 등장하지 않으나 ‘춤추는 명상러’ 채널에서는 개성 넘치는 모습으로 인기 안무를 소화하고 있다.

특히 아이돌의 신곡이 나오면 며칠 안 가 그 노래에 맞춘 안무 동영상을 올리는데, 날이 갈수록 춤 실력이 늘고 있는 것이 볼 만한 점이다. 김완선 춤을 비롯해 여자 아이돌의 춤도 거침없이 소화해낸다. 주유소 사장님이라는 직함에 걸맞게 주유소에서 꽤 많은 영상을 찍었다. 다양한 세대와 어울려 춤추는 영상도 있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도 해준다. 무엇보다 갈수록 스타일이 젊어지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새롭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이들이니 언젠가 지상파 방송에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예전 같으면 나이 들어 무슨 꼴인지 망측하다는 소리를 들었겠지만, 지금은 자기 모습을 멋지게 꾸미고 자신감을 뽐내는 시대, 시니어도 도전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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