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고흥만' 사장님 이명자 씨 

"파란 통 안에는 뭐가 담겨 있을까요?" 수족관 안에 들어갈 바닷물이라고 했다. 수족관에 있는 생선이며 낙지가 손님상에 오르기 전까지 최대한 신선하게 유지하고 싶어 꼭 생선 트럭이 오면 담아 놓는다. / 사진 = 구헤정 프리랜서.
"파란 통 안에는 뭐가 담겨 있을까요?" 수족관 안에 들어갈 바닷물이라고 했다. 수족관에 있는 생선이며 낙지가 손님상에 오르기 전까지 최대한 신선하게 유지하고 싶어 꼭 생선 트럭이 오면 담아 놓는다. / 사진 = 구헤정 프리랜서.

[데일리임팩트 권해솜 기자] 대단한 모성애의 소유자다. 소리내  웃고, 만나는 모든 이에게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다. 그녀가 내놓은 반찬 하나 하나에도 이야기가 있다. 텃밭에서 키운 배추와 무 등으로 만든 김치, 소화에 좋은 보리수효소, 전남 고흥에서 올라온 유자 막걸리 등 그녀의 손을 거쳐 가는 음식에는 그냥 대충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완벽함을 추구하는 삶에는 이웃과 함께하는 봉사도 자리하고 있다. 전라도 향토 음식 전문가 고흥만 사장님이 아닌 봉사 전문가로서 이명자씨(65)가 궁금해 잠시 자리를 내어달라 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인생을 한번쯤 돌아보는 시간과 마주하니 길고 긴 여정 속 희로애락이 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새벽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도시락 나가는 날이거든요.”

서울 중구 필동에서 전남 고흥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고흥만’ 사장님 이명자씨는 매일 하루 바쁘지 않은 날이 없다. 식당 주인으로서 돌볼 일도 많지만 이 동네 통장으로서 골목 안 상인들과 함께하는 어르신 도시락 봉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 코로나로 사람들 발길이 뚝 끊겼던 2021년, 서울 중구 골목상권 소상공인 살리기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골목 상점가 지원 조례’가 제정됐다. 

“코로나 때 상인들 정말 어려웠어요. 우리 식당은 단체 손님이 많이 오는 곳인데 4명 이상 손님을 받지 못할 때도 있었잖아요. 그때 중구청에서 골목 상권 살리기라는 게 있다면서 관내 독거 어르신과 인근 장애인 혹은 특수학교 시설 등에 밥차와 도시락 봉사를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주셨어요. 이미 구청은 물론 대기업 복지재단에서도 나서서 지원을 약속했답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어요. 여기 골목 상점 상인들과 의견을 나누고 나서 힘든 시기에 한번 힘을 모아보자고 한 겁니다. 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떡볶이도 하고 잡채밥도 해주고, 불고기, 탕수육도 해주고요. 그런데 다녀보니까 도움이 필요한 곳이 참 많더라고요.”

성남 복지학교, 남산 여명학교를 비롯해 광명, 안산 성남 등 일주일에 한 번 밥차 봉사를 하러 다녔다.  

“어쩌다 보니 총회장처럼 이 일을 하게 됐습니다. 저는 식당에 일하는 식구들이 있으니까, 혹시 밥차나 어르신 도시락 반찬 당번인데 손이 모자라면 얘기해라, 내가 가서 해줄 테니 그랬죠.”

서울 한복판에서 봉사하다 보니 동참하겠다는 기업이나 개인이 연락을 해왔다. cj제일제당이 ‘햇반’, 오뚜기는 ‘3분요리’, 한국투자공사는 플라스틱 도시락을 열탕 소독할 수 있는 스테인리스 도시락으로 바꿔줬다.  

식당 입구에서 '효사랑가게'라는 문구를 보니 어르신들을 위한 도시락 반찬 봉사를 하는 곳이 맞구나 싶다. 사진 속 도시락은 새지 않는 플라스틱 통이나 최근 한국투자공사 후원으로 스테인리스로 바꿨다. / 사진 = 권해솜 기자.
식당 입구에서 '효사랑가게'라는 문구를 보니 어르신들을 위한 도시락 반찬 봉사를 하는 곳이 맞구나 싶다. 사진 속 도시락은 새지 않는 플라스틱 통이나 최근 한국투자공사 후원으로 스테인리스로 바꿨다. / 사진 = 권해솜 기자.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보내드리는 반찬 도시락 봉사는 정말 우리 골목 상인들이 열심히 하고 있어요. 한 번 받으시면 2~3일 정도 드실 수 있는 양으로 보내드립니다. 어르신들에게 반찬 배달을 합니다. 지원 대상 어르신 중 병원에 가거나 자식 혹은 가족 방문을 하는 등 집을 비우기도 하시니까 매번 똑같지는 않지만 50명 전후로 보시면 됩니다.”

그냥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반찬이기는 하지만 신경을 많이 써서 담는다. 예쁘게, 푸짐하게 담아 놓으면 보기도 좋고 먹을 때도 기분이 좋아서다. 다 드시고 돌아온 도시락 반찬통에는 ‘맛있게 잘 먹었다’는 감사 편지도 들어 있었다. 도시락을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있으니 대충 할 수 없어 최대한 마음을 담아 드리겠다고 다짐한다.

“식당에 오셨던 손님들 중에도 테이블 위에 쌓아둔 도시락에 대해 궁금해하시다가 뭐 도와줄 일이 없냐고 묻는 분도 더러 있습니다. 곧 귤을 보내주겠다고 하신 분도 있어요. 이렇게 봉사를 위해 써달라고 보내주시면 최대한 필요한 분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잘 전달해 드립니다.”

살면서 봉사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인 시니어를 많이 만나봤지만, 이씨처럼 뭔가 전문적인 느낌을 풍기면서 골목 상인을 효율적으로 조직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까 싶다. 큰오빠가 대학 공부시켜주겠다고 해서 서울로 온 이씨는 고향 고흥에서 중학교 다니던 막내동생까지 서울로 올라오게 해 어머니 대신 동생들 뒷바라지하며 살게 됐다. 아끼고 아껴야 한 달을 겨우 버틸 수 있는 남매들의 서울살이였지만, 한편으로는 봉사하는 삶에 대해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고 했다. 

“첫 직장인 노동부에 다니다가 개인 회사로 옮겼는데, 사장님이 마침 지역 라이온스클럽 회장직을 맡고 계셨어요. 사장님이 저에게 혹시 오지 마을에 기부할 곳이 없냐고 물어보시기에 제가 다닌 고흥 도덕초등학교를 소개해 드렸어요. 학교에  마침 밴드부가 있었는데 악기를 전부 바꿔주셨더라고요. 저는 서울에 있으니까 고흥까지는 못 가고 악기 기부식 같은 걸 할 때 아버지가 참석하셨는데, 교장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정말 고맙다고 하셨대요. 지금도 그 인연이 이어지고 있어요. 제 나이 스물네 살이었는데 그때 처음 봉사를 알게 됐어요.”

돈으로 하는 봉사가 있다면 돈 없이도 할 수 있는 봉사를 찾다가 보육원 빨래 봉사를 하게 됐다는 이씨. 안양 유원지 근처 보육원에도 가보고, 소년원에도 가봤다. 전농동, 휘경동에 있는 보육원에서는 아이들을 재우고 빨래도 개주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살던 곳에 먼지가 너무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마스크는 없었고 요리할 때 머리에 쓰는 얇은 삼각형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고 다시 빨래를 개고는 했어요.”

결혼하고 딸아이가 중학교에 다닐 때 다시 봉사활동을 하게 됐고 좀 더 본격적인 활동으로 접어들게 됐다. 

“특히 우리 딸이 구리 수택고등학교를 다닐때 제가 경기도교육청 북부청사에서 총괄봉사단장을 했습니다. 숙명여대 미래교육원에 학부모 몇명이 같이 가서 자원봉사 수업도 듣고요,  자원봉사에 대해서 좀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각 학교에 한국 시민 자원봉사센터가 있는데 마침 아이가 다니던 학교가 시범 봉사학교가 됐어요. 자원봉사단 단장으로서 북부지역 중학교에 가서 자원봉사는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수업도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봉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다양한 봉사 현장에도 가봤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가족들과 함께 일구는 포천 텃밭으로 간다. 이 음식점에서 쓰는 야채는 대부분 그곳에서 나온다. 손님들이 "야채가 신선하다, 맛이 좋다"라고 말하면 더 열심히 밭일에 열중하게 된다고 한다. / 사진 = 구혜정 프리랜서.
일주일에 한 번은 가족들과 함께 일구는 포천 텃밭으로 간다. 이 음식점에서 쓰는 야채는 대부분 그곳에서 나온다. 손님들이 "야채가 신선하다, 맛이 좋다"라고 말하면 더 열심히 밭일에 열중하게 된다고 한다. / 사진 = 구혜정 프리랜서.

딸이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경기도 가족봉사단도 설립했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할 수 있는 봉사가 뭔지 고민도 하고 시설에도 찾아가고, 텃밭에서 농사를 지어 소년·소녀가장에게 주고요. 딸아이도 그때 경험이 인생에 반영이 된 건지 외국에 나무 심는 봉사를 하러도 가고 이웃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으로 성장한 거 같습니다. 저의 봉사하는 삶도 아이와 함께 컸고요. 어르신들에게 보내드리는 도시락 반찬 봉사도 지금까지 이런 경험들이 있었으니까 마음 편히 접근할 수 있었어요, 규모 있게 잘 꾸려나갈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요. 입소문도 나서 같이 동참하겠다는 기업도 생기고, 손님들도 저 믿고 도와주시기도 하고 말이죠.”

이씨에게는 봉사 현장에 나갔을 때 철칙이 있다고 했다. 익숙한 일은 하지 말고, 말벗이 필요한 이들과 대화하고 휠체어를 밀어볼 것을 권한다.

“시설 같은 곳에 가면 최대한 그곳 아이들과 혹은 어르신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 좋겠더라고요. 가끔 봉사하자고 해서 가면 우리 같은 엄마들은 주방으로 가버려요. 익숙하니까요. 봉사현장에 가면 정말 필요한 일을 하고 오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내 할아버지, 내 부모라 생각하고 얘기 들어주는 걸 해줬으면 해요. 그리고 언제 다시 오겠다고 그분들에게 정확한 날짜를 말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기다릴지도 모르니까, 기다리다가 마음에 상처가 될 수도 있잖아요. '다음에 올 게요' 정도로만 해주면 더 좋을 거 같고요.”

올해로 14년째 접어든 식당 일도 봉사 생활만큼 꿋꿋하게 잘 해내고 있다. 메르스 사태도 버텼고 최근 코로나도 잘 이겨냈다. 식당한 지 14년이 됐다는 얘기는 남편이 이씨 곁을 떠난 지 14년 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우디 현장에서 일하고 돌아온 30대 노총각을 만나 결혼해 행복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2009년 9월 어느 날, 현장감독으로 새롭게 가게 된 이씨의 남편은 건설 현장 출근 전 시찰을 하러 갔다가 집으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을 잃고 힘들던 시기, 그 빈자리를 채워 주고 딸을 지켜준 고마운 장소이자 이씨의 일터가 ‘고흥만’이다. 오래전 떠나온 고향이지만 그곳에서 공수한 좋은 재료와 포천 텃밭에서 키운 야채를 이용해 매일 마음을 다해 상을 차린다. 손님상에 올려지는 음식만큼이나 정성 들여 우리 이웃을 위한 반찬도 만들고 있다. 

은퇴 시기를 65세로 정했지만, 여젼히 식당과 봉사 현장을 열심히 오가는 이명자씨. "반찬을 맛있게 먹었다"는 메모가 남긴 빈 도시락 반찬통을 보면, 다음에는  또 어떤 반찬을  보내드려야 하나 고심하게 된다. / 사진 = 구혜정 프리랜서.
은퇴 시기를 65세로 정했지만, 여젼히 식당과 봉사 현장을 열심히 오가는 이명자씨. "반찬을 맛있게 먹었다"는 메모가 남긴 빈 도시락 반찬통을 보면, 다음에는  또 어떤 반찬을  보내드려야 하나 고심하게 된다. / 사진 = 구혜정 프리랜서.

“원래는 예순다섯까지만 해야지 했는데 아직도 제가 일을 하고 있네요. 텃밭에서 일할 때는 힘들지만 손님들도, 어르신들도 제가 농사지은 야채 드시고는 신선하다, 좋다고 하시면 자부심도 생기고 그 덕에 또 일어나 살아내는 거 같아요. 딸이 언젠가 '엄마, 맨날 힘들고 지치지 말고 여행도 좀 하고 책도 좀 쓰고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저에게도 언젠가 그럴 날이 오겠죠? 그전까지는 제 일도 봉사도 열심히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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