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제트종합상사 대표 김경범씨

가제트종합상사 대표 김경범씨. /사진 = 구혜정 프리랜서.
가제트종합상사 대표 김경범씨. /사진 = 구혜정 프리랜서.

[데일리임팩트 권해솜 기자] 이 사람 인생에는 대충이 없다. 잘해야 한다는 목적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왔다. 이렇게까지 세밀하고 정확해야 할까? 그 정도로 정확함을 추구한다.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이래서 결국 이겨내고 해내는 삶을 사는구나’라는 생각에 이른다. 배우로 시작해서 프랜차이즈 막걸릿집 사장으로서 성공한 사업가도 돼봤다. 한 번의 고비를 넘기고 긴 터널을 지나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고 있는 김경범(51)씨. 지금은 배우도, 막걸릿집 사장도 아닌 떡볶이 파는 사람으로 불리고 싶다. 

구로 유통단지 지하에서 만난 이 사람

김경범씨를 찾아간 곳은 구로역 인근 유통단지 지하 식당가. 떡볶이를 판다기에 주변에 학교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과는 너무 다른 장소에 식당이 있다. 

“밀키트(일부 요리가 되어 가정에서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처리한 제품) 떡볶이를 인터넷에서 판매하려면 가게가 있어야 한대요. 아주 힘들 때였는데 이 유통단지 내에서 사업하는 친구가 이쪽으로 들어오라고 자리를 알아봐 줬어요. 주변 환경 따지지 않고 들어왔어요. 떡볶이를 제조해 유통까지 하려고 보니 식품제조가공업 허가도 따로 받아야 한다더군요. 이 절차가 좀 까다로운데 최근에 비로소 받았습니다.”

김씨의 본업은 배우다. 현재는 가제트분식 사장이자 가제트종합상사의 대표로 떡볶이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다. 용모가 '형사 가제트'와 비슷해 가제트라는 별명을 얻은 김씨는 그 이름으로 상호를 정해 운영하면서 점차 가제트처럼 유능한 사장님이 돼가고 있다.

배우는 매력적인 직업이었지만 고정 수입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2009년 11월, 월 70만원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에 문을 연 막걸릿집이 대박을 터트리면서 가난한 배우에서 성공한 사장님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했다.  

“제 돈 한 푼 없이 지인들 도움받아서 장사를 시작했는데 첫날부터 잘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막걸리를 마시려고 줄 서서 기다리기도 했고요. 10년 정도 하는 동안 사업도 확장하고 가정도 꾸렸습니다. 문제는 사업을 하다 보면 단계를 밟아 올라가야 하는데, 어느 순간 평행선을 걷고 있더라고요. 프랜차이즈는 사실 유통 사업입니다. 그런데  점주 편에 서서만 사업을 바라보다 보니 제가 얻을 수 있는 수입이 많지 않더라고요. 어느 순간 사업을 할지 말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씨가 술집에 대해 고민할 때쯤, 막걸릿집 유행도 슬슬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지점 대부분이 정리됐고, 현재는 처음 문을 연 본점만 남아 있다. 

한국 생활 접고 온 가족이 베트남행 

“전환점이 필요했어요. 둘째도 낳고 또 아이들도 커가니까요. 그러던 중 후배 PD 소개로 베트남 웨딩사업에 관해 알게 됐습니다.”

김씨 말에 따르면 베트남 사람들은 결혼식에 많은 돈을 들여 정성껏 준비한다고 했다. 전통혼례는 물론 현대 예식까지 마을 잔치를 방불케 하는 큰 규모로 결혼식 잔치를 연다. 

“우리나라는 검색만으로도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 찾을 수 있지만 베트남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시장 조사차 1년 반 넘게 베트남을 오갔습니다. 현지 업체와 MOU도 맺고요. 뭔가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족 모두를 데리고 베트남 호치민으로 갔습니다.”

부푼 꿈을 갖고 떠났지만, 고난이 시작됐다. 투자를 약속했던 이들이 발을 빼려는 듯 계약금을 받기로 한 날짜를 미뤘다.  

“1000만원은 여기서 주고 나머지 한국 가서 주면 안 되겠냐는 곳도 있었어요. 그러다 사업이 잘못되면 정말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잖아요. 아쉬운 건 제 쪽이었지만 ‘하지 말자!’고 마음먹고 정리했습니다.”

그러다 미백 화장품 베트남 총판으로 관심을 돌렸다. 

“어릴 적 친구 중에 화장품 제조 회사를 하는 사람이 있어요. 처음보다 회사가 4~5배는 커졌더라고요. 미백 화장품을 생산하는 회사였는데, 마침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는 미백 화장품이 인기거든요. 그래서 베트남 총판을 열었어요. 한국화장품이 인기도 있었고 잘 되겠다고 생각했고 반응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총판을 열고 6개월 만에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 상황이 점점 커지자, 직원들이 하나둘 부모님이 있는 고향으로 떠나고 말았다. 

“나만 갔으면 모르겠는데 가족이 다 갔잖아요. 아이들은 각각 학교와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고요. 어느 정도 있다가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가 갈수록 길어졌고,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가족과 함께 베트남으로 떠나 3년 힘들게 버티다가 귀국한 김경범씨. 지금은 떡볶이집 사장님 타이틀에 집중하며 살고 있다. / 사진 = 구혜정 프리랜서.
부푼 꿈을 안고 가족과 함께 베트남으로 떠나 3년 힘들게 버티다가 귀국한 김경범씨. 지금은 떡볶이집 사장님 타이틀에 집중하며 살고 있다. / 사진 = 구혜정 프리랜서.

막걸릿집 사장에서 ‘구운 김’ 파는 사장으로

문득 베트남으로 시장조사를 하러 다닐 때 편의점에서 사 먹었던 한국산 '구운 김'이 생각났다.

“그때 밥이랑 김을 사서 먹는데 쩐내가 심하더라고요. 화장품 사업하는 친구랑 같이 다녔는데, ‘이런 데서 김 구워서 팔면 잘 되겄다’라고 농담처럼 말했거든요. 그래서 집에서 김 굽는 연습을 했어요. 프라이팬에 기름 몇 %를 넣어야 하는지, 불판과 프라이팬 사이 간격은 몇 ㎝여야 좋을지 고민하고요. 제가 나름대로 연구하고 찾아내서 전용 불판도 만들었습니다.”

김으로 시작해, 누룽지도 만들고 간장게장도 담가서 판매 목록에 올리고 판매를 위한 오픈채팅방을 열었다. 한인들에게 정말 인기가 좋았다.

“김을 불에 구우니까 덥고, 일도 많아져서 채용 공고를 냈어요. 그랬더니 화장품 회사 때 면접 봤던 사람들이 다시 오더라고요. 김이 잘 팔렸습니다. 한인들도, 베트남인들도 사 먹고는 맛있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화장품 회사 사무실 한쪽에서 시작했는데, 빠르게 더 큰 곳으로 옮겼다. 

“온갖 식재료는 다 팔았습니다. 때마침 한국에서 밀키트 열풍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베트남은 한국만큼이나 배달 문화가 발달해 콜라 한 병도 배달시켜 먹는 정도라고 했다. 

“교민들이 어디 가서 먹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지 않으니, 제가 만들 수 있는 밀키트는 다 만들었어요. 갈치조림, 코다리조림, 떡볶이 밀키트도 팔고 배달이 필요하면 소고기, 돼지고기, 생선, 야채, 과일까지 안 판 게 없어요.”

스스로 생각해도 진짜 열심히 살았다. 새벽 3~4시에 일어나 우리나라로 치면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같은 곳으로 오토바이를 몰고 가서 식재료를 구입했다. 장 보는 일이 숙달됐을 땐 베트남 현지인처럼 물건을 2단, 3단 높이로 쌓고. 오토바이 양옆에도 물건을 실었다.

“아침 6시 반 혹은 7시 쯤 매장에 도착하면 직원들이 각자 자리에서 밀키트를 만들어요. 저도 같이 하고요. 이때는 가족과 함께 못 있고 따로 숙소 잡아서 일했습니다.”

판매 제품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져 고객 주문을 위해 만든 오픈 채팅방 인원이 3개월 만에 천 명을 넘어섰다.

“오픈채팅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고 방장이 승인해야 들어갈 수 있어요. 1500명 정원에 1300명이나 등록됐으니까 정말 많죠. 제가 당일 살 수 있는 품목을 채팅방에 쓰면 사람들이 사고 싶은 것을 쓰고 몇 시, 어디까지 와달라고 하면 우리 직원들이 다니면서 배달했습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에 빛을 발했지만, 이 일에도 끝이 있었다.

“정말 주문이 쏟아졌습니다. 도시가 봉쇄되고 출구가 막혀도 저는 만들어서 팔았거든요. 주문 물량을 다 못 맞출 정도였어요. 계속해도 되겠다 싶었는데 아니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매출이 매일 반씩 뚝뚝 떨어졌어요. 아는 형님께서 영사관에 물어봤는데 한국교민 12만 명 중에 10만 명이 베트남을 빠져나갔다더라고요. 3개월, 6개월짜리 상용 비자를 그때마다 갱신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코로나 이후 비자 기간이 만료된 사람은 다 내보냈다는 겁니다. 코로나 이후에 베트남이 정책을 바꾼 거죠.”

하는 일마다 꼬이니 막막해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안 좋은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아이들이 생각났어요. ‘아! 애들이 있구나! 우리 가족에게 나쁜 기억을 주면 안 되지!’ 하면서 정신 차렸어요. 2021년 12월 31일에 한국에 들어왔고 코로나 격리실에서 2022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지금은 떡볶이를 만드는 사장이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김경범씨.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면 카메라를 들어 촬영도 하면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싶다. 베트남으로 다시 가서 치킨집 사장도 해보고 싶다. / 사진 = 구혜정 프리랜서.
지금은 떡볶이를 만드는 사장이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김경범씨.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면 카메라를 들어 촬영도 하면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싶다. 베트남으로 다시 가서 치킨집 사장도 해보고 싶다. / 사진 = 구혜정 프리랜서.

돌고 돌아 쫀득한 떡볶이를 팔다

정말 뭐 하나 제대로 건진 것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주위의 좋은 사람들 덕분에 다행히 ‘가제트분식’과 인터넷에 스마트스토어도 열어 떡볶이를 판매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떡볶이를 해볼 생각은 없었어요. 이곳에서 일하는 친구가 자리를 알아봐 줄 때도 라면 장사 한번 해보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라면 전문점을 낼까 하고 먼저 라면을 팔았어요.”

문제는 상권이었다.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딱 점심시간 반짝 말고는 매출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일반 동네라면 입소문이라도 날 만한데 여긴 그게 어려워요. 메뉴를 하나하나 추가하다가 라면을 빼고 떡볶이 중심으로 바꿨습니다. 제육볶음만큼은 해야 할 거 같아서 그것도 넣었고요. 정말 몰랐는데 한국 남자들이 가장 선호한다더군요(웃음).”

한국에 와보니 무인 영업장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무엇보다 떡볶이는 누가 뭐라 해도 누구나 좋아하는 국민 간식이고 많은 곳에서 이용되고 있었다. 

“무인 영업장이 정말 많더라고요. 이런 곳에 납품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또 하나는 제가 예전에 술집 장사했던 경험이 있잖아요. 일반 분식집에서 떡볶이가 그리 비싸지 않지만, 술집에서는 해물도 좀 넣고 값비싼 가격에 팔리니까 생각해 볼 수도 있고요. 피시방에서도 사 먹잖아요. 새벽에 영등포 시장을 가 봐도 떡볶이집으로 식재료를 실어 나르는 트럭들이 정말 많아요. 사람들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레드오션 블루오션을 따지는데 뭐든 경쟁력만 갖춘다면 해볼 만한 것 같습니다.”

사실 떡볶이와의 인연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떡볶이 장사를 해보고 싶다는 친구가 떡볶이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만들어 줬더니 감탄하며 맛집으로 소문난 떡볶이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앞에서 언급했듯 베트남에서 밀키트 사업을 할 때의 목록에도 떡볶이가 있었다.

“초반에 한국인들이 왜 떡볶이는 안 파냐고 묻더라고요. 떡볶이를 팔려면 한국에서 양념을 사 와서 써야 하는데 그걸 살 돈조차 없었어요. 두세 달 계속 문의만 받다가 떡볶이를 만들게 됐어요. 양념을 사서 쓰지 않는 대신 제가 떡볶이 양념을 개발한 거죠.” 

김씨는 떡볶이 양념을 개발한 이후 스마트스토어에 떡볶이 밀키트를 판매했다. 좋은 맛에 다가가기 위한 실험도 꾸준히 했다. 

“초기에 비해 단맛과 짠맛을 줄이고 매운맛을 살짝 더 올렸어요. 개성 있는 어떤 ‘맛’이 아니고 균형감 있고 조화로운, 누구든지 먹을 수 있는 떡볶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떡도 아무거나 쓰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떡을 좀 시식해 보려고 주문해 놨는데 기분이 너무 좋아요. 쫄깃쫄깃하고 쫀득한 떡을 먹어 볼 생각을 하니까 말이죠. 원래 제가 떡볶이 장사를 할 운명이었나 봅니다.” 

 스마트 스토어에서 판매하고 있는 떡볶이 밀키트. / 사진 = 구혜정 프리랜서.
 스마트 스토어에서 판매하고 있는 떡볶이 밀키트. / 사진 = 구혜정 프리랜서.

본격적으로 떡볶이 유통업에 뛰어든 것이냐고 묻자,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캠핑장에 줄을 대주겠다는 친구도 있고, 떡볶이를 팔아보겠다며 연락해 온 이가 있어 만나보기로 했단다. 

“솔직히 정신이 없습니다. 혼자 하니까 힘들고 너무 버거워요. 식당 일은 정말 더 어려워요. 예전 술집보다 두 배는 어려운 거 같아요.”

힘들다는 말은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인덕이 느껴질 만큼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 자체가 능력으로 보이지만 김씨는 아니라고 했다.

“신세를 너무 많이 지고 사니까 저 자신이 싫습니다. 왜 이렇게 못하나 저에게 짜증도 나고요. 그런데 한참 나쁘게 생각하다가도 잘해서 빨리 좋은 모습 보여주고도 싶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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