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힘'으로 회장사임 등 이사회 요구
KCGI "자사주로 경영권 방어" 지적도

[편집자주] 국내 행동주의펀드의 동향을 추적 보도하고 있는 데일리임팩트는 11월 '행동주의와 그 적들'이란 주제로 전문가토론회를 진행하였습니다. 학계 전문가와 행동주의펀드 임원을 모시고 진행한 토론회 내용을 토대로 △타깃이 된 기업들의 특징 △행동주의펀드의 향후 주주활동 계획 등을 짚어보는 기획기사를 게재합니다.

 

목대균 KCGI자산운용 운용총괄대표가 지난달 개최된 데일리임팩트 전문가 토론회 '행동주의와 그 적들'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데일리임팩트 
목대균 KCGI자산운용 운용총괄대표가 지난달 개최된 데일리임팩트 전문가 토론회 '행동주의와 그 적들'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데일리임팩트 

[데일리임팩트 박민석 기자 ] 행동주의펀드 KCGI자산운용이 현대엘리베이터에 투명성과 독립성을 갖춘 이사회 구성과 자본 재배치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현대엘리베이터 이사회는 최근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난 현정은 회장에 이어 내년 5명의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구성을 놓고 KCGI운용과 현대엘리베이터간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어떤 회사인가?

현대엘리베이터는 어떤 기업이기에 행동주의펀드인 KCGI의 타깃이 된 것일까?

현대엘리베이터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 등 승강기 생산·설치를 주력 사업으로 하는 코스피 상장사다. 국내 승강기 시장의 절반을 점유하고 있고, 시가총액은 1조7100억, 연 매출은 2조원에 달하는 대형 승강기 업체다.

KCGI자산운용은 현대엘리베이터의 성장성과 잠재력은 인정하면서도 이사회가 경영진을 상대로 견제와 감시 의무를 다하지 않아 주주활동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대법원은 2014년 2대주주인 스위스 승강기업체 쉰들러홀딩스가 제기한 주주 대표소송에서 현 회장이 170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현대엘리베이터에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주주인 현 회장이 2006년과 2014년 사이 현대상선 경영권 분쟁과정에서 경영권 방어를 위해 체결한 복수의 파생상품계약으로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 

KCGI운용은 지난 8월 사측에 보낸 주주서한을 통해 회사에 피해를 입힌 현 회장의 '사내이사 적격성' 검토를 요구하며 본격 주주활동을 시작했다.  아울러 현 회장의 사내이사 사임 요구와 과도한 임원 보수의 적절성, 이를 견제하지 않는 이사회의 개편, 중장기 수익성 개선 전략 등을 요구했다.

현재 현대엘리베이터의 주요 주주는 △현대홀딩스컴퍼니 등 현 회장 우호세력(27.78%) △쉰들러홀딩스(12.00%) △오비스인베스트먼트(6.90%) △국민연금(6.20%) △KCGI자산운용(2.00%) 등이다.

"현 회장 사임, 성공이라 말하기 이르다"

KCGI운용이 주주서한을 보내고 3개월이 지난 11월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배구조 고도화'를 명분으로 현 회장 사임과 이사회 운영 개편안을 전격 발표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그 배경에 대해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이사회 중심의 투명하고 책임있는 경영'을 강화하고자 하는 현 회장의 선제적 결단”이라고 밝혔다. 사임으로 발생한 공석은 이사회 전문성과 독립성 제고를 위해 사외이사로 선출하겠다면서 오는 12월29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사외이사 선정 프로세스 개선을 위해 성과 연동 사외이사 평가·보상체계 수립과 감사위원회 별도 지원조직도 두기로 했다. 순이익 50% 이상 배당 혹은 자사주 소각 등의 주주환원책도 함께 공개했다.

KCGI운용은 이후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현 회장의 사임에 대해 '이사회 정상화의 첫 단추'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사임 이후 급여 수령과 경영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사내이사 자리는 내놨지만 현 회장은 여전히 5%이상 지분을 가진 대주주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현대엘리베이터가 KCGI운용과 선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 회장의 사내이사 사임 및 지배구조 정책 발표는 KCGI운용의 주주서한 때문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KCGI운용의 요구처럼 추가적으로 공시한 정책을 보완하거나 요구한 자본정책에 대해 공개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현 회장 사임은 KCGI운용의 제안 이전부터 논의돼 왔고, 지배구조정책 공시와 일정에 맞춰 이번에 공개한 것"이라며 "KCGI운용의 의견은 존중하지만, 공시된 내용 이외엔 공개할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이창민 한양대학교 교수가 지난달 개최된 데일리임팩트 전문가 토론회 '행동주의와 그 적들'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데일리임팩트 
이창민 한양대학교 교수가 지난달 개최된 데일리임팩트 전문가 토론회 '행동주의와 그 적들'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데일리임팩트 

학계에선 KCGI운용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데일리임팩트 주최 '행동주의와 그 적들' 토론회에서 "행동주의펀드가 경영진의 감시·견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CEO해임을 요구해 실제 성과로 이어진 진일보한 사례“라며 "배당, 자사주 소각 등에 그쳤던 행동주의펀드 주주활동에 새로운 물꼬를 틔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현 회장 사임을 주주활동의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게 KCGI운용의 입장이다. 

목대균 KCGI운용 운용총괄 대표는 같은 토론회에서 "아직까지 독립·투명한 이사회가 구성되지 않았고 수익성이 낮은 해외 사업이나 호텔·금융·부동산 등 비주력 사업의 효율화에 관련된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며 주주활동을 이어갈 것이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현대엘리, 주총·감사위원 분리선출·자사주 우호지분 활용 '꼼수' 의혹도

특히 KCGI운용은 현대엘리베이터가 이사회 장악을 위해 '꼼수'를 쓰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먼저 사측이 최근 현 회장 사임 후 새로 선임할 사외이사를 뽑는 임시주총 날짜를 주주제안을 할 수 없게 잡았다는 것. 상법상 일정 지분을 보유한 주주가 주주제안을 하려면 주총일 6주전에 회사에 서면으로 그 내용을 전하도록 돼 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임시주총을 12월29일 하겠다고 공시한 날이 11월17일로 6주라는 물리적 기간이 나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KCGI는 주주 제안을 위해 필요한 6주가 블가능하도록 주총 일정을 잡는 '꼼수'를 동원해 의도적으로 주주의 사외이사 추천을 막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KCGI운용은 사측에 주주 제안 안건을 상정할 수 있도록 임시 주주총회 일정 변경을 요청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한 사측이 감사위원 선임에도 꼼수를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3일 현대엘리베이터는 임시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정정공시를 통해 서창진 현대엘리베이터 감사위원이 사임 예정임을 밝히고, 이기화 후보의 분리선출 감사위원 선임안을 공표했다. 서 위원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로 예정되어 있었다.

KCGI운용측에서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소액주주의 주주권 보호를 위한 장치인데 회사측이 감사위원을 선출하는 일은 법의 맹점을 이용해 제도의 취지를 무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는 감사위원을 겸하는 사외이사를 3%룰을 적용, 일반 사외이사와 별도로 선출하는 제도다. 대주주 비율이 높은 기업에서도 소수주주들이 추천하는 감사위원이 선임 될 수 있는 소수주주 보호제도로서, 감사위원회 위원 중 1명만 분리선출해 선임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임시주총에선 주주제안으로 후보 추천이 불가능하기에 사측이 분리선출 안건으로 추천한 이 후보가 선임된다면 소액주주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설명이다.

KCGI운용은 지난 15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현대엘리베이터가) 최대주주의 영향력을 제한하고 감사 및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제고하자는 분리 선출 사외이사 제도의 취지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상법 제도를 악용했다"고 말했다.

반면 현대엘리베이터측에서는 “기존 감사위원이 일신상의 사유로 자진 중도사임해 추가 선임이 불가피해져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됐다"며 "이사회 독립성 확보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준수한 것으로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우진 서울대학교 교수 역시 "현대엘리베이터의 임시주총일 공시는 일반주주의 사외이사 후보 관련 주주 제안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이며, 이는 다른 주주를 제외하고 회사측이 추천한 이사로 선임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며 "이같은 편법이 지배구조 선진화를 내건 현 회장의 사임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또 KCGI운용은 현대엘리베이터가 자사주를 우호지분으로 활용할 수 있어, 현재 보유하고 있는 7.64%의 자사주를 전량 소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현대엘리베이터가 지난달 2.97%에 달하는 자사주를 우리사주조합에 처분한 것을 두고, 대주주의 우호 지분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사실상 회사측은 내년 정기 주총을 앞두고 우호지분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7명의 등기이사 가운데 사임 의사를 표한 현정은 회장과 서창진 감사위원을 제외하면 4명의 임기가 내년 3월에 만료되기에 정기주총에서 표결로 새로운 이사를 선임하거나 기존 이사를 연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KCGI운용에서는 최근 우리사주조합 사례와 같이 특수 관계인이나 유관기관에 자사주를 넘겨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정기 주총에서 회사 뜻대로 이사를 선임하려고 한다고 보고 있다. 

KCGI "자금조달·투자자 동참 중요...투명·독립성 갖춘 이사회 구성해야"

KCGI운용은 현대엘리베이터의 주주활동이 성공하기 위해선 자금 조달과 함께 투자자 동참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목 대표는 "규모가 큰 회사를 상대로 주주활동에 나선 상황이라 지분 확보를 위한 자금은 물론 투자자들의 지지가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KCGI운용은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2대주주인 쉰들러홀딩스와 연대 가능성도 시사했다. KCGI운용은 당시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인 쉰들러도 기업가치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생각을 같이할 것이라 믿는다”며 “쉰들러가 외국인 자본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글로벌 시대에 외국인 투자자라고 색안경을 끼고 판단하거나 차별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목 대표는 "KCGI운용이 원하는 것은 현대엘리베이터가 독립·투명성 갖춘 이사회를 구성하고, 영업·비영업자산에 대한 개선책, 결과적으로는 환원율을 사측에서 높여주기를 바란다"며 "이를 위해 내년 주주총회 전 다양한 주주 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데일리임팩트는 지난달 27일 국내 주요 행동주의펀드의 전략과 성공·실패담을 가감없이 살펴보는 '행동주의와 그 적들'이란 토론회를 진행했는데 이 자리에서 현대엘리베이터에 열띤 토론이 진행된 바 있다.  이날 토론회에는 김우진 서울대 교수와 이창민 한양대 교수,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 목대균 KCGI자산운용 운용부문 대표, 이성원 트러스톤자산운용 부사장 등이 토론을 벌였고 김준섭 KB증권 연구위원이 ‘일본의 행동주의 특징과 시사점’이란 발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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