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한동안 대한민국은 ‘미나리’ 얘기로 봄 날을 보낼 듯 하다. 솔직히 아카데미 노미네이트가 없었다면 이름도 생소한 정이삭 감독이나 마이너 독립영화 인상이 짙은 ‘미나리’ 라는 영화에 60만 관객(현재 추산)이 코로나를 뚫고 극장을 찾진 않았으리라.화제의 ‘미나리’를 본 한국 관객들의 감상은 의외로 덤덤했다. 대단한 갈채를 보내는 것 같진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내 놓고 악평을 하지도 않는다. (사실 이미 해체되어 가고 있는 가족주의에 대한 퇴행적 성찰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워낙 우리가 상
[미디어SR 전문가 칼럼=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김대중 정부 시절 드디어 금강산 관광의 문이 열렸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어린시절 음악시간에 노래로 접해 신비감만 더해갔던 그 금강산을 드디어 가 볼 수 있게 됐다.당시 재직했던 회사에서 직원 연수를 금강산으로 가기로 했고, 선발대 격으로 몇몇과 함께 먼저 금강산을 들르는 행운마저 누렸다.겨울의 금강산은 명불허전이었다. 한참을 걷다가 숨을 헐떡이며 금강산 정상에 올랐을 때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금강산을 관리 감독하던 북측의 여
[미디어SR 전문가 칼럼=박준영 크로스컬쳐 대표]요즘 아이들은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기억할까? 감수성이 예민한 성장기에 겪어 낸 팬데믹은 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상처로 남겨질까? 특히 불운했던 작년 대학 신입생들은 동기들의 얼굴도 제대로 못 본채 신입생 환영회도, 봄날의 축제도 경험하지 못했다.이들에게 2020년은 그저 잃어버린 1년으로 기억될 듯 싶다. 청년기의 1년은 성인의 그것 보다 열 배의 추억과 기억으로 간직 된다고 한다. 이렇듯 영화 ‘벌새’는 한 소녀의 보잘것없지만 보편적이며 순간적이었지만 찬란했던 기억의 저편을
[미디어SR 전문가 칼럼 =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연말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분위기는 썰렁하다 못해 스산하다. 이럴 때는 혼술이 제격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잘 마시지 않던 와인에도 손이 간다. 요즘 와인 가격은 놀랄 정도로 싸다. 싸구려 와인을 홀짝이며 볼 만한 영화 한 편을 꼽으라면 단연 ‘사이드웨이(SideWay)’다. 오해는 마시라! 영화만큼은 고급지다.‘어바웃 슈미트’로 유명해진 알렉산더 페인이 각본과 감독을 맡은 이 작품은 개봉되던 해 온갖 상을 휩쓸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와인이 소재이지만 와인은 그
[미디어SR 전문가칼럼=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요즘 한달에 수십 억도 거뜬히 번다는 인기직업은 다름아닌 웹툰, 웹소설 작가다.이제 만화도 소설도 모바일에서 구독하는 세상이 왔다. 전철이나 버스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웹툰이나 웹소설을 보며 무료함을 달래는 모습은 이제 흔하게 볼 수 있다.이쪽 세계에 잠깐 맛을 본 적이 있다. 필자도 웹툰의 스토리 작가를 하면서 몇 년간은 그걸로 밥벌이를 했고, 웹소설을 써서 플랫폼에 업로드하면서 대중의 기호를 살피기도 했으니 말이다.만약에 지금 회사를 그만두고 마지막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나도 한때는 영화제작을 하겠다고 싸 돌아다닌 적이 있다. 시나리오도 나오고 감독도 확정됐고 주연배우도 가(假) 캐스팅 됐다.투자 배급사도 어렵지 않게 섭외해 초기 투자금도 받았다. 이제 대망의 영화제작자 타이틀이 스크린에 올라가나 싶었다. 하지만 영화 개봉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투자사 책임자의 급작스런 사망, 그리고 마지막 남은 과제였던 여주인공 캐스팅이 난항을 겪으면서 하릴없이 세월만 까먹다 결국 엎어지고 말았다.이후 권토중래를 꿈꾸며 여전히 몸부림치고 있으나 아직도 시나리오 개발 중에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아포칼립스는 일반적으로 세상의 종말을 뜻하지만 성서적으로는 묵시록, 계시록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신약성서의 마지막 챕터는 요한묵시록이며 최후의 심판을 예견하는 여러 상징적 비유들로 가득 차 있다.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은 이 부분에 영감을 받아 영화 ‘아포칼립스 나우’(Apocalypse Now, 현대묵시록)를 만들었다. 당시 말론 브란도와 로버트 듀발, 마틴 신 등 쟁쟁한 배우들이 영화에 출현했고 러닝타임은 무려 3시간이 넘었지만 음악은 박력 있었고 화면은 리얼했으며 이야기는 섬찟했다.최고의 전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내 개인 얘기를 좀 해야겠다. 1990년대 초였던가. 졸업 학점이 미달해 1년을 더 다니고서야 간신히 대학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백수 신세는 면치 못했다. 놀기는 뭐하고 해서 알량한 글 재주로 방송국에서 스크립터를 하며 용돈을 벌기도 했고, 월간 [말]이라는 잡지(아마도 586세대는 기억하시리라)에 자유기고 형식으로 매달 원고를 보내며 시간을 죽이고있었다.지리멸렬함에 지쳐가던 무렵, 우연히 당시 신촌에 있던 이화예술극장에서 조조로 영화 한 편을 보게 된다. 여기서 운명처럼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코로나19 사태로 극장 안은 썰렁하다 못해 고요했다. 나를 포함해 관객은 겨우 3명. 마스크를 깜빡 잊고 영화관을 찾은 나로선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어느덧 공동운명체가 되어버린 극소수의 관객들은 서로 널찍이 떨어져 앉았다. 나는 맨 뒤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왜 이런 시국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꼭 봐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이내 깨닫는다. 혹자는 애프터 코로나19 시대에는 극장이 소멸할거라고 얘기하지만 대형 스크린을 갖추고 있는 멀티플렉스는 ‘1917’ 같은 영화 덕에 오랜 시간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셀프 자가격리를 며칠 했다.특강은 줄줄이 순연되거나 취소됐고, 회의도 연기됐으며, 소소한 개인 약속들도 나중으로 미뤘다.영화관과 대형 서점도 굳이 이런 시기에 가야 하나 하는 생각에 주저하다 보니 결국 일 터 나가는 일도 주저앉게 되버렸다. 이런 난리가 예전에도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에서나마 좀 밝은 영화를 보려고 했으나 자꾸 인류 종말을 다룬 영화로만 눈이 가게 된다. 우울하고 무기력할 때 신나는 음악은 오히려 더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이참에 아예 바닥으로 깊숙이
[박준영 크로스컬쳐 대표 / 문화평론가]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4관왕 석권이라는 한국영화의 역사적 쾌거를 이룬 직후 한국영화감독들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다. ‘시기와 질투’라는 속좁은 분석도 있고 이제는 더 도달해야 할 목표가 사라져 허탈해서 그렇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영화 ‘기생충’이 대부분의 영화 관계자들이 예상했던 각본상과 국제영화상 수상을 훌쩍 넘어 감독상에 급기야는 작품상을 수상하자 대한민국의 입담꾼들은 다양한 수상 촌평을 백가쟁명식으로 쏟아 놓았다. 물론 대부분은 의례 그렇듯 상찬 일색이다. 그런데 관련 코멘트들을 쭉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제목부터 이미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과거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게한다. 남산은 서울의 명소이기도 하지만 1960-1070년대 박정희정권 18년간 대한민국 삼권을 쥐고 흔들었던 중앙정보부가 있었던 곳이다. 영화의 원작은 1990년에 동아일보에 연재된 기사를 바탕으로 하였다. 당시 기사 제목도 [남산의 부장들]이었다. 2년 2개월간 연재되었던 내용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꼽히는 10.26사건만을 영화는 집중한다.1979년 10월 26일 밤, 서울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한마디로 세종과 장영실의 브로맨스 영화다. 조선 만의 시간과 하늘을 열고자 했던 두 천재가 만나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며 새로운 조선을 만들어내는 시간을 감동적으로 그렸다.당시 조선사회는 양천제의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천상천하 지엄한 임금과 아무리 손재주와 실력이 출중하다하나 이제 막 노비의 신분을 벗어난 평민과의 교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세종은 능력우선주의자다. 관노인 장영실을 면천하고 종5품 행사직을 하사하며 서운관에서 신 발명품을 만들도록 독려와 조력을 아끼지않는다. 여기에 세종의 위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최근 재벌그룹 회장이 이혼 위자료로 무려 1조가 넘는 돈을 내야할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떴다. 상상이 가지 않는 금액이라 실감이 나지 않치만 결혼 만큼 이혼도 정말 잘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은 든다. 뭐 돈 없는 사람이야 상관없지만 말이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확 뜨이는 명작 하나를 발견했다. 신산스럽고 참담한 이혼의 과정을 냉철하지만 따뜻함을 잃치 않고 그려낸 영화 ‘결혼이야기’ 얘기다. 최근 봉준호 감독이 올해 가장 볼 만한 영화로 이 작품을 꼽았고 내년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서는 남녀 주연배우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 이제 극장에서 영화를, TV에서 드라마를 보는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이제는 이른바 플랫폼 전쟁이 시작되었다. 노트북과 모바일에서도 실시간 극장에서 상영중인 영화를 볼 수 있고 TV의 드라마는 언제 어디서나 돈만 내면 다시보기가 가능해진지 오래다. 이에 따라 통신사와 제작사의 합종연횡은 눈이 어지러울 정도다. 이른바 OTT(Over The Top)시대의 선두주자 넷플릭스에 대항하여 곧 공개를 앞두고 있는 디즈니+, 애플TV+는 지금 양질의 콘텐츠를 끌어 모아 전세를 뒤집기 위해 안간 힘을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 아무리 명작이지만 30년 전 영화를 다시 꺼내 보기는 쉽지않다. 세상은 볼만한 혹은 봐야할 작품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먼지 묻은 DVD 케이스를 열고 영화 한 편을 봐야만 했다. 연일 긴장되는 뉴스를 보내고 있는 홍콩의 소식을 들으면서 대륙과 섬 사이의 끈질긴 갈등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비정의 도시, 영화 ‘비정성시’다. 대만 뉴웨이브의 거장인 ‘후 샤오시엔’이 영화 ‘비정성시’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영화 ‘블랙머니’를 만들고 있을 때는 검찰개혁 이슈가 이렇게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 양민혁 검사(조진웅)의 “검사가 니 편 내 편이 어딨어? 죄 있으면 잡아넣은거지!”라는 일갈이 홍보 포스터의 카피에 선명하게 박힌 것을 보고 기가막히게 시의적절하단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에 양민혁 같은 똘아이? 검사 열 명만 있었다면 지금의 검찰개혁이 순조로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영화가 바로 ‘블랙머니’다. 영화는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뒤늦게 영화로 대학원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소설로 먼저 만들어진 ‘82년생 김지영’은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이라는 출판계에 무려 100만부나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소설은 우리 시대 여성들의 육아, 출산, 재취업, 시댁과의 관계등 모든 문제를 수면 위로 한꺼번에 드러냈다. 고 노회찬의원이 문재인대통령에게 선물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실 읽다보면 소설이라기 보다 일종의 ‘한국사회 여성보고서’ 정도의 느낌이 들 정도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것은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다. 성차별과 성희
고담시 한복판. 폐업 정리 세일을 하고있는 가게 앞에서 광대 복장으로 호객 알바를 하고있는 아서(호아킨 피닉스). 오늘은 운수가 사나운 날이다. 동네 꼬맹이들이 광고판을 훔쳐 달아나는 바람에 수당도 못 받고 사장에겐 주의를 들어야했다. 집에 오면 노모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늦은 저녁을 챙겨주고 TV 토크쇼 ‘머레이(로버트 드 니로)쇼’를 보는게 아서의 유일한 낙이다.아침마다 한 움큼의 약을 털어 넣어야 하고 그의 말을 건성으로 듣는 사회복지사와 정기적인 상담을 해야 약 값이라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가을은 전쟁영화와 어울리지 않는다. 달달한 로맨틱 코메디가 흥행에선 유리하다. 배급 타이밍을 놓친건지 영화에 자신이 있는건지, 워너브러더스가 투자한 영화 ‘장사리:잊혀진 영웅들’이 개봉했다. 영화 ‘장사리:잊혀진 영웅들’은 한국전쟁의 숨겨진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전쟁 발발 한 달 만에 낙동강 이남을 제외한 모든 영토를 북한군에게 뺏겨 대한민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절체절명의 순간에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나라는 기사회생한다. 역사는 반전의 승리, 기적 같은 역전을 만든 크로마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