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조커의 탄생, 악(惡)은 만들어지는가? (약간의 스포일러 있음)
악당 조커의 탄생, 악(惡)은 만들어지는가? (약간의 스포일러 있음)
  •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 승인 2019.10.1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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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스틸컷.
조커 스틸컷.

고담시 한복판. 폐업 정리 세일을 하고있는 가게 앞에서 광대 복장으로 호객 알바를 하고있는 아서(호아킨 피닉스). 오늘은 운수가 사나운 날이다. 동네 꼬맹이들이 광고판을 훔쳐 달아나는 바람에 수당도 못 받고 사장에겐 주의를 들어야했다. 집에 오면 노모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늦은 저녁을 챙겨주고 TV 토크쇼 ‘머레이(로버트 드 니로)쇼’를 보는게 아서의 유일한 낙이다.
아침마다 한 움큼의 약을 털어 넣어야 하고 그의 말을 건성으로 듣는 사회복지사와 정기적인 상담을 해야 약 값이라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웃음은 정신질환의 증세이지만 주위에선 그를 벌레 보듯 한다.

우울하고 지리멸렬한 삶에 우연히 얻게 된 총 한 자루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조커’는 아다시피 배트맨의 천적이자 공존의 파트너다. 사악한 안티 히어로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의 엔딩엔 조커의 멋진 사멸과 장엄한 패퇴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는 배트맨이 대적할 만한 빌런으로서 그의 존재가치를 입증했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오직 조커라는 인물 그 자체에 집중한다. 지금까지 나름의 세계관을 형성했던 DC코믹스의 결을 따르지 않는다. 완전 독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비극과 어둠이 꽉 들어차 있는 조커의 연대기를 통해 악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보여준다.

내년 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조커의 호아킨이 유력하다는 말이 벌써 새어나온다. 이미 DC 코믹스 작품 최초로 올해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서 황금사자상(작품상)을 수상하여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국내 개봉이 며칠 안됐지만 흥행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카메라는 시종 어두운 대공황 시대를 연상하는 고담시를 훓는다. 빈부격차는 극심하고 가난한 시민들의 분노는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아서는 전철에서 그를 놀리던 세 남자를 권총으로 쏴 죽인다. 그동안 꽁꽁 봉인되었던 사회와 이웃에 대한 아서의 분노가 폭발한것이다. 이제부터 아서는 킬러 조커가 된다.
‘조커’에는 두 편의 영화가 떠 오른다. 로버트 드니로가 스타덤에 올랐던 ‘택시드라이버’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그것이다. 둘 다 사회비평적인 영화이다. ‘택시드라이버’의 주인공 트래비스(로버트 드 니로)는 극도의 외로움과 고립감에 시달린다. 모든 인간은 쓰레기라 다 쓸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서 아니 조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는 아서의 광기가 단순히 개인적 불행이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배려의 부재 혹은 공동체 정신의 실종임을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

아서에게도 꿈이 있었다. 사람들 앞에 서서 웃음을 주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노트에 필기를 하며 웃음 소재를 찾았다. 드디어 유명 스탠딩 코메디클럽에 나설 수 있었지만 예의 그 시도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은 사람들에게 불편함만 줄 뿐이었다. 옆 집의 모녀(물론 영상으론 보여지지 않는다.)를 살해하고 라이브 쇼에 출현하여 그가 우상으로 삼았던 머레이를 권총으로 쏴 죽인다.

그는 “내 인생이 비극인줄 알았는데,코미디였어”라고 읊조린다. 모든 게 부조리해 보인다. 친모라고 생각했던 어머니가 자신을 입양했다는 사실, 고담시의 잘나가는 부자인 토마스 웨인이 아버지라고 믿고 싶었으나 그 마저도 사실과는 다른 현실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감독인 토드 필립스는 어느 인터뷰에서 ‘조커’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공감능력 부족’이라했다. 고담시는 이해와 배려의 정신이 실종된 공간이며 철저히 이기적으로 파편화된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문득 꼭 고담시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 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풍경을 보면 이제 평범한 누구라도 ‘아서’가 ‘조커’가 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끔찍한 일이다.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oks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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