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 그리고 홍콩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 그리고 홍콩
  •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 승인 2019.11.2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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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성시 스틸컷.
비정성시 스틸컷.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 

아무리 명작이지만 30년 전 영화를 다시 꺼내 보기는 쉽지않다. 세상은 볼만한 혹은 봐야할 작품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먼지 묻은 DVD 케이스를 열고 영화 한 편을 봐야만 했다. 연일 긴장되는 뉴스를 보내고 있는 홍콩의 소식을 들으면서 대륙과 섬 사이의 끈질긴 갈등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비정의 도시, 영화 ‘비정성시’다.
 
대만 뉴웨이브의 거장인 ‘후 샤오시엔’이 영화 ‘비정성시’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때가 1989년. 대만에서 40여년간의 계엄령이 해제된 해가 1987년이니 이른바 대만의 민주화가 막 시작될 즈음이었다. 영화는 2.28 사건을 배경으로 한 가족이 거대한 역사의 굴레에서 어떻게 상처받고 소멸되는가를 진중하게 다뤄내고 있다. 런닝타임만 무려 157분이다. 이 영화는 베니치아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그랑프리)을 수상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비극의 2.28 사건은 어떻게 시작한 것일까?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거해 랴오둥 반도와 타이완을 일본에게 할양한다. 그러나 일본은 서양의 견제로 랴오둥 반도를 다시 토해냈고 대신 타이완에 일본총독부를 두고 우리와 같은 식민통치를 자행한다. 그리고 1945년, 해방이 되자 타이완에 본토의 국민당이 해방군처럼 들어온다. 영화는 라디오에서 일제로부터 해방을 알리는 소식이 흘러 나오면서 시작하고 한 가족의 비극도 함께 시작한다. 원래부터 살고있던 타이완의 원주민과 국민당을 등에 업고 들어온 외부인간의 불협화음은 상상을 초월했다. 극심한 부패와 무능의 국가권력은 사소한 반항과 저항에도 민감하다. 1948년 2.28일 우연히 발생한 내지인에 대한 폭행이 무려 3만명의 본토인을 살해한 대참사로 확대된다. 국민당의 만행은 이후 1999년에 이르러서야 대만총통의 사과로 일단락 되었다.
 
영화는 임씨 집안 4형제의 행로를 따라간다. 일제 강점기에 돈을 꽤 벌었던 임아록은 네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사를 하는 첫째 문웅, 일본군에 끌려가 소식이 끊긴 둘째 문상, 전쟁에서 돌아와 반미치광이가 되버린 셋째 문량, 그리고 귀머거리에다 벙어리인 넷째 문청(양자웨이)이 그들이다. 네 형제의 각기 다른 삶의 편린들이 시대의 흐름과 얽히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감독은 시종일관 롱샷과 롱테이크를 빈번하게 사용하면서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격앙되지도 흥분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국가권력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폭력과 학살, 제노사이드는 남의 얘기만 아니다. 우리 역시 4.3제주, 10.17여순, 한국전쟁, 5.18 광주를 겪으면서 아직도 그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부분이 존재한다.
가파르게 전개되는 홍콩 시위가 시가전 형태를 띄면서 위험수위에 육박하고 있다. 시작은 범죄인 인도법안(이른바 송환법)으로 시작한 시위는 벌써 5개월을 넘어섰다. 홍콩의 시위대는 이제 법안 철폐를 넘어 일국양제에 대한 회의까지 보이며 의사 표시를 하고있어 중국정부를 긴장시키고 있다. 시진핑은 최근에 강경진압을 암시하는 연설을 한 바 있다.
 
영화를 보면서 홍콩이 다시 ‘비정한 도시’가 되지않길 간절히 바래본다.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oks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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