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틸컷. 제공 : 네이버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코로나19 사태로 극장 안은 썰렁하다 못해 고요했다. 나를 포함해 관객은 겨우 3명. 마스크를 깜빡 잊고 영화관을 찾은 나로선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어느덧 공동운명체가 되어버린 극소수의 관객들은 서로 널찍이 떨어져 앉았다. 나는 맨 뒤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왜 이런 시국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꼭 봐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이내 깨닫는다. 혹자는 애프터 코로나19 시대에는 극장이 소멸할거라고 얘기하지만 대형 스크린을 갖추고 있는 멀티플렉스는 ‘1917’ 같은 영화 덕에 오랜 시간 더 버틸 것이다. 불이 꺼지자 나는 전투를 앞둔 군인의 심정으로 스크린을 쏘아보았다.

‘1917’은 관객 빙하기에 극장에서 그나마 가장 잘 나가고 있고 장기 상영 중인 영화다. 코로나 폭풍이 지나길 기다리며 개봉을 미루고 몸을 사리고 있는 영화를 대신해서 영화관 시그니처 역할을 하고있다.

서사의 빈약함이 이 영화의 치명적 약점이라는 얘길 들을 정도로 스토리는 간단하다.

1917년 4월 6일, 서부전선의 영국군 병사 스코필드(조지 매케이)와 블레이크(딘 찰스 채프먼)는 장군(콜린 퍼스)에게 직접 중요한 명령을 하달 받는다. 독일군의 함정에 빠진 데본셔 연대의 메켄지 중령(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라는 것이다. 블레이크에게는 데본셔 연대에 하나 밖에 없는 친형이 있다. 반드시 이 임무를 완성해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는 셈이다. 동료인 스코필드는 처음엔 간단한 업무라고 생각하고 블레이크를 따라 나섰지만 이내 1600명의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여정에 동참한다.

샘 멘데스 감독은 007시리즈의 스카이폴과 스펙터를 연출했다. 그의 여덟 번째 장편영화이자 5년 만의 신작 ‘1917’은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다. 할아버지가 직접 겪고 들은 이야기를 어린 시절 들었던 샘 멘데스는 이를 영화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직접 각본에도 참여했다. 이 영화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원 테이크 원 시퀀스(sequence)'다. 감독이 레이디~ 액션을 외치고 컷(cut)을 하면 하나의 샷(shot)이 되고, 같은 장소에서 촬영한 이런 컷을 모아 씬(scene)이 된다. 또 이런 씬이 모여서 하나의 시퀀스가 되는데 이런 단계를 넘어갈 때 관객들이 극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바로 콘티뉴이티(continuity)이다. 즉 극의 흐름을 연결하는 이음새,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 영화를 보시게 되면 잘 관찰하시라. 컷(편집)되는 장면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영화 전체를 원 샷으로 보이도록 만든 이 영화는 영화 형식이 시도할 수 있는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실제로는 원 씬 원 컷 영화는 아니다. 암전을 주거나 배경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컷 없이 다음 컷을 연결하는 방법을 썼다.

굳이 이런 기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관객으로 하여금 몰입감의 최대치를 맛보게 하려는 거다. 그런 목표였다면 대단한 성취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대형 스크린만이 줄 수 있는 시각적 쾌감에 관객은 아이맥스 영화로 한번 더 보고싶은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 대진 운이 나빠 기생충에 밀리긴 했지만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 시각효과상, 음향믹싱상을 거뜬히 수상한 걸로 세간의 인정과 평가를 받았다.

이제 역사 얘기를 좀 해보자. 1917년은 제1차 세계대전의 분수령이 되는 한 해였다. 세르비아의 한 청년이 쏜 총탄에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피살되는 사건을 계기로 잠재되어 있던 유럽의 화약고인 발칸반도는 삽시간에 제국주의의 전쟁터가 되고 만다. 그동안 식민지 약탈에 소외되어 있던 독일이 제국주의 침탈에 뒤늦게 뛰어들면서 영국, 프랑스, 러시아를 한 편으로 한 연합국과 독일 ,오스트리아 동맹국이 다른 한 편이 되어 맞붙은 인류사 최초의 세계대전이자 제국주의 전쟁이다.

금방 끝날 것 같은 전쟁은 참호의 진흙 구덩이에 빠진 병사들의 군화 마냥 헤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최악의 장기전으로 돌입한다. 이번에는 예전의 전쟁 양상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기관총, 전차, 대포 등 당시로선 가장 현대적인 무기로 군인들은 무장하였고 무차별 대량살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무려 천 만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1차세계대전은 진창 속에서 고양이 크기의 쥐와 뒹구는 병사들의 굶주림, 전염병이 일상화된 목볼인견의 참호전이었다. ‘1917’은 이런 아비규환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재현 해 놓았다. 그리고 그것은 또 하나의 장엄한 반전영화의 계보를 잇고있다.

마침내 장군의 명령을 전달한 스코필드는 한 그루 거대한 고목 아래에 털썩 주저앉는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겪은 일들이 하룻밤의 악몽이 아니었나 가늠할 뿐이다. 그래도 이 전쟁 통에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는 고목을 보면서 다시금 희망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생겨나길 바라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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