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틸컷.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최근 재벌그룹 회장이 이혼 위자료로 무려 1조가 넘는 돈을 내야할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떴다. 상상이 가지 않는 금액이라 실감이 나지 않치만 결혼 만큼 이혼도 정말 잘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은 든다. 뭐 돈 없는 사람이야 상관없지만 말이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확 뜨이는 명작 하나를 발견했다. 신산스럽고 참담한 이혼의 과정을 냉철하지만 따뜻함을 잃치 않고 그려낸 영화 ‘결혼이야기’ 얘기다.
 
최근 봉준호 감독이 올해 가장 볼 만한 영화로 이 작품을 꼽았고 내년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서는 남녀 주연배우(스칼렛 요한슨과 애덤 드라이버)를 일찌감치 주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하였다하니 기대를 가지고 볼만했다. 제작은 의외로 넷플릭스가 맡았다.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영화만을 제작할줄 알았는데 이렇게 웰메이드 명작도 만들어낸다. 영화팬으로선 반가운 일이다. 사실 영화의 제목은 [결혼이야기]지만 내용은 이혼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전 헐리웃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가 생각나지만 [결혼이야기]는 변화된 시대에 조응하여 이혼을 바라보는 방식도 신파를 벗어나 보다 현실을 직시해낸다.

연극극단의 대표이자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찰리(애덤 드라이버)와 그의 아내이자 배우인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아들 헨리와 뉴욕에서 살고 있다. 니콜은 연극으로 연기의 갈증을 달래고 있지만 결혼 전만 해도 나름 잘나가는 영화쪽의 신인배우였다. 시간이 갈수록 두 사람의 커리어 격차는 커지고 잘나가는 남편과는 다르게 니콜은 출산과 육아로 지쳐만간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찰리가 무대미술감독과 불륜을 저지른 사실을 니콜이 알게된다. 배신감의 그녀는 자신의 고향 LA로 떠나 새출발을 하고자 한다. 다시 영화배우의 길을 걷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길고 긴 이혼소송은 시작된다. 영화는 변호사의 과잉변론을 이들 부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위한 무기로 사용한다. 이혼전문변호사의 과다한 수임료로 경제적 타격도 만만치 않다. 그나마 남아있던 둘 만의 추억도 이제는 서로를 할퀴는 악몽으로 바뀐다. 이런게 아니었는데..그저 깔끔하게 헤어지고 싶었는데 하는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노아 바움백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제목이 왜 이혼이야기가 아니고 결혼이야기인지를 묻는 기자에게 “낮에는 법정에서 싸우다 밤에는 아이의 숙제를 봐줘야 하는” 상황도 겪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혼 도장을 찍기 전 까지는 이혼을 해 내는 과정도 결혼의 기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단지 결혼 적령기에 사랑에 빠진 상대방과 결혼을 하지만 평생 그 사랑을 지속시키는데는 대부분 실패한다. 변덕스런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선 어쩌면 당연한건지도 모른다. 그저 무늬만 부부처럼 살아가는 건 타인의 눈총이 싫거나 재산분할로 그동안 쌓았던 재산이 거덜나는게 두렵거나 아니면 그놈의 자식 때문이거나 그도저도 아니면 그동안의 의리 때문이라고 하면 너무 잔인한 말인가?

감독은 찰리와 니콜의 분량을 정확하게 배분했지만 그래도 이야기의 중심은 보다 더 여성친화에 가깝다. 이 대사를 보면 더욱 그런 심증이 든다. 니콜의 소송을 맡았던 이혼전문변호사인 노라는 곧이 곧대로 판사의 물음에 답하면 안된다고 충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독교적 뿌리인 예수님의 마리아는 완벽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심지어 마리아는 동정녀로 아이를 잉태했고 꿋꿋하게 자식을 부양했으며 죽을 때는 시체도 끌어안고 있었죠. 근데 아빠는 그 자리에 없었어요. 심지어 섹스조차 안했다니까!..(중략) 그러니까 당신(니콜)은 완벽해야 하고 남편(찰리)는 망치든 말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구요. 항상 당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훨씬 까다롭죠. 무지하게 짜증나지만..그게 현실이에요”

이혼의 전 과정에서 놓치기 쉬웠던 약자인 여성의 입장을 신랄한 어조로 쏟아낸 명대사다. 이런 대사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감독, 스칼렛요한슨, 로라 모두 이혼의 상처를 가지고 있어  나올수 있는 연출과 연기였는지 모른다. 부부로 사는게 만만치 않다. 연말에 더욱 그런 생각이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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