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1. 공공기관의 대응, 디테일에 달렸다

2. 이해관계자는 국민과 정부

3: 과제는 중요성지도에 있다

4. 협력기업과 함께하는 ESG 대응

5. 지속가능보고서가 성과 높인다

6. ESG평가와 경영평가

7. ESG는 기회, 부문별 성공사례

8. 가치와 명성, 디테일에 있다

 

[이종재 데일리임팩트 고문 겸 PSR 대표] 지난 5월 24일 오전. 서울 숭례문 앞 대한상공회의소 빌딩에 국내 주요 기업인들이 속속 몰렸다. '신(新)기업가정신'을 선언하는 자리다. 선언문에는 △지속적 혁신과 성장을 통한 경제적 가치 제고 △이해관계자에 대한 신뢰와 존중, 윤리적 가치 제고 △조직 구성원을 위한 기업문화 향상 △더 좋은 삶을 위한 친환경 경영 △지역사회와 상생 등 5대 실천 과제가 담겼다.

76개 참여기업은 이를 실천하기 위한 기구로 '신기업가정신협의회(ERT)'도 출범시켰다. ERT를 주도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반기업정서가 사라지고 국민에 대한 신뢰가 계속 증대돼 기업도 국민으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는 날이 오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미국의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을 떠올리게 된다.

2019년 8월 19일. 181명의 미국 기업인들은 ‘고객에게 기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종업원에게 공정한 보상 및 교육훈련을, 협력사에 공정하고 윤리적인 거래를, 지역사회에는 공동체 가치와 환경 보호’를 선언했다. 이를 전한 뉴욕타임즈는 1면 머리에 ‘최고경영자들, 더 이상 주주가치만 말하지 않겠다고 선언’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BRT는 미국 시가총액의 20%에 달하는 상위 200대 기업의 경영자단체다.

이날 BRT선언은 2020년 1월, 다보스포럼(WEF, 세계경제포럼)의 주제인 ‘그레이트 리셋’과도 맥을 같이한다. 범세계적 경제문제를 토론하고 국제적인 실천과제를 모색하는 민간 차원의 국제회의가 주주이익을 최우선하는 주주 자본주의 대신 고객과 근로자 지역사회 환경 모두에게 공헌할 수 있도록 기업 활동을 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ESG경영은 이해관계자 경영

본격적인 ESG경영과 함께 이해관계자 경영이 화두다. 기업의 이해관계자는 기업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당사자다. 고객과 근로자, 거래기업과 지역사회, 그리고 주주 등 투자자로 대별된다.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시민사회로 이해관계자의 영역도 넓어지고 있고 정부 역시 기업경영의 주요 이해관계자다.

이해관계자에 대한 학계의 정의는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과 소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종업원(E)과 소비자(C), 그리고 투자자(I) 및 공급 판매업체 등 상하위 국내외 협력업체(P)와 정부, 사회단체, 지역사회(S, 특히 비정부기구) 등 SPICE로 표현된다.

이해관계자 경영은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배경으로 한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역시 단어 그대로 자본주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직원, 고객, 거래처, 투자자는 물론 지역사회와의 상생 관계는 기업경영과 불가분의 관계다.

‘전 세계가 밀접하게 연결된 상황에서 기업이 주주에게 장기적 가치를 제공하려면, 모든 이해관계자를 위해 가치를 창출하고 모든 이해관계자가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효과적인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통해 효율적인 자본 배분이 이루어지며, 기업이 지속가능한 수익성을 확보함으로써 장기적인 기업가치가 창출되고 유지되는 것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가 ESG경영을 주문하면서 밝힌 이해관계자 경영의 기본 논리이기도 하다.

이해관계자는 ESG경영 추진 전 과정에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ESG경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추려내는 과제도출에서부터 실행, 보고, 평가로 이어지는 실행과정 하나하나에 이해관계자는 핵심적인 연결고리다.

과제는 이해관계자로부터

ESG경영의 첫 단계인 과제도출은 기업이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이 아니다. E와 S, G 각 분야별로 실행해야 할 업무가 명시돼 있다. 600여개 국제표준기구들이 다양하게 그 기준을 제시해놓고 있다.

대표적인 국제 표준기관은 GRI(지속가능보고기준)와 UNSDGs(유엔지속가능발전목표), 새로운 기준으로 부상한 SASB(지속가능성 회계기준위원회), TCFD(기후변화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 등이 중심이다. 너무나 많은 기준에 기업들이 혼란스러워하면서 IFRS(국제회계표준기구)가 ISSB(국제지속가능기준위원회)를 통해 통폐합에 나섰다. ISSB의 표준안은 현재 표준안을 놓고 의견 수렴중이며 연말께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현 단계에서 과제도출에 나서는 기업들은 따라서 각 기준들을 최대한 참고해야 한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들이 워낙 상세하고 방대해서 제시 기준을 모두 따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양한 국제기구의 기준들을 감안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분야별 실행과제를 명시하고 있으며 정부차원에서 정리된 K-ESG 가이드라인이 국내 기업들의 유용한 지침이다.

특히 정부 부처 합동으로 제시된 K-ESG 가이드라인은 국내외 주요 13개 표준 및 평가기관의 3000여개 지표를 반영하고 관계전문가 등과의 간담회 등을 통해 작성됐다. 정보공시(5)와 환경(17), 사회(22), 지배구조(17) 등 분야별로 재정리된 과제만으로도 61개에 달한다.

과제 도출과정은 이해관계자의 관심과 주문을 담는 작업이다. 이해관계자를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밀접도 순으로 파악한 뒤 각 단계별 이해관계자들의 주요 관심사와 요구를 ESG 기준에 맞춰 조사한다. 국내외 기준에 따라 도출한 과제에 이해관계자의 관심사항을 같은 비중으로 나열한다.

열거된 과제는 사내 담당자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관련 조직에서 우선순위를 정한다. 사내에서는 주요 관심사이나 이해관계자 입장에서는 후순위일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이를 X축과 Y축 그래프에 배치하는 과정에서 중대이슈가 서열화된다.

공급망 실사는 협력파트너와 함께

도출된 과제의 실행도 이해관계자와 함께할 때 성과가 높아진다. 기업이 전략적 파트너들과 함께 도출한 과제를 협업하게 되면 기업에 대한 이해도와 신뢰도가 높아지고 과제의 실효성도 강화된다. 지자체와 주민조직, 시민단체 등 인허가와 민원제기 가능성이 높은 이해관계자와의 협업은 사업추진에 결정적인 동력이다. 기업-기관 간 협업은 사업의 부담을 완화하고 시너지를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ESG경영의 핵심으로 부상한 공급망 실사는 ESG경영이 개별 기업단위에 그치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인권 환경 등 주요 ESG항목이 핵심 이해관계자인 협력업체들과 함께 실천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 검증돼야 하는 것이다.

ESG경영과 함께 강화추세에 있는 실행단계에서의 이슈는 공급망 실사다. 유럽의 경우 독일 등 국별로는 이미 공급망 실사를 법제화 해놓고 있으며 EU차원의 법안도 지난 2월 24일 공개됐다. 2024년부터 본격 시행돼 ESG경영에 관한 공급망 실사는 ‘납품 하청관계에 있는 모든 기업 간 공동운명체’로서의 대응이 불가피한 이슈로 부각됐다.

지침이 시행되면 실사는 인권과 환경 관련 기업 활동의 전 공급망에 걸쳐 이루어진다. 실사는 감사나 조사와는 달리 잠재적인 부정적 영향을 식별하고 예방 또는 완화·제거 조치 등에 초점을 맞춘다. EU집행위는 기업이 협력사와 ‘실사준수 계약’(추후 표준 계약조항 마련 예정)을 체결토록 유도, 협력사가 기업의 실사정책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고충처리시스템도 제도화된다. 이해관계자인 개인과 노동조합, 시민 또는 관련 조직 등을 대상으로 고충처리 시스템을 운영해 불만사항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이다. 부정적 영향의 식별, 예방, 최소화 등의 조치가 취해졌는지 연 단위 모니터링도 시행된다.

적용 대상 기업의 경영진은 기업 내 의사결정에 인권, 기후변화, 환경 등 지속가능성 여부를 포함해야 하며 회원국은 중소기업 전용 플랫폼을 구축해 재정 및 대응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집행위는 실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계획을 뒷받침한다.

회원국은 1개 이상 감독 당국을 통해 실사 이행을 모니터링하고, 집행위는 유럽 감독 당국 네트워크를 구축, 회원국 간 통일된 지침의 모니터링 협력 체계를 갖춘다. 지침 발효 7년 후, 집행위는 유럽의회 및 EU 이사회에 실사 이행상황을 보고하고 법안 개정 여부를 검토키로 했다.

보고서는 이해관계자를 위해

기업 입장에서 ESG경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대표적 이유 중 하나는 공시의 의무화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는 2025년부터, 2030년부터는 2000여개 전 상장사가 ESG실행내역을 사안에 따라 수시, 혹은 연례 보고해야 하는 것이다.

연단위 지속가능보고서, ESG경영보고서가 공시의 대표적인 수단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에서 연례보고서를 공개한 기업은 152개(KRX기준)인데 5년 내외에 2000여개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의무공시 개시연도가 2030년이라 하더라도 사안에 따라 3~5년치 추세치를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고서 역시 작성 기준이 정해져 있다. 잘하고 있다는 자랑이 아니라 규정대로 제대로 했는지 알리는 것이 지속가능보고서다. 보고서는 또한 도출과제의 실행과정과 결과를 담는 것이어서 ESG경영 실행 전반과 궤를 같이한다. 보고서 작성 기획단계에서부터 이해관계자를 포함하며 보고서 정리과정 역시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한다.

표준기관의 제시 기준에 따라 작성된 보고서는 제3자의 검증으로 신뢰도를 높인다. GRI나 AA는 보고서 작성에 4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포괄성(Inclusivity)과 중대성(Materiality) 대응성(Responsiveness) 영향력(Impact)이다. 각각의 원칙은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 채널로부터 수렴된 다양한 의견을 보고서에 반영하고 있는지, 수렴된 의견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는지, 중요한 이해관계자 이슈에 대한 대응활동이 적절히 보고되었는지 등이다.

(그림1) ESG경영과 이해관계자
(그림1) ESG경영과 이해관계자

평가는 이해관계자에 의해

평가기관의 평가 기초자료는 해당 기업의 지속가능보고서가 우선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평가기관의 평가는 기업의 공시와 기관의 자료, 미디어 기사와 이해관계자의 평판 등을 참고로 진행된다.

국내 대표 평가기관인 KCGS의 절차는 사전조사와 평가수행, 등급도출의 단계를 거친다. 사전조사는 기업의 각종 공시자료와 감독기구와 지자체 등 기관 자료, 뉴스 등 미디어 자료를 통해 기초데이터를 수집 분석한다. 평가는 ESG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가를 18개 대분류와 281개 핵심평가항목으로 세분화해 들여다본다. 심화단계에서는 기업가치의 훼손우려가 높은 ESG 관련 쟁점이 발생했는지를 58개 핵심평가항목에 바탕해 평가를 수행한다.

등급은 정량평가 결과 일정기준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해 정성 평가한 뒤 부여된다. 등급 부여 후 평가기관은 분기별로 이슈를 다시 조사해 등급을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 한해 최종 등급을 완성한다.

ESG 평가는 전반적인 등급산정과 함께 RE100과 같은 글로벌 이니셔티브 기관의 자체기준 충족 여부도 판정 대상이다. 회원으로 가입한 경우 자격요건을 갖췄는지를 기관 자체적으로 판정하고 있는 것이다. 회원가입이 거래의 조건이고 회원자격을 유지하려면 일정 요건을 갖춰야 하니 기업의 평가는 불가피하며 다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현재 평가시스템은 완전히 다른 트랙이다. 상장사의 경우 일반 ESG평가기관의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 공공기관의 평가는 정부에 의해 결정된다. 정부가 ESG 항목을 평가와 공시에 추가하고 평가편람에서 ESG부문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평가한다. 공공기관의 ESG 대응이 일반 기업의 ESG 경영과 근본적인 차이를 갖는 이유다.

공공기관의 1차 이해관계자는 국민과 정부

공공기관은 태생적으로 국민을 기반으로 한다. 국민생활의 편의를 위해 정부가 설립자금을 지원하고 고유의 활동영역을 부여한다. 공공기관은 모두 관할 부처의 지휘를 받는다. 공공기관이 정부의 정책을 제1 실행 목표로 하고, 활동 내용을 정부로부터 평가를 받는 이유다. 공공기관의 가장 우선적인 이해관계자는 따라서 국민과 정부다.

공공기관의 ESG경영은 정부의 정책방향과 달리할 수 없다. 과제는 정부의 종합적인 ESG대응과 해당 주무부처의 정책에서 도출하고 공시내용은 알리오(350개 공공기관)와 클린아이(1255개 지방공기업)에 정해진 항목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물론 지속가능보고서의 형태로 별도 공시하는 방식이 병행된다.

평가는 이 같은 전반적인 활동을 소수점까지 점수화하는 평가편람에 따라 이루어지며 각 부처와 인권위원회 등 정부조직의 각종 조사결과가 반영된다. 특히 평가에 관한한 공공기관은 지난 4년여 ‘사회적 가치구현’이란 항목으로 사실상 ESG경영에 대한 평가를 받아왔다. ESG경영과 함께 구분을 달리하고 용어가 달라질 수는 있으나 사회적 가치구현이라는 고유의 방향성만큼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SG경영을 새로운 부담으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새 정부는 공공기관의 경영방향에 대해 재무적 요소를 전보다 강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부 공기업의 경우 적자가 누적되고 있고 지나치게 편향적 경영이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10개 정책과제 중 ESG와 관련한 과제들은 큰 틀에서 변함이 없다. 특히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필두로 주요 ESG정책은 바뀌지 않았고 바뀔 수도 없는 상황이다.

공공기관에게 대세 ESG시대는 기회다. 설립목적과 활동방향이 국민을 향해 있고 실행은 정책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조화시키는 ESG 경영 고유 목적에 공공기관의 가치와 명성이 더욱 분명해 질수 있는 것이다.

*시리즈는 PSR 이종재대표와 CSR impact 서명지 대표의 협의와 집필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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