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가석방 심사위 결정, 13일 출소

부진했던 삼성 사업 숨통 트일 가능성

경영 전면복귀는 아직...활동 제약 고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미디어S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미디어SR)

[미디어SR 변윤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영어의 몸에서 벗어났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혐의로 재수감된 지 207일 만인 오는 13일 가석방된다.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한 숨 돌렸다’는 안도감과 함께 위기감이 읽힌다.

삼성전자는 주력사업인 반도체·스마트폰에서 경쟁사의 추격에 시달렸던 만큼 오너이자 최고 경영자로서 이 부회장의 역할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완전히 경영에 복귀하기까지는 난관이 예상된다. 가석방은 남은 형기 동안 재범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임시로 풀어주는 ‘조건부 석방’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재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에서는 ‘사면론’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내년 대선을 앞둔 여당이 ‘가석방 불가론’을 진보 진영의 눈치를 보고 있어 광복절 특사의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207일 만에 ‘가석방’

이날 법무부는 정부과천청사에서 비공개로 가석방심사위원회(심사위)를 개최하고 이 부회장을 포함해 광복절 기념일 가석방 대상자 심의를 진행했다.

심사위에는 위원장인 강성국 법무부 차관과 구자현 검찰국장·유병철 교정본부장 등 4명의 내부위원, 윤강열 서울고법 부장판사, 김용진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 홍승희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백용매 대구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 조윤오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 등 외부위원 5명이 참석해 각 교정시설이 예비심사를 거쳐 선정한 대상자 명단을 놓고 재범 위험성, 교정 성적, 범죄 동기 등을 고려해 적격 여부를 과반수로 의결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가석방 적격 결정을 보고 받고 곧바로 재가했다. 통상 심사위 다음날 장관에게 결과가 보고됐던 전례를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당초 법조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가석방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0일 삼성전자 화성캠퍼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법무부 지침상 형기의 60%를 마치면 (가석방 요건이 되는데) 이 부회장도 8월이면 60%를 마친다.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발언한 데 이어 허가권자인 박 장관도 이틀 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부터 가석방 비율을 대폭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특히 박 장관은 “특정인에 대한 가석방 여부는 왈가왈부 할 사안이 아니다”라면서도 “국민의 법감정과 공감대가 중요하다. 이재용 부회장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여지를 열어뒀다. 복역률 외에 사회적 법감정과 범죄동기, 선고형의 적정성, 정상참작의 여지 등을 감안해 가석방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맞춰 법무부가 지난 달부터 가석방 예비심사 대상자 선정기준을 형집행률 55~95%에서 50~90%로 완화하자 8월 가석방론에 무게가 실렸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형기의 60%를 채워 복역률 요건을 충족했다. 문제 없는 수형생활로 모범수로 분류됐을 정도로 교정 성적도 좋았다. 게다가 사회적 법감정에서도 우호적이다. 최근 3달 사이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부회장의 가석방에 찬성하는 응답자 비율이 60%를 웃돈다.

시민사회단체에서 문제 삼는 재범 위험성도 낮다. 준법 경영에 대한 이 부회장의 의지가 확고해서다. 재수감 이후 나온 첫 메시지가 준법감시 및 경영이었을 정도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5월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몸의 자유는 얻었지만 경영은 ‘발목’

이 부회장은 일단 주력사업인 반도체·스마트폰 사업 전략을 재점검하고 초격차 속도를 높이기 위해 방안을 수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국정농단 사건에 이어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재판까지 진행되면서 경영 리스크가 누적됐기 때문이다.

이미 삼성전자의 기술 경쟁력은 균열이 감지된다. 삼성전자는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의 첨병으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 힘 주고 있지만, 기대만큼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세계 1위인 대만 TSMC와의 격차는 3배 가까이 벌어졌고, 미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인텔이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으로 파운드리 경쟁력을 키우는 중이다.

세계 1위 메모리도 안심할 수 없다. 미국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가 176단 낸드와 DDR5 D램 기술 개발과 생산에서 삼성전자를 앞질렀다. 이를 의식한 듯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컨퍼런스 콜에서 D램 회로 폭을 구체적으로 밝힌 데 이어 “더블 스택 176단 7세대 낸드를 채용한 소비자용 SSD를 하반기부터 양산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스마트폰 사업에서는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애플과 중국업체 사이에 끼여 점유율 20%대가 무너진 것은 물론, 지난 6월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국 샤오미에게 점유율 1위를 뺐겼다.

AI(인공지능)와 전장, 5G(5세대 이동통신), 바이오의 미래 성장사업의 성과 역시 신통찮다. 5G(5세대 이동통신) 사업은 지난해 미국 버라이즌과 8조원 규모 계약을 맺은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올해 들어선 미국 T모바일과 AT&T, 버라이즌 등 수주전에서 에릭슨·노키아에 밀렸다. 6G(6세대 이동통신) 백서를 발간하며 기술 선점에 나선 것을 고려하면 아쉬운 모습이다.

AI에서도 2017년 11월 삼성리서치를 출범시키고 세바스찬 승(승현준)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소장(사장)을 영입하며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정체된 인상이다. 네이버나 LG전자가 초대규모 AI 기술 현황을 공개하며 속도를 올리는 것과 대조적이다.

전장의 경우, 하만 인수 4년 만에야 올 2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 부회장이 2018년 6개월간 해외 출장을 다니며 생산업체, 부품사들을 직접 방문했을 만큼 공 들이는 분야지만 입지는 불안정하다. 경쟁사인 LG전자가 파워트레인과 헤드램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삼각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영역을 확대하는 동안 삼성전자는 디지털 콕핏과 텔레매틱스 컨트롤 유닛(TCU)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도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M&A를 공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중국·유럽·미국 등 각 국에서는 반도체를 ‘전략무기’로 규정하고 첨단 기술력 확보 및 공급망 내재화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경쟁사들의 투자도 과감해졌다. TSMC는 향후 3년간 파운드리 사업에 1000억달러를 투자하고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 5개를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엔비디아와 AMD, SK하이닉스, 퀄컴도 유망 기업 인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미국 반도체 설비 증설 투자도 결론 내지 못하고 있다. “AI·5G·전장 사업 등 다양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인수를 검토중”고 밝힌 만큼, 이 부회장이 미국 내 투자를 마무리 짓고 M&A에 나설 가능성이 점쳐진다.

'사면' 최선이지만 당장은 어려울 듯

다만, 재계에서는 가석방으로는 이 부회장의 경영 활동이 제약이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상 5년 취업제한에 걸리는 것은 물론, 해외출장도 제한된다. 법무부 장관이 취업제한 대상에서 예외를 인정하는 별도의 승인을 해주지 않는 한, 지난해처럼 국내외 고급 인맥을 활용해 전방위적인 경영 활동을 펼치기 어렵다.

재계 관계자는 미디어SR에 “과감하고 전략적인 선행투자가 있었기에 지금의 삼성이 있었다. 그렇지만 수십조가 오가는 투자는 그만큼 책임이 무겁기 때문에 오너가 아니고선 결단하기 어렵다”며 “지금도 투자 시기가 다소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K-글로벌 백신 허브화 비전에서도 삼성의 역할이 필요하다. 국내 코로나19 백신 수급 상황이 여의치 않은 만큼, 이 부회장의 세계적 인맥이 수급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이 부회장은 지난해부터 정부와 협력해 화이자 등 백신 도입에 직접 나선 데 이어 구속 직전 백신 도입을 논의하려 이달 아랍에미리트(UAE) 출장을 추진했었다.

이에 따라 사면론이 더욱 탄력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재계는 다시 한번 중지를 모은 상태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등은 오는 11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는 자리에서 이 부회장의 사면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여당에서도 사면론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대만 TSMC에) 도전할 기업은 삼성밖에 없다. 전략적 의사결정이 필요한데 총수의 결심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해) 국민들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법조계에서는 사면 시기가 일러야 연말쯤에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본다. 우선 정치적으로 부담이 크다. 정부·여당의 지지세력인 참여연대·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기업 성장을 이유로 이 부회장이 가석방된다면 기업범죄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가석방마저 반대했기 때문이다. 

주무부처인 법무부에서도 관련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박 장관은 “특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데 8·15가 내일 모레”이라며 “제가 사면심사위원장인데 현재까지 대통령 뜻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법무부에서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가석방을 한다는 자체가 사면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이 부회장이 대주주로서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업무 지시를 하거나 해외 CEO(최고경영자)를 만나는 등 온전한 경영활동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혐의가 연계된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이 거론되지 않는 것으로 미뤄볼 때 이 부회장도 광복절 사면을 어려울 수 있다”면서 “반도체와 배터리, 백신 등 국가전략기술산업이 모두 삼성과 연관돼 있는데, 일단 정치적 논리에 기업 경쟁력이 발목 잡히지 않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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