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백신 역할해달라” 요구해놓고 취업제한은 “법대로” 뒷짐

진보진영, 경찰 고발 등 제동…삼성, 정부 지원사격서 해법 모색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3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가석방으로 출소한 뒤 대국민 입장을 밝히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3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가석방으로 출소한 뒤 대국민 입장을 밝히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출소하자마자 ‘위법’ 논란에 휘말렸다. 

이 부회장이 사실상 경영 복귀에 들어가자,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재벌 특혜’라며 비난 여론을 키우는 형국이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 가석방 직후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극도로 말을 아끼며 자중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직 2개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다 가석방 반대 여론이 거센 편이어서 이 부회장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지 않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로부터 반도체·백신 분야에서 ‘역할을 해달라'하는 사실상의 압박을 받고 있어서다. 물론 보호관찰이 적용되고 취업제한도 유지되는 상태에서다. 이 부회장으로선 위법 논란을 무릅쓰고 국익을 위해 나서야 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으로 내몰린 셈이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삼성을 문재인 정부 임기 말 '재벌 길들이기'의 타깃으로 삼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는 실정이다. 

“경영 복귀는 안돼” 비난여론 키우는 진보 진영

이 부회장의 가석방 명분은 ‘국가 경제 활성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엄중한 위기 상황 속에서 특히 반도체와 백신 분야에서 역할을 기대하며 (이재용 부회장) 가석방을 요구하는 국민들도 많다”면서 “국익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이며, 국민들께서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며 가석방의 배경을 설명했다.

법무부도 같은 논리를 견지했다. 박범계 법무장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상황과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한 고려 차원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가석방) 대상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 출소 이후 대규모 투자와 고용 등에 적극 나서 경기를 부양해달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을 옥죄고 있는 족쇄는 풀리지 않은 상태다. 법무부측이 “이재용씨만을 위한 가석방이 아니다”라고 말했듯 보호관찰과 취업제한은 그대로 유지됐다. 

가석방은 남은 형기 동안 재범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는다. 모든 권리가 회복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상 5억원 이상의 횡령·배임 죄를 저지를 경우, 형 집행이 종료된 날부터 5년간 유죄판결을 받은 행위와 관련 있는 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다. 이를 엄격히 적용한다면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이자 ‘최고 경영자’로 나설 수 없다. 

진보정당과 시민사회, 노동계는 이같은 법 규정을 들어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에 제동을 걸 태세다. 이들은 정부와 여당이 지지층 결집이 필요하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특혜’로 규정지으며 정부·여당을 압박하는 한편으로 ‘경영 복귀는 위법’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는 시평을 통해 “(이 부회장 가석방은) 누가 보아도 일종의 편법”이라며 “정치하는 이들이 이 문제를 정치 대신 '법의 이름으로 법의 정신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는 것을 막기 위한 시도도 시작됐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미 지난 5월 이 부회장 등을 취업제한 규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바 있다.  

“취업 승인은 법 절차 따라야” 과제 던져주고 뒷짐 진 정부

경영 복귀 후폭풍이 벌써부터 불거지고 있지만 정부는 뒷짐만 진채 수수방관하는 모양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요구하는 측에서는 한미정상회담 후속 조치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구축, 백신 확보 등을 명분으로 내걸었다"면서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로서는 이런 국민의 요구가 있으니 이 부회장이 이에 부응하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취업 승인은) 법과 절차에 따라서 법무부가 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주무기관인 법무부도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취업 승인을 고려한 바 없다”면서도 “이 부회장 측의 취업제한 해제 신청이 접수되면 (기준 등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취업 승인의 공은 어느새 삼성전자로 넘어온 듯 싶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출소 직후 주요 경영진으로부터 경영 현안을 보고받을 정도로 경영공백이 상당했던 점에 비춰볼 때 조만간 취업 승인을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 부회장이 취업 승인을 신청하면 법무부 산하 특정경제사범 관리위원회에서 비공개로 제한 해제 여부를 심의, 의결하게 된다. 전례도 있다. 김정수 삼양식품 총괄사장은 지난해 3월 횡령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되면서 사장직에서 물러났다가 7개월만에 복귀했다. 오너 공백으로 경영상 문제가 발생했다는 삼양식품 측의 요청이 관리위원회에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기업인의 취업제한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실제 배임 혐의로 2018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이듬해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로 재선임됐지만, 법무부는 그의 취업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에 지난 2월 취업제한 처분 취소소송을 냈지만, 재판부는 “실질적으로 ‘경영권 행사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취업 승인 없이도 이 부회장의 경영 활동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경영상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무보수 미등기임원일 경우에는 경영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유다. 한 예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4년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지만, 무보수로 재직하면서 회장직을 그대로 유지했다. 

사실 관련법을 적용하더라도 이 부회장이 취업제한 대상이 되는지는 모호한 측면이 있다. ‘형 집행이 종료된 경우’라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도 취업제한 적용 여부를 놓고 “(이 부회장에게 적용하기에는) 취업제한의 요건과 범위가 불명확한 점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나 무보수 미등기 임원 신분으로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경영계의 지적이다. 최고 결정권자가 부재한 듯한 모양새는 대외신임도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해외출장과 같은 대외행보에 나설 때도 일일히 법무부에 신고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더욱이 진보진영에서는 이 부회장의 옥중 경영을 문제삼으며 해임을 요구한 전력이 있다. 재계에서 이 부회장의 미등기 임원이라는 점, 과거 옥중 경영을 했던 전례가 있었던 점을 들어 일련의 논란이 소모적이라고 지적한 들 반대여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된다. 

총수 복귀 해법은 삼성으로  

결국 이 부회장이 잡음 없이 경영에 온전히 복귀하기 위해서는 취업 승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영학자는 “이 부회장이 보수를 받지 않고 경영에 참여했으므로 취업제한에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다”며 “그렇지만 입법 취지를 왜곡한다는 비난을 일부러 감수할 이유는 없다. 투자 못지 않게 삼성의 신임도를 제고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은 ‘정공법’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특히 이 부회장의 전세계 ‘고급’ 인맥을 활용해 풀어야 하는 사안들이 있다는 점에서도 적법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정부는 백신 확보전에서 이 부회장이 역할해 주길 바라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10명 중 8명 이상이 델타 변이 감염자일 정도로 확산세가 심각한 지경이다.  

정부는 집단 면역체제를 앞당겨 구축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백신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달에 이어 이번달에도 모더나로부터 약속된 물량을 공급받지 못했다. 보건복지부 2차관 등 고위관계자가 미국까지 건너갔지만 다음달 초까지 공급물량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을 뿐 확답을 받지 못했다. 

때문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위탁생산하는 모더나 백신 물량 중 일부분을 국내용으로 활용하거나 화이자 백신 확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가교가 되길 바라고 있다. 

실제 이 부회장은 지난해 말 정부 협상단과 화이자와의 협상이 답보하자, 직접 화이자 고위 경영진과 협상단 사이에 다리를 놨다. 이 부회장은 오랜 기간 교류해온 샨타누 나라옌 어도비 회장이 화이자 사외이사라는 점을 알게 되자 나라예 회장에게 화이자 회장과 백신 총괄사장을 소개받아 정부 협상단과 만남을 주선했다. 이후 백신 도입이 급물살을 탔다. 

지난 1월에는 아랍에미리트(UAE) 출장을 준비하면서 사업 협력과 함께 UAE가 확보한 백신 물량을 공유하는 방안을 논의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구속 수감되면서 무산됐다.

반도체 연대에서도 이 부회장의 책임은 막중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안으로는 내수 회복을, 밖으로는 세계 패권의 중심으로 우뚝 서길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미중 패권전쟁에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반도체·배터리를 전략무기화하는 한편, 동맹국에 ‘반(反)중국 연대’ 합류를 종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로서는 중국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들어 유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반도체 수요가 많은 모바일의 경우, 샤오미·오포 등 중국 제조업체들이 전세계 시장 점유율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전기차 시장도 미국의 3배 수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글로벌 신용 평가사 피치는 전세계 전기차 판매 비중이 2040년 최대 45%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는데, 중국 시장에서 폭발적 성장세가 점쳐진다. 중국 정부는 2025년 자국 내 친환경 차 판매 비중을 전체의 2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에 이 부회장이 미국 내 투자를 늘리거나, 중국에서의 신규 투자 등을 단행해 미국과 중국 모두에 체면을 세워주길 바라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이 부회장이 대외관계에서 윤활유 역할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9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로 한·중 관계가 얼어붙자 중국 시안공장에 80억달러 추가 투자를 단행했다. 그해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에 대해 수출 규제에 나서자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전에 사면 또는 가석방을 받은 기업인들과 비교해 이 부회장을 향한 정부의 요구가 너무 많다"면서 "백신처럼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까지 기업인에게 떠미는 건 온당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취업 문제가 걸려 있는 만큼, 이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 정부가 풀지 못한 문제를 풀어야 할 판이다"라며 "삼성 길들이기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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