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순방 중 투자계획 발표 가능성 있어”

삼성전자 반도체 15라인의 내부 전경. 제공: 삼성전자
삼성전자 반도체 15라인의 내부 전경. 제공: 삼성전자

 

[미디어SR 선다혜 기자] 국정농단 혐의로 수감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면론이 정치권과 경·재계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반도체 패권경쟁으로 치달으면서 국내 반도체시장에도 전운이 감돌고 있다.

특히 국내 최대 반도체기업인 삼성전자는 '총수(이재용 부회장) 공백기'라는 불리한 여건에서도 미국 정부의 반도체 투자 러브콜을 받는 등 CEO리더십이 그 어느때 보다 중시되는 신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12일 미국은 백악관에서 반도체 최고경영자(CEO) 서밋을 개최하고, 삼성전자를 비롯해 포드, GM 등 굵직한 기업들을 초청했다.

바이든 美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미국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고 미국 공급망 강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한 자리”라며 “반도체 등에 적극적 투자를 하고 있지만 충분치는 않으며, 연구개발(R&D) 투자는 미국의 인프라에 대한 투자”라고 역설했다.

이처럼 미국 정부가 자국 내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대하려는 이유는 대만과 한국 등 동북아시아에 집중된 공급망이 패권다툼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분석한 지난 4월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반도체 생산능력의 75%와 주요 원료 공급이 중국과 동아시아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2019년 기준으로 살펴보면 글로벌 웨이퍼 생산능력은 ▲대만 20% ▲한국 19% ▲일본 17% ▲중국 16% ▲미국 13% ▲유럽 8% 등으로, 미국 기업의 경우 반도체 연구개발·설계·장비 등에서는 선두주자지만 생산 시설은 태부족한 상황이다.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미국 내 투자를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경쟁사들 속속 美 투자 발표하는데…삼성은?

백악관 회의 이후 경쟁사인 대만 TSMC는 360억원(약 40조원) 규모의 첨단 반도체 공장 6곳을 설립하고, 인텔은 200억원(약 22조) 규모의 애리조나주 파운드리 공장을 증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아직까지 미국 투자 계획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재계에서는 오는 21일(미국 현지시간)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 순방길에 삼성·SK·LG그룹의 주요 경영진이 비공식 경제사절단 형태로 동행하는 만큼, 삼성전자의 투자계획 발표가 순방 일정 도중 이뤄질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더욱이 삼성전자는 한미정상회담 전날인 20일 미국 상무부가 주최하는 반도체 공급 부족 회의에도 참석하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측은 “(미국 대규모 반도체 투자는)아직 결정된 바 없으며, 알 수 없다”고 신중한 태도를 나타냈다.

사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미국에 현지 170억 달러(약 20조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신규 라인 증설을 위해 주 정부들과 협의해 왔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지난 1월 국정농단 재판에서 구속된 이후 투자 결정이 지연되며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재계에서는 당시 오스틴공장 정전 사태 등의 대외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결정권자인 이 부회장의 공백이 투자 지연의 결정적 요인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국내가 아닌 국외라는 물리적 거리가 있는 가운데 수십조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경·재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이 부회장의 사면론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자연스레 조성된 측면도 있다.

통상적으로 기업들은 오너 공백 기간에는 M&A(인수·합병)이나 대규모 투자에 대해서는 공격적인 행보를 띠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 품귀현상이 글로벌 패권 문제로까지 비화되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공백 해소'가 하나의 현안으로 떠올랐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의 사면에 대해 회의적 태도를 보이던 청와대도 변화의 움직임이 포착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4주년 특별연설 이후 기자간담회를 통해서도 이 부회장의 사면에 대해 “충분히 많은 국민의 의견을 듣고 판단하겠다”고 신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는 3~4월 경제 5단체를 비롯해 사회 각계의 사면 건의에 대해 “검토한 바가 없고 계획도 없다”고 선을 그었던 청와대 공식입장과는 결이 다른 모습이다.

‘총수 공백’ 글로벌 입지 약화로 이어져

이 부회장의 공백은 경영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의 평판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유력 여론조사업체인 해리스폴이 발표한 2021년 기업평판 우수 100대 기업 명단에서 삼성은 지난해에 비해 9단계 하락한 31위를 기록했다. 올해 평점은 100점 중에서 77.5점에 그쳤다.

해리스폴의 기업 평판 순위는 지난 4월 8~21일 미국에 거주하는 성인 남녀 4만293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번 순위 하락이 이재용 공백 상태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주목할만 하다. 그동안의 평가에서도 삼성의 순위는 이 부회장의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곤 했다. 

지난 2012년 해리스폴의 기업평판 우수 100대 기업 명단 조사에서 삼성은 처음으로 순위권에 든 이후, 2013년 11위, 2014년 7위, 2015년 3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2016년 7위로 떨어진 뒤 갤럭시 노트7 발화사고와 이 부회장의 구속 등의 여파로 2017년 49위까지 추락한 바 있다.

이어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후 2018년 35위까지 올랐으며, 2019년에는 3년 만에 7위를 기록하며 다시 예전의 삼성 위상을 되찾는 듯 했다.  다만 지난해 사법리스크가 불거지면서 22위로 떨어졌으며, 올해는 31위로 내려앉고 말았다.

해리스풀의 경우 순위 결과만 발표할 뿐 배경에 대한 해석은 내놓지 않는 것이 관행이다. 따라서 평가지표별 점수를 통해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삼성의 경우, 해리스폴이 기업 평판 순위를 매기기 위해 선별한 7가지 지표가 지난해에 비해 올해 모두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성장성 부문은 지난해 11위에서 올해 28위로 하락했으며, 비전 역시도 19위에서 38위로 곤두박질쳤다. 이는 사법리스크로 인해 신뢰성에 손상을 입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관계자는 미디어SR에 “이재용 부회장의 공백이 글로벌 시장에서 역시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지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오너의 공백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미래 준비를 위한 투자에 제동이 걸리기 때문에 이같은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몇 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오너의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정농단 사태 이후 삼성은 몇 년째 계속되는 사법리스크로 인해 글로벌 시장에서도 위태롭게 인식하는 듯 싶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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