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 오스틴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미국 텍사스 오스틴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미디어SR 김다정 기자]글로벌 반도체 패권싸움을 주도하는 미국 정부가 또다시 주요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소집해 투자 압박에 나선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이어 이번에는 미 연방 상무부가 오는 20일(현지시간) 삼성전자를 비롯해 주요 반도체 기업과 2차 화상회의를 열기로 했다.

오는 20일 한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삼성전자를 불러 다시 한 번 반도체 공급 부족 회의를 개최하기로 결정한 만큼 한국을 상대로 ‘미국 내 반도체 생산 투자를 늘리라’는 취지의 사실상의 압박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아직 결정된 바 없으며, 알 수 없다”고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연이은 미국 정부의 투자 재촉과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진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날 투자 발표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12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지나 러만도 미국 상무장관은 오는 20일 반도체 칩 부족 사태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화상회의를 연다.

참석 대상은 반도체 제조사 인텔과 대만 TSMC, 삼성전자는 물론 반도체 수요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 구글, 아마존도 초대됐다.

블루버그통신은 러먼도 장관이 초대장에서 “반도체 공급망 문제를 둘러싸고 ‘열린 대화’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반도체의 공급 업체와 소비자를 한 데 모으고 싶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바이든 정부 들어 미 행정부 주도로 기업들을 불러 모아 반도체 관련 회의를 여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지난달 12일 바이든 미 대통령은 삼성전자·TSMC 등 19개 기업들과 화상회의를 열고 미국 투자 확대를 요구한 바 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자립화’ 드라이브를 사실상 공식화하면서 “우리의 경쟁력은 당신들이 어디에 투자하느냐에 달렸다”라며 노골적으로 미국내 투자를 요구했다.

이날 이후 삼성전자와 함께 회의에 참석했던 반도체 업체인 대만 TSMC와 인텔은 미국의 요청에 즉각 화답해 대규모 투자를 잇따라 발표했다.

인텔은 백악관 회의 직후 6개월 안에 자체 생산설비를 활용해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TSMC는 당초 미국 애리조나에 120억달러(한화 약 13조원)를 들여 짓겠다고 밝힌 신공장 한 곳을 최대 6개로 확대하는 것을 계획 중이다.

이재용 부회장 역할론 급부상…청와대 일주일 만에 ‘입장 변화’

계속되는 미국의 반도체 투자압박과 세계 반도체 패권싸움 속 한국이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자 국내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특히 국내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빈자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느껴지는 상황이 발생하자 ‘이재용 사면론’에 대한 정부의 기류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그동안 사회 각계각층은 물론 국민 여론도 ‘이재용 사면론’에 힘을 더했지만 정작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사면론과 관련 “충분히 많은 의견을 들어 판단해 나가겠다”고 밝히면서 기류 변화가 엿보인다.

지난 4일 여당에서 이지용 부회장 사면론이 나왔을 당시만 해도 청와대측은 “검토할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으나 불과 약 1일주일만에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춘추관에서 진행한 취임 4주년 특별연설과 기자회견에서 “경제계뿐 아니라 종교계에서도 사면을 탄원하는 의견들을 많이 보내고 있다”며 “국민들의 많은 의견을 충분히 듣고 판단해 나가겠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문 대통령은 “반도체 경쟁이 세계적으로 격화되고 있어 우리도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경쟁력을 더욱더 높여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사면론에서 거론하는 근거까지 직접 언급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이 부회장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로 골머리를 앓는 동안 경쟁사들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투자 종용에 일제히 화답하며 패권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바이든 대통령에 즉각 화답해 공격적인 투자를 준비하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는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어 자칫 반도체 전쟁에서 후발주자로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 마저 일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미디어SR에 “문 대통령이 과거 대선후보 시절 뇌물 등 5대 중대범죄자의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한 만큼 사면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최근 기류의 변화가 감지된다”며 “최근 불확실성이 커진 국제정세나 여론의 무게가 급격하게 한쪽으로 실리면서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뒤늦은 ‘K-반도체’에 추가지원·세액공제 약속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정부의 입장 선회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당초 정부는 세금 감면 혜택이 대기업에만 집중된다는 ‘특혜’ 논리를 앞세워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원 확대를 망설였으나 세계 각국의 공세 속에서 자칫 크게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자 뒤늦게 특별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일 경기도 판교 시스템반도체 설계지원센터에서 열린 혁신 성장 빅3 추진 회의에서 “반도체 R&D(연구개발)와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홍남기 부총리는 “우리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반도체 초격차 유지, 시스템반도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존과는 획기적으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며 “종합반도체 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K-반도체’ 벨트전략을 마련 중이며 금명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운을 뗐다.

홍부총리는 이어 지난 10일 관계장관회의(녹실회의)에서는 “K반도체 관련 전략을 점검했으며 구체적인 방안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직 세액공제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세액공제 확대를 통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받을 수 있는 세금 감면(세액공제) 혜택은 연간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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