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ITC "공익 고려했다"...자국(미국)산업 고려해 SK 수입 일부 허용

양사 합의가 최선의 선택...하지만 양사간 시각 차는 갈수록 벌어져

각 사 CI. 편집=정혜원 기자
각 사 CI. 편집=정혜원 기자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LG에너지솔루션이 2차전지(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승소했다.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는 SK이노베이션의 2차전지에 대해 10년간 미국 내 수입을 금지하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는 한국시간 11일 오전(미국 현지시간 10일)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사실을 확정하는 최종 결정(Final Determination)을 발표했다.

ITC는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가 배터리 셀, 모듈, 팩 및 관련 부품·소재에 활용됐다면서 미국 관세법 337조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 ‘미국 내 수입 금지 10년’을 명령했다.

ITC는 아울러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영업비밀 침해 중지 10년’도 적용했다. 이미 미국 내로 수입된 품목에 대해서도 미국 내 생산, 유통, 판매를 모두 금지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단 ITC는 “공익과 관련한 사항을 고려했다”면서 제한적으로 SK이노베이션 제품 일부의 수입을 허용했다. 포드의 전기픽업트럭 F150향 배터리 부품·소재는 4년간, 폭스바겐 MEB향 배터리 부품·소재는 2년간 수입을 허용했다.

아울러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용 배터리를 탑재한 기아차가 미국 내 판매된 것을 고려해 수리 및 교체를 위한 전지 제품의 수입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미디어SR에 “이번 ITC 결정은 SK이노베이션이 그동안 자사의 2차전지 관련 영업비밀을 탈취해 연구개발, 생산, 테스트, 수주, 마케팅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부정하게 사용해 경제적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LG에너지솔루션의 일관된 입장을 인정한 것”이라며 “(조기패소 결정도) ITC가 재판을 더 진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및 증거인멸 정황을 확인한 데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LG화학이 ITC에 제출한 '증거 유출 관련 제재 신청서' 중 SK이노베이션 내에서 오고 간 메일 본문. 자료=LG화학 제공  
LG화학이 ITC에 제출한 '증거 유출 관련 제재 신청서' 중 SK이노베이션 내에서 오고 간 메일 본문. 자료=LG화학 제공  

ITC의 최종 결정 전까지 SK이노베이션의 조지아주 투자 및 공장 증설과 관련해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됐으나 예상을 깨는 결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ITC의 2010~2018년 판결의 통계로 보면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경우, 모든 사건에서 ITC 예비결정이 최종결정으로 유지됐으며 이번 소송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이 밝힌 ITC의 판결문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의 정보를 확보하려는 노력은 조직 차원에서 전사적으로 이뤄졌고 법적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서 “몇 가지 예시만 봐도 LG화학의 영업비밀을 사용했을 연관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라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ITC는 △배터리 BOM(Bill of Materials, 원자재 부품명세서) △양극 및 음극 믹싱, 코팅, 롤링 및 절단 관련 배합과 사양 등의 배터리 제조 핵심 비결(레시피) △기타 영업비밀 등이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으로부터 탈취한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명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당시 LG화학의 원자재 부품명세서를 SK이노베이션이 입수해 경쟁사의 원가구조를 파악하고 이를 저가 수주에 활용했다는 LG에너지솔루션의 주장을 ITC가 인정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ITC 결정이 소송의 쟁점인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실질적으로 밝히지 못한 것이어서 아쉽다”고 유감을 표명했으며 “자사가 미국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 중인 친환경 자동차 산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수천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 등 공공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바이든 대통령이 SK 구원투수?

ITC의 최종결정 이후 60일의 대통령 심의(Presidential Review) 기간이 있어, 미국 대통령은 공익적 목적이 있다고 판단될 때 수입금지 조치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두 달 내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만 이같은 사안에 대해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거부권을 행사한 경우는 매우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이후 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경우는 단 1건에 불과하며, ITC 설립 이후에는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해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된 적이 아예 없다. 미국은 영업비밀 침해와 증거 인멸 등의 행위를 범죄로 보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은 거부권 행사 가능성에 불을 지피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공공 자동차를 자국산 전기차로 대체하겠다고 밝혔으며, SK이노베이션은 미국 포드사(社)와의 대규모 2차전지 공급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이로 인해 SK가 미국에서 배터리를 생산하지 못하면, 바이든의 구상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 주 배터리 공장 위치 제공: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 주 배터리 공장 위치 제공: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이 조지아주에 건립할 1·2공장에 대해 지금까지 투자를 결정한 금액만 해도 약 3조~5조 원 수준에 이른다. 이들 공장에서 생산되는 배터리는 내년부터 각각 미국 내 폭스바겐, 포드 공장에 납품될 예정이다. 또한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수주한 배터리 규모만 약 20조원 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

하지만 원칙을 뒤집는 수준의 대통령 거부권을 사용하기에는 부담이 클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ITC는 조기패소 판결 이후  SK이노베이션의 요청과 사안의 엄중함,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복잡성 등을 고려해 ‘전면 재검토(Review in its entirety)’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ITC는 주정부 및 공급사 등 공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해관계자 전반의 의견까지 들었다는 전언이다.

그럼에도 ITC는 기존 조기패소 판결을 그대로 인용해 LG에너지솔루션의 승소로 최종결정을 내렸고, 침해 품목에 대한 수입 금지 및 영업비밀 침해 중지 명령도 발효된 상태다. 이에 따라 이번 사안과 관련해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하기에는 부담이 클 것으로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단 SK이노베이션은 대통령 심의 기간 동안 공탁금(Bond)을 통해 ITC 명령 효력을 일시 중지시킬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아직 공탁금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다. 수입금지를 적용받는 품목이 확정된 후에 공탁금 규모도 산정된다. ITC는 2차전지 및 관련 부품 등 영업비밀 침해를 광범위하게 인정했으므로, 공탁금 규모도 상당한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 합의, 아직 가능하지만 입장 차이는 여전 ....SK “영업비밀 침해 증명 안됐다” 對 LG “판결 존중과 합의 진정성 필요” 

ITC의 최종 판결 이후에도 양사 간 합의가 진행될 경우 SK이노베이션은 대통령 거부권 사용을 기대하지 않고, 최종 판결에도 제한없이 미국 내 수입과 공장 가동 등의 사업 활동을 정상화할 수 있다. 하지만 양사가 합의에 실패할 경우 그 즉시 침해 품목에 대한 수입금지가 적용돼 공장 가동 등이 중단되는 등 피해가 엄청날 것으로 우려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거듭 “이제는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고 소송전을 마무리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길 기대한다”면서 “조기패소 결정에 이어 이번 최종 결정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소송을 계속 소모전으로 끌고 가는 모든 책임이 전적으로 경쟁사(SK이노베이션)에 있음을 명확히 인지해야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이날 입장문에서도 “(ITC 판결 결과)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실질적으로 밝히지 못했다”는 입장을 드러내는 등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에 LG에너지솔루션 측은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협상 결렬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ITC 판결에 따르면 증거 삭제 등 이유야 어찌됐던 간 영업비밀 침해(337조 위반)은 확정된 사실”이라고 못박았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여러 차례 SK이노베이션측과 협상을 통해 대화를 하려고 시도해왔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던 중요한 이유가 그것(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며 “(이는) 협상이 난항을 겪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납품 지연 가능성과 또 다른 소송 리스크를 우려해 합의를 서두를 것이라는 예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아직 배터리를 실제로 공급하지 않고 시험 생산하는 단계로 수입금지 조치 자체는 최종 판결과 함께 발효됐으나 수주 분량에 관해서는 유예가 돼 당장 심각한 차질이 생기지는 않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언급하는 등 협상 여력이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앞서 양사는 협상에 나섰으나 손해배상금 규모를 두고 의견 차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향후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매출액의 일정 비율 등 합의금 수조원대를 요구한 데 비해 SK이노베이션 측은 수백억원을 제시하는 데 그쳐 협의가 결렬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앞으로 전기차 시장이 급격히 커질 것을 고려하면 미래 가치까지 따질 경우, 피해 보상액 및 합의금 산정이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양측이 합의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LG에너지솔루션은 3조원 안팎의 합의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SK이노베이션이 침해된 영업비밀에 상응하고 주주와 투자자가 납득할 수 있는 합의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ITC 최종 승소 결과를 토대로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품목에 대한 미국 내 사용 금지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국내외에서 진행 중인 소송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임해 나갈 수밖에 없다”면서 “이는 LG에너지솔루션이 배임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불가피한 필요 조치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이날 컨퍼런스 콜을 통해 “미국 연방 영업비밀보호법(DTSA)에 따라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SK이노베이션의 협상 태도에 달려있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SK이노베이션은 항소 여부에 대해서는 대통령 심의 기간 등 추가 조치 이후 확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항소할 경우에도 수입금지 제한 조치는 그대로 유지되므로 사실상 양사간 합의가 최선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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