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사진. LG화학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의 미국 배터리 소송전에서 SK이노베이션이 ‘조기패소판결’을 받으면서 LG화학의 승소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지난 14일(현지시각)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2차전지 영업비밀침해 소송과 관련하여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판결(Default Judgment)’을 내렸다. 이에 따라 당초 3월 초로 예정 된 ‘심리(Hearing)’ 등의 절차 없이 바로 10월 5일까지 ITC 위원회의 ‘최종결정(Final Determination)’만 남겨두게 됐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악의적이고 광범위한 증거 훼손과 포렌식 명령 위반을 포함한 법정모독 행위 등에 대해 지난해 11월 ITC에 ‘조기패소판결’을 요청한 바 있다. 이에 앞서 LG화학은 지난해 4월 2차전지 영업비밀을 빼갔다며 SK이노베이션을 ITC와 미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제소했다.

LG화학 측 주장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소송 과정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관련 증거를 인멸했고 ITC가 명령한 포렌식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LG화학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영업비밀침해 소송을 제기한 바로 다음날 이메일을 통해 이번 소송의 증거가 될 만한 관련 자료의 삭제를 지시하고 지난해 4월 8일 LG화학이 내용증명 경고공문을 보낸 직후 3만 4000여개 파일 및 메일에 대한 증거인멸 정황이 드러났다.

SK이노베이션의 자료 삭제 지시 메일. 사진. LG화학

LG화학은 조기패소판결 이후 입장문을 발표해 “공정한 소송을 방해한 SK이노베이션의 행위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SK이노베이션에 대한 법적 제재로 당사의 주장이 그대로 인정된 만큼 남아있는 소송절차에 끝까지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미 ITC가 그간 기업 규모 등의 여타 정황과 여건을 고려하기보다 공정한 거래 이행 여부에 충실하게 판단하기 때문에 최종결정에서 판결 내용이 크게 바뀌리라 기대하긴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미 ITC 검토 과정에서 LG화학 측에 유리한 의견을 내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조기패소판결 직후 발표한 입장문에서 “LG화학과 선의의 경쟁관계”로,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그 기조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는 대목이 LG화학과의 합의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소송이 마침표를 찍은 것은 아니다. ITC의 최종결정 전까지 합의 여부에 업계의 관심이 모인다. 그간 ITC 분쟁 전례를 살펴보면 최종결정 전에 양사간 합의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SK이노베이션 역시 향후 적극적으로 합의에 나설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한국 정부도 같은 국내 대기업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중 한쪽의 완벽한 패소는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하고 있다. 배터리는 현재 정부가 국가 미래 먹거리로 육성 중인 사업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양사 간 중재 역할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이번 ITC 판결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산자부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양사가 희망하고 상황이 될 경우 당연히 (정부가 중재)역할을 해야한다”면서 “지난 6월에도 양측 입장을 조정한 바 있다”면서 중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직접 소송전에 개입하기는 어렵지만 지속적으로 대화의 장을 만들어 중재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뜻이다.

이번 판결로 난감한 것은 한국 정부 뿐만이 아니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고 최근엔 2공장 투자 계획까지 밝혔다. LG화학 역시 미국에 투자를 진행 중이다. 만약 ITC의 최종결정으로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하게 되면 LG화학의 2차전지 관련 영업비밀을 침해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과 모듈, 등 관련 부품·소재에 대해 미국 내 수입금지 효력이 발생한다. 조지아주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도 모두 영업기밀을 침해한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제품으로 판매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미국 행정부가 ITC 최종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현지 언론보도도 나왔다. 이에 업계에서는 재판 결과에 대해 현재까지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드물어 거부권 행사 가능성은 낮지만 트럼프 정부가 이례적인 판단을 이어와 거부권 발동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긴 어렵다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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