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 사진. 구혜정 기자
정세균 국무총리. 사진.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정세균 국무총리가 이례적으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배터리 소송에 대해 한국 배터리 경쟁력 저하를 이유로 우려를 표시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8일 서울 양천구 대한민국예술인센터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K-배터리의 미래가 앞으로 정말 크게 열릴 텐데 작은 파이를 놓고 싸우지 말고 양사가 나서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큰 세계 시장을 향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비판했다.

정 총리는 이어  “소송비용만 수천억원에 달한다고 하는데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양사가 싸우면 남 좋은 일만 시킨다"고 일침을 가했다.

정 총리는 특히 "제가 양사 최고책임자와 통화도 하고, 만나서 '낯 부끄럽지 않느냐,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려서 되겠느냐'며 빨리 해결하라고 권유했지만 아직도 해결이 안되고 있다"고 언급, 현재 상황에 대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가 기업 간 소송에  이처럼 입장을 밝힌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이날  미디어SR에 “양사가 희망하고 상황이 된다면 당연히 정부가 중재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정 총리 입장을 두둔하기도 했다.

정부는 기간 기업간 송사 등에 대해서는 '개별 기업간 일'이라는 입장을 우선해 개입은 자제해왔다.

다만 이날 정 총리 발언은 정부가 각각 자국 기업을 키우려는 중국, 일본, 유럽, 미국을 상대로  ‘K-배터리’ 입지를 고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에둘러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 및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내연기관차 대비 탄소배출이 적은 전기차의 시장지배력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미래 먹거리 산업을 한창 육성해야 할 대표기업이 소송 출혈 중임에도 정부가 방관한다는 비판이 미묘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LG에너지솔루션 CI
LG에너지솔루션 CI
SK이노베이션 CI
SK이노베이션 CI

◆양사 모두 즉각 입장문냈으나 갑론을박 여전

이에 양사 모두 입장을 밝힌 상황이지만 합의에 이르기엔 양측은 여전히 협상에 대한 견해 차가 커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이날 지동섭 배터리사업부문 대표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지금까지의 모든 소송 과정에 성실하게 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원만하게 해결을 하지 못해 국민들께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면서 "국민적인 우려와 바람을 잘 인식하여, 분쟁 상대방과의 협력적이고 건설적인 대화 노력을 통해 원만하게 해결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합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원만한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다만 최근까지 SK이노베이션의 제안은 협상 의지가 전혀 없는 것(으로 판단되는 수준)인데 논의할 만한 제안이 있기를 기대한다”면서 입장의 차이를 분명히 드러냈다.

LG화학 측은 지난해 “ITC(미국 국제무역위원회) 최종 판결 전에 양사가 협상을 통해 합의할 수 있고 이는 객관적 근거를 통해 합리적 수준으로 쌍방이 합의해야 한다”는 기준을 내세운 바 있다.

ITC의 최종 판결은 다음달 10일로 예정돼있다. 

◆올해로 소송 3년째...최종 판결 연기에 갈등의 골만 깊어져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3년째 이어진 소송은 지난해 4월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를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LG 측은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 직원을 대규모로 빼가면서 배터리 연구‧제조 등의 정보를 빼가는 식으로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ITC(미국 국제무역위원회)는 지난해 2월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SK이노베이션 측이 재판부의 포렌식 명령을 따르지 않았고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했다는 LG화학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다. 당시  LG화학 측이 승기를 잡게됐다며 합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ITC는 4월 SK이노베이션 측의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 기존 조기패소 판결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진행했다.

그 결과 예측이 어려워진 데다 최종 판결은 코로나19로 인해 3차례 연거푸 연기된 상황이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커지고 양사 간 소송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이 2017년부터 2년간 배터리 연구·생산 등 전분야에서 100여명의 핵심인력을 빼갔고 이들이 이직과정에서 개인당 400여 건에서 많게는 1900여 건의 핵심 기술 관련 문서를 다운로드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LG 측 관계자는 앞서 미디어SR에 “신학철 부회장이 3M에서 ICT 소송 여러 건을 이끌었던 경험이 있어, 경험을 토대로 문제가 있다는 판단 아래 소송을 시작한 것”이라고 귀띔하면서 “(LG는)무려 30년 가까이 수조원을 투자했는데, 상대 쪽(SK이노베이션)에서 몇백억원 수준으로 핵심 인력들을 스카웃 해 ‘손 안대고 코 풀려는’ 식으로 접근했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보면 (SK이노베이션이) 비슷한 제품을 (연구개발 투자 없이) 더 싸게 만들게 되면 이는 단가 경쟁으로 마진율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게 돼 매출뿐 아니라 고용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일”이라고도 지적했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영업비밀을 침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SK측은 양사 배터리 기술과 생산방식이 다르고 SK이노베이션의 핵심 기술력도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억울하다는 입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아울러 당시 LG화학의 직원들의 이직 문제도  자발적으로 이뤼진것이라는 입장이다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 주 배터리 공장 위치 제공: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 주 배터리 공장 위치. 사진=SK이노베이션 제공

 ◆ITC 대통령 직속 기구...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

올해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도 녹록지 않아 보인다. 만약 ITC가 SK이노베이션의 패소를 확정하면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제품의 미국 내 수입금지 효력이 발생한다.

영업비밀을 침해한 제품, 즉 배터리 셀과 모듈 등 관련 부품·소재도 미국 내 수입이 금지되기 때문에 사실상 미국에서의 배터리 생산이 불가능해진다.

이에 여론이 ITC 위원회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지난해 ITC가 SK이노베이션에 불리한 결정을 내릴 경우 배터리 및 필요한 부품 등의 수입 금지로 신형 자동차를 개발 중인 폴크스바겐과 포드의 사업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조지아주에 배터리을 짓고 있으며 증설 계획까지 발표한 상태다. 이같은 계획이 미국 내 침체된 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해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여론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ITC는 통상 문제와 불공정 무역 행위에 대해 조사와 분석, 규제를 수행하는 미국 대통령 직속의 독립적인 연방 준사법기관으로, 지난해 4월 ‘재검토’ 결정 당시 공중보건·복지와 미국 경제의 경쟁 조건, 미국 소비자 등과 관련한 ‘공익’을 고려해 판단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ITC가 최종 판결을 내리고 바이든 미국대통령에게 이를 통지하면 대통령은 60일 내에 ‘정책적 판단’에 근거하여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미국 대통령이 ITC 최종판결을 거부한 사례는 지금까지 단 1건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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