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엔솔의 '완승'....LG와 SK간 합의금 기대치 수조원대로 벌어져 해결 난망해

LG엔솔-SK이노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비밀'...美 ITC 최종 판결문 정밀 진단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로고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로고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가 최근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맞붙은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관한 최종 의견서(판결문)를 공개해 다시한번 이목이 쏠리고 있다. ITC는 의견서에서 전적으로 LG의 주장을 인용했을 뿐 아니라 SK이노베이션과 거래한 미국 내 기업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4일(현지시간) 공개된 미국 ITC 최종 의견서에 이같은 사실이 낱낱이 언급돼 있다. 앞서 ITC 는 지난달 11일 LG에너지솔루션가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2차전지(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관련해 'SK이노베이션의 10년간 미국 내 수입 금지'에 관한 최종 판결을 내린 바 있다.

ITC는 최종 판결문을 통해 △SK의 조직적인 은폐 및 기업문화 △SK이노베이션의 제재는 최소 10년이 적절 △SK이노베이션과 거래한 완성차 업체도 책임 존재 등의 사항을 명시했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이날 미디어SR에 “이번 ITC 결정은 SK이노베이션이 그동안 자사의 2차전지 관련 영업비밀을 탈취해 연구개발, 생산, 테스트, 수주, 마케팅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부정하게 사용해 경제적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LG에너지솔루션의 일관된 입장을 인정한 것”이라며 “(조기패소 결정도) ITC가 재판을 더 진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및 증거인멸 정황을 확인한 데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 SK이노베이션 증거 인멸, ITC "조직 문화”

ITC는 SK의 증거인멸이 고위층이 지시한 결과로, 조직장들에 의해 전사적으로 자행되는 등 특수한(extraordinary)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ITC는 SK측의 ‘자료 수집 및 파기’를 ‘기업 문화(corporate culture)’라고 보고 이같은 행태가 만연(rampant)해 자료 보존 의무와 관련해 SK 측의 ‘냉담한 무시(callous disregard)’가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 관련 ITC 공개 의견서 발췌
사진=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 관련 ITC 공개 의견서 발췌

ITC는 심지어 이같은 SK 측 행위, 즉 △SK의 문서 삭제 행위 △문서 삭제가 정기적 관행이라는 변명 △문서 삭제 은폐 시도가 노골적 악의(flagrant bad faith) 하에 이루어졌다는 비판적인 평가를 판결문에 적시했다.

장완규 용인송담대 법률실무과 교수는 이와관련, 예전에 KDI 기고 글을 통해 "이 같은 증거 보존이 미국에서의 소송 결과를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SK하이닉스와 램버스 간 소송의 경우, SK하이닉스가 램버스의 특허출원 당시 오고 간 이메일과 보고서 등 관련 서류들을 모두 제출해줄 것을 요구했고, 램버스 측의 불리한 증거에 대한 삭제 및 파기를 이유로 하이닉스가 승소했다”고 언급했다.

장 교수의 기고 글은 이미 5년 전인 2016년 발표된 것이서 오히려 관심을 끌고 있다. 장 교수는 특히 “소송당사자가 얼마나 성실히 증거개시 절차에 임했고 또 증거를 제출하려고 노력했는가에 따라 소송의 승패가 좌우된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 관련 ITC 공개 의견서 발췌
사진=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 관련 ITC 공개 의견서 발췌

ITC는 이번 판결문을 통해 소송 전후에 SK이노베이션이 3만4000여개 파일 및 메일을 삭제해 광범위한 증거 훼손과 포렌식 명령 위반을 포함한 법정 모독 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를 근거로 '조기패소'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는 처지가 됐다.

SK이노베이션은 판결문이 공개된 이후 “ITC는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 침해 주장에 대한 실체적인 검증없이 소송의 절차적인 흠결을 근거로 결정한 것"이라며 "그 결정은 여러 문제들을 야기할 것으로 우려된다”는 항변섞인 입장을 낸바 있다.

다만 장완규 교수가 기고문을 통해 분석한 2016년 당시 SK그룹 계열사인 SK하이닉스도 ‘증거’와 관련해 유리한 판결을 받아들었던 만큼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이 이같은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한 ITC 판결의 정당성을 문제삼는 것은 다소 일관성이 떨어지는 대목으로 풀이된다.

◆ ITC, LG에너지솔루션 측 의견 적극 인용

ITC는 SK가 LG로부터 도용한 22개 영업비밀이 없었다면 10년 내 해당 영업비밀 상의 정보를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없었을 것이 명확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는 SK의 영업비밀 침해 행위 및 이에 따른 LG의 피해를 명백히 인정한 결과로 해석된다.

소송에서 LG 측은 적정 수입금지 기간으로 10년을 주장했고, ITC 산하 조직인 불공정 수입조사국(OUII, Office of Unfair Import Investigations)은 최소 5년을 주장했으며, SK는 1년을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ITC측은 OUII가 산정한 수입금지 기간의 2배에 달하는 LG 측 요구를 인용했다.

즉 ITC는 SK가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LG 측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LG 측은 100쪽에 달하는 증거를 제출했다. 다만 ITC는 이를 전부 검토하지 못해 LG 측이 22개 항목으로 다시 정리해 제출한 증거를 토대로 재검토했다.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기술을)개발했을 경우 예상 소요 시간. 사진=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 관련 ITC 공개 의견서 발췌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기술을)개발했을 경우 예상 소요 시간. 사진=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 관련 ITC 공개 의견서 발췌

OUII는 SK 측이 은폐하고자 했던 내용과 LG 측의 영업비밀 카테고리 11개를 각각 대응시켜 SK의 영업비밀 침해에 개연성 이상의 근거가 존재한다고 30쪽에 걸쳐 기술했으며, ITC는 이러한 분석을 인정했다.

LG 측은 “ITC는 재판 과정에서 LG의 입증 수준이 미국 법원이 요구한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ITC가 인정한 SK이노베이션의 LG에너지솔루션 영업비밀 침해 사실은 ①전체 공정 ②BOM(원자재부품명세서) 정보 ③선분산 슬러리 ④음극/양극 믹싱 및 레시피 ⑤더블 레이어 코팅 ⑥배터리 파우치 실링 ⑦지그 포메이션(셀 활성화 관련 영업비밀 자료) ⑧ 양극 포일 ⑨전해질 ⑩SOC추정 ⑪드림 코스트(특정 자동차 플랫폼 관련 가격, 기술을 포함한 영업비밀 자료)로 나타났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은 이같은 ITC 판결에 대해 “ITC는 LG가 마지못해 줄인 22건의 영업비밀을 지정하면서도 그 범위가 모호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개별 수입물품이 실제 수입금지 대상에 해당될지에 관하여는 별도 승인을 받도록 명한 상황”이라고 지적하면서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ITC는 이보다 강하게 SK 측의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강조했다. ITC는 “조기패소판결보다 더 낮은 수준의 법적 제재는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한다(No lesser Sanction than default is appropriate).”는 결론을 명시했다.

ITC는 독자 기술 개발에 걸렸을 '최소' 기간을 고려하더라도 10년 수준의 수입금지 조치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 관련 ITC 공개 의견서 발췌
ITC는 독자 기술 개발에 걸렸을 '최소' 기간을 고려하더라도 10년 수준의 수입금지 조치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 관련 ITC 공개 의견서 발췌

아울러 ITC는 “도용한 LG의 영업비밀이 없었다면 SK는 10년 이내에 해당 영업비밀 상의 정보를 개발할 수 없었을 것이 명확하다”면서 “SK는 LG로부터 훔친 모든 영업비밀 기술을 10년 내에 개발할 수 있을 정도의 인력이나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ITC는 영업비밀 침해의 경우 ‘합법적인 수단(lawful means)을 사용해 해당 기술을 독자적(independently)으로 개발하기 위해 소요되었을 기간으로 한다’는 관행(practice)에 따라 법적 구제책의 지속기간을 산정한다.

이같은 관행은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에 의해서도 확인 및 인용된 바 있으므로, 적절한 판례가 뒷받침 되는 판결인 셈이다.

◆ ITC, “자동차업체 피해는 고려하지만, 포드·폭스바겐도 책임 있다” 비판

하지만 ITC는 SK이노베이션의 수입 제재 조치에 예외 사항과 유예 기간을 부여했다.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처벌과 동시에 미국 내 자동차 업체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고심이 담긴 판결인 셈이다.

ITC는 SK이노베이션이 포드에는 4년간, 폭스바겐에는 2년간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도록 수입금지 조치를 유예했다. 이는 곧 ITC가 두 완성차 제조업체로 하여금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은 다른 회사로 배터리 공급사를 대체할 시간적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그럼에도 ITC는 포드를 향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ITC는 판결문에 “잘못은 SK뿐 아니라 포드처럼 SK의 영업비밀 침해를 인지하고도 장래의 사업 관계를 계속해서 구축하기로 선택한 이들에게도 있다(The fault here belongs with SK, as well as with those, like Ford, who deliberately chose to continue to cultivate prospective business relationships predicated on SK’s trade secret misappropriation)”고 적시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 관련 ITC 공개 의견서 발췌
사진=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 관련 ITC 공개 의견서 발췌

아울러 ITC는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포드의 신차에 공급되는 배터리는 유예기간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포드는 미공개 신차에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를 장착한다면서 수입 금지 적용의 유예를 재판부에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ITC는 수입 금지 적용 유예를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포드가 비용 절감의 효과를 누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 LG/SK 합의금 수조원대 차이...SK “바이든 美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 강력 요청”

한편 LG와 SK 간의 합의는 요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LG 측이 3조~5조원대의 합의금을 고려하는 반면 SK는 수백억원대의 합의금을 고려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양측은 합의를 위한 출발점에도 서지 못한 것으로 관측된다. SK이노베이션은 “독자적인 배터리 기술개발 노력과 그 실체를 제대로 심리조차 받지 못한 미 ITC의 결정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영업비밀 침해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진정성’을 요구하고 나선 상태다. 영업비밀 침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뒤, 그에 따른 피해를 산정해 다양한 방식으로 배상금을 협의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지난 5일 LG에너지솔루션은 ITC 영업비밀 침해 소송 의견서와 관련해 컨퍼런스콜(전화회의)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웅재 LG에너지솔루션 법무실장(전무)은 “(LG에너지솔루션의) 기본 입장은 상생”이라고 언급하면서 “협상의 문은 열려있지만 (SK이노베이션이 소송 결과를) 인정하고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LG사옥. 사진=구혜정 기자
LG사옥. 사진=구혜정 기자

하지만 합의 상황과 합의금 산정 기준 등에 대해 장승세 LG에너지솔루션 경영전략 총괄 전무는 “협상 재개를 건의한 적도 있었지만 지난 한 달여 동안 어떠한 제안도 없었다”고 말해 합의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임을 시사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아직 배터리를 실제로 공급하지 않고 시험 생산하는 단계로 수입금지 조치 자체는 최종 판결과 함께 발효됐으나 수주 분량에 관해서는 유예가 돼 당장 심각한 차질이 생기지는 않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언급하는 등 협상 여력이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또한 SK이노베이션측은 항소 여부에 대해 美대통령 심의 기간 등 추가 조치 이후 확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양사 간 협상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지부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소송이 이어질 경우에도 SK이노베이션의 수입금지 제한 조치는 그대로 유지되므로 "사실상 양사간 합의가 최선"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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