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수탁자책임원칙 도입 후 반대 의결권 늘어
이사 보수한도·문제 이사 선임 등 주주가치훼손 안건 반대
의결권 심의 기구 독립성 결여..주주권 행사 일관성 문제도

[편집자주]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가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기업의 고민이 깊습니다. ESG투자와 ESG공시, 연기금 의결권 등 경영과 관련된 ESG 이슈가 더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데일리임팩트는 창간 5주년을 맞아 국내외 주요 ESG 쟁점을 3차례 기획기사를 통해 짚어봅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사옥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사옥

[데일리임팩트 박민석 기자 ] 최근 ESG(환경, 사회적책임, 지배구조)의 G, 즉 거버넌스와 관련 민감한 이슈 가운데 하나는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다. 특히 국내 증시 '큰손'인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를 둘러싼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 반대하는 게 큰 부담이고, 투자자들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긍정적이라며 반기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내 주요 의결권 행사 심의기구인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하 수책위)의 독립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3월 기준 운용 기금 953조원 가운데 140조7000억원(14.7%)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투자한 기업만 해도 1200여개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대형 상장사를 꼽으면 KT(10.63%), DGB금융지주(9.57%), 하나금융지주(8.91%), 신한지주(8.76%), 포스코(8.99%), 네이버(8.29%), KT&G(8.03%), KB금융(7.94%) 등이 있다.

국민연금은 배임·횡령 등 주주가치 훼손, 배당정책 수립 등 투자 기업에 문제가 발생하면 주주권을 행사한다. 대규모 자금을 운용하기에 문제 기업의 지분 매도 시 발생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기에 '탈출' 대신 '개입'을 택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크게 의결권 행사와 공개·비공개 대화, 공개서한 발송 등 으로 나눌 수 있다. 의결권 행사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 지난 2018년부터 '수탁자책임원칙(스튜어드십코드)'에 따르고 있다.

수탁자책임원칙 도입 후 반대 의결권 행사 매년 늘어

수탁자책임원칙 도입 후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 '반대'를 표명하는 의결권 행사 건수가 늘고 있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지난해 투자 기업 주주총회 안건 중 전체 4건 중 1건 꼴로 반대 의견을 냈다.

편집 = 김민영 기자
편집 = 김민영 기자

실제 1143개 전체 기업의 주총 안건 3439개 중 803건(23.4%)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고, 지난 2021년 549개(16.25%), 2020년 535개(15.75%) 대비 매년 늘었다.

국민연금이 반대한 주요 안건은 이사 및 감사 보수 한도(42.6%)와 이사 및 감사 선임(31.3%) , 정관변경(14.2%) 등의 순이다. 국민연금은 올해 정기 주총에서 삼성중공업과 케이씨씨글라스 등의 이사 보수 한도 안건에 반대했으며, 신한금융지주의 주총에서는 라임 사태로 금융당국 징계를 받은 진옥동 회장의 이사선임 안건에 반대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수탁자책임원칙에 따라 주주 가치 훼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안건에는 반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계 "과도한 경영간섭" VS 투자자 "문제기업 지배구조 개선"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특히 반대 의견을 내는 것에 대해 재계와 투자자 시선은 엇갈린다.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을 노골적으로 부담스러워 한다. 국민연금이 반대 쪽에 서면 오너의 입장을 반영하는 경영진의 입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히 오너 입장에서 기업 분할 및 M&A를 추진하는 경우 국민연금의 반대는 치명적 '암초'가 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2월 인적분할을 추진하던 현대백화점에 반대표 6.6%(약 188만주)를 행사해 지주사 설립을 막았다. 당시 주총 표결에 참석한 주주(1579만주) 중 찬성이 64.9%(1024만주), 반대가 35.1%(554만주)로, 국민연금 반대표가 약 35%를 차지했다.

한 기업 IR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반대하면 소액주주들도그 결정을 따라가는 경향이 강하다"며 "반대 내역도 국민연금 홈페이지에 공개되기 때문에 문제 기업으로 낙인찍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국내 기업의 취약한 지배구조 개선에 도움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민간 기관투자자들은 기업과 이해관계가 엮여 있어 반대표 행사를 하기 어려운데, 국민연금은 그렇지 않다"며 "(국민연금 반대 의결은) 지배구조가 취약한 국내 기업에 대한 긍정적인 주주견제 장치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또한 국민연금은 주주가치 증진에 도움이 되는 안건엔 찬성표를 던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행동주의펀드에 힘을 실어 주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얼라인파트너스가 SM엔터테인먼트에 제안한 곽준호 감사 선임 안건에 찬성했다. 당시 SM은 이수만 전 프로듀서의 개인회사 라이크 기획에 프로듀싱비 명목으로 매년 매출 6%가량을 지급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국민연금이 주주제안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면 소액주주 참여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기업들이 신경쓰게 된다"며 "국내증시 저평가(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에도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검사출신 인사·복잡한 이해관계...'수책위' 독립성 확보는 과제

다만 주요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하는 수책위 독립성 문제는 국민연금이 개선해야 할 과제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기금운용본부와 수책위에서 담당하는데, 물적분할·문제 이사 선임 등 기금운용본부가 판단하기 곤란한 사안은 수책위에서 맡고 있다.

수책위는 정부와 근로자·사용자·지역가입자 추천을 받아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전문성에 한계가 있는데다 이해관계가 서로 엇갈리기 때문에 효율적인 의사결정이 힘든 구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지난 3월 출범한 수책위 2기 위원장에 검사출신이 선임되면서 독립성과 전문성 문제가 다시 불거지기도 했다.

수책위의 의결권 행사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주총에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불완전판매로 논란이 됐던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에 찬성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수책위가 과거 비슷한 사건으로 논란이 된 신한금융, 우리금융의 사내이사 선임안에 반대 의결을 했던 것과 대비되는 결정이었다.

국민연금 금융사 사내이사 선임 관련 의결권 심의·결정 내역 편집 = 김민영 기자
국민연금 금융사 사내이사 선임 관련 의결권 심의·결정 내역 편집 = 김민영 기자

수책위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문제 이사의 책임 범위, 재발방지 대책, 법원 판결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같은 이슈라도 의결권 행사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SG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수책위의 일관성이 결여되고 정치적 입김이 반영된 의결권 행사는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려 기업에 큰 부담이 된다면서 기금운용본부에 의결권을 일임하거나 수책위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기금 전문성도 결여된 수책위를 없애고, 해외 연기금처럼 기금운용본부에서 전문성을 갖춘 운용 인력들이 주주권 행사를 독립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록 한국상장사협의회 정책연구팀장은 "국민연금 관련 각 단체로부터 추천받아 선임되기 때문에 해당 단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수책위 권한을 축소하거나 주주관여 전문 인력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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