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권민수, 김사민 기자] 한진그룹에서 남매간 경영권 다툼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한진그룹 소속 공익법인이 오너의 사익을 위해 이용될 여지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18일 밝혀졌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3월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재선임안이 통과되면서 연임에 성공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 3자 연합의 견제가 매서웠지만 결과는 과반에 가까운 지분을 확보한 조 회장의 완승으로 끝났다.

조원태 회장 특수관계자 등 우호 지분에는 한진 그룹이 보유한 세 개의 공익법인이 속해 있다.

한진그룹이 보유한 정석인하학원, 정석물류학술재단, 일우재단 세 재단은 한진그룹 계열사 지분을 다량 보유해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에 이용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로 지난 주총 때 한진칼 지분을 3.38% 보유한 세 재단은 모두 조원태 회장 편에 서서 사내이사 재선임안에 찬성 의결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3.38%는 꽤 영향력 있는 지분으로, 현재 3자 연합의 지분이 좀 더 앞서 있는 상황에서 조원태 회장과의 지분 차이는 3.93%에 불과하다.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별세할 때까지 정석인하학원의 전신 인하학원, 정석학원의 이사장을 역임하다 이후 이사장 자리는 아들인 고 조양호 회장에게 넘어갔다.

이는 경영권 승계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며, 갑질 사건 등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부정적 이슈가 터지지 않았다면 차기 정석인하학원 이사장은 조원태 회장이 될 확률이 높았다.

조양호 회장 별세 후 재단 이사장은 조원태 회장이 아닌 현정택 이사장이 맡게 되면서 몇십년간 이어온 오너 일가의 재단 이사장 세습은 끝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단의 독립성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현정택 이사장은 조양호 회장의 경복고등학교 동문으로, 인하대학교 교수로 활동했다. 조양호 회장 영결식 때 추도사를 읊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장뿐 아니라 정석인하학원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 중 다수가 한진그룹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이사회 14인 중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강영식 전 한국공항 사장, 원종승 정석기업 사장,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 최병권 전 대한항공 상무 등 이사 5명이 한진그룹 전현직 임원 출신이다. 공익법인법상 이사회 내 특수관계자는 이사 현원의 5분의 1을 넘으면 안 된다. 

이렇게 재단 이사장부터 이사진까지 한진그룹 오너와 깊숙이 연관된 이들로 구성된 한진 재단은 오너 일가가 재단을 떠난 후에도 지속해서 경영권 유지를 위한 거수기 역할로 이용되고 있다.

미디어SR은 이에 대해 지난 2018년부터 끊임없이 지적하며 지배구조 독립성 개선 의지를 질의해 왔으나, 올해에도 정석인하학원의 답변을 받지 못했다.

# 조원태 지키려 행정소송 불사한 인하대학교

정석인하학원 소속 인하대학교는 최근 `조원태 회장의 편입과 졸업을 취소하라고 한 교육부 처분에 문제가 없다`는 행정심판 결과에 불복하고 정식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018년 교육부는 조 회장이 인하대에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했다며 조 회장의 편입과 졸업을 취소하라고 통보했다.

인하대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2019년 1월 교육부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청구했으나, 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처분에 문제가 없다며 인하대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인하대는 소송까지 진행하기로 했다. 그룹 오너의 학위가 달려 있기 때문에 물러설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한진그룹 경영권 승계자로서 자격 논란을 방어하기 위해 소송을 불사한 것으로도 관측된다.

조 회장은 인하대 편입 전 미국의 2년제 대학을 다녔는데, 교육부는 이수 학점과 성적이 인하대에 입학할 수준이 아니라고 보고 편입/졸업 취소 처분을 내렸다.

또한 교육부는 2003년 졸업 당시 학사 학위 취득에 필요한 요건을 채우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 정석인하학원, 내부거래 아니라 주장했으나 불복 소송 패소

뿐만 아니라 정석인하학원은 한진그룹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줘 교육부의 시정조치를 받기도 했다. 2018년 교육부는 조 회장의 인하대 부정 편입학과 함께 재단 전반을 조사했다.

교육부 조사 결과 인하대병원-정석기업 카페 시설공사 수의계약, 인하대-일우재단 장학금 교비회계 집행 등의 회계부정 문제가 드러났다.

정석인하학원은 인하대 부속 병원의 청소, 경비 용역을 한진 계열사에 몰아주고, 병원 지상 1층의 카페를 조현민 한진칼 전무에게 저렴한 가격에 임대했다.

당시 정석인하학원의 이사장은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었다. 일우재단 장학생 35명의 장학금 약 6억원을 인하대 교비 회계에서 집행됐다는 것도 문제가 됐다.

이에 교육부는 인하대병원은 정석기업과 카페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고 인하대가 지급한 장학금을 일우재단으로부터 회수해 교비 회계로 세입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정석인하학원은 교육부의 처분이 합당하지 않다며 교육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재판부는 교육부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보고 정석인하학원을 패소로 판결했다. 

# 그룹 오너 이슈로 시끄러운데...내부 운영은 허점투성이

한편 이렇게 공익사업 외 그룹 오너 일가와 관련한 이슈 때문에 재단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정작 공익법인 설립의 이유인 공익 사업 운영에는 소홀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립학교를 운영하는 정석인하학원을 제외하고 정석물류학술재단, 일우재단의 지난해 총자산 대비 공익사업 지출 비중은 1.45%에 불과하다.

한진그룹 세 재단은 총 1조1927억원이라는 큰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매년 공익사업 지출은 1%대 내외로 인색한 편이다.

이런 문제는 끊임없이 지적돼 왔지만, 사업비 지출 비중은 늘지 않고 제자리걸음이다. 정석물류학술재단은 2018년 공익사업에 4억9000만원(간접비 제외)을 지출했는데, 지난해에는 4억7000만원으로 소폭 줄었다.

총자산(626억원)의 1%도 안 되는 사업 규모에, 사업 종류도 적은 편이다. 정관에 기재된 공익목적사업에는 장학사업도 있지만 몇 년째 장학사업은 준비 중이다.

정석물류학술재단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장학사업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목적사업으로 등록했으나, 그룹 내 다른 공익법인에서 장학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학술연구지원 사업에 집중하기로 했다"면서 "이른 시일 내 장학사업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잡혀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향후 지원 규모와 범위의 확대뿐 아니라 엄격한 심사를 통해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 양질의 연구과제를 선정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면서 "올해 학술연구지원사업의 지원 분야에 새롭게 추가된 여행/관광 분야에 대해 적극적으로 홍보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일우재단은 총자산의 2.65%를 장학 및 전시 사업 등의 공익사업에 지출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장학금, 전시관 운영비 등의 지출 내역을 찾아보기 어렵다.

장학생 선발 기준, 선발 인원, 지급 규모 등의 정보가 공개돼 있지 않아 4억8000만원의 금액이 누구에게, 어떻게 쓰였는지 알 수 없다.

이에 재단 측은 해외 장학생 위주로 지원하기 때문에 몽골, 캄보디아 교육청에서 구체적인 장학생 선발 결과 등을 공시하며 한국에서는 따로 모집요강 등을 공개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재단 관계자는 "매년 수익사업 규모 내에서 재단 이사회가 선발 인원, 지급 규모 등을 결정하며 보통 35명 내외로 장학생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재단 직원이 해외로 직접 출장을 가서 해당 국가 교육청 인사, 대사관 직원과 함께 1차 필기시험에 통과한 학생 대상으로 면접을 진행해 선발한다"고 설명했다.

 법적인 기준 안에서 공익사업에 대한 지출 내역을 공시하고 있지만 더욱 상세한 공시의 필요성이 제기된다면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재단 관계자는 "재단은 기부금이 없이 자체 수익사업 규모 내에서 지출하기 때문에 기부금 사용 명세서만큼 자세하게 공시하지는 않지만, 공시하고 있는 부분에서 위법 사항은 없다"면서 "수익을 전부 공익사업에 사용하고 있으므로 대중에게 보다 상세히 노출할 필요성이 제기되면 향후 당연히 공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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