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관리 위해 금리 올리는 은행에 '인하' 언급
정책금융 금리 올리는 당국 기조와 '정면충돌'

지난 1일 마포에서 열린 민생 타운홀 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 사진=대통령실
지난 1일 마포에서 열린 민생 타운홀 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 사진=대통령실

[데일리임팩트 김병주 기자]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권을 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내면서 은행권 금리가 또 한번 들썩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독과점’, ‘정책금융 금리’ 등을 언급한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상 은행권에 대출 금리인하를 압박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통령 언급은 가계부채 관리에 초점을 맞춰 사실상 금리인상을 권고하고 있는 금융당국의 행보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이미 올초 한 차례 은행권의 금리산정 체계에 대한 사실상의 인위적 개입으로 금리 체계가 꼬여버린 상황에서 이번에는 당국과 대통령 간 상충된 시그널이 은행권의 금리체계를 또 한번 뒤흔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연초부터 시작된 윤 대통령의 ‘은행권 압박’ 기조가 지속되면서 금융권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은행권과 지속적으로 소통을 이어가고 있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의 최근 기조와도 엇박자가 나고 있어 우려를 넘어 혼란까지 야기된다는 말이 나온다.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가운데)./ 사진=대통령실.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가운데)./ 사진=대통령실.

'갑질'에 '종 노릇'까지…은행 저격 나선 尹

윤 대통령은 최근 들어 은행권을 저격하는 작심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민생행보 과정에서 나오는 발언인데, 그 수위가 그 어느때보다 높다는 것이 은행권 내부의 공통적 의견이다.

특히 상당수 발언은 은행권의 고금리를 겨냥하고 있다. 은행들이 과도한 고금리 책정으로 예대금리차를 키우고, 이를 기반으로 여전히 이자장사에 빠져있다는 내용이다.

시발점은 지난달 30일 진행된 국무회의에서의 발언이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목소리라며 “죽도록 일해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라고 언급했다. 한때 은행권 압박의 이유 중 하나였던 ‘이자장사’ 논란이 다시 소환된 것이다.

며칠 뒤 대통령의 발언은 더 세졌다. 지난 1일 진행된 민생 타운홀 회의에서 은행의 갑질이 심각하다며 또 한 번 은행권을 저격한 것.

당시 회의에 참석한 윤 대통령은 “은행은 현재 독과점 상태로, 앉아서 돈을 벌면서 갑질도 많이 한다”며 “은행의 독과점 행태를 정부가 그냥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대통령의 발언은 급기야 정책금융상품으로까지 번졌다. 윤 대통령은 정책금융상품을 다루는 은행들에 대해 “왜 은행들이 정책금융상품 금리를 올리느냐”며 “금융위, 금감원 등은 정책금융상품 금리가 올라가면 왜 은행들이 금리를 올리는지, 이자는 어느 수준으로 받는지 등 사후관리를 철저히 해달라”라고 당부했다.

이러한 윤 대통령의 발언에 금융권도 소위 ‘상생금융 시즌2’를 방불케하는 금융 지원안을 서둘러 발표하며 화답하고 있다. 하나금융이 1000억원대의 소상공인 지원 프로그램을 공개한 것을 시작으로 우리금융과 신한금융, KB금융 등도 관련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사진=DB
서울 시내 시중은행의 대출 창구/사진=DB

대통령 발언에 ‘금리 또 꼬일까’

다만, 금융권에서는 사실상의 ‘상생금융 시즌 2’와는 별개로 윤 대통령의 발언 자체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최근 윤 대통령의 작심 발언 중 상당 부분이 일련의 은행권 기조와 정면 충돌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부분 금리와 관련된 부분인데, 문제는 은행권 뿐 아니라 금융위, 금감원 등 금융당국의 정책적 행보와도 사실상 정면 배치되는 흐름이다.

현재 금융당국은 급증하는 가계부채를 억제하는 데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은행권에는 대출 심리를 억제하고 건전성 관리까지 도모할 수 있도록 사실상의 금리 인상을 권하고 있다. 대출 금리를 올려 대출 수요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출 증가에 대응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0월 말 기준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686조119억원으로 전월 말 대비 3조6825억원 불어났다. 이같은 월간 증가폭은 1조5000억원대를 기록한 지난 8월과 9월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증가했는데,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주담대 잔액은 521조2264억원으로 전월 대비 3조3676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가계대출 증가 규모(3조6825억원)의 약 91%가 주담대에서 발생한 셈이다.

이에 주요 시중은행들은 일제히 주담대 금리를 인상하고 있다. 지난 10월 초 하나은행을 시작으로 KB국민, NH농협, 신한은행 등이 가산금리를 높이거나 우대금리를 낮추는 방식으로 최소 0.05%p(포인트), 최대 0.2%p 까지 금리를 높였다. 그리고 최근 우리은행이 5대 시중은행 중 마지막으로 주담대 우대금리를 0.2~0.3%p 낮추는 방식으로 금리 인상에 동참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의 발언은 은행권 금리에 직간접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올초 윤 대통령의 고금리 지적 이후 금융당국은 즉각 ‘상생금융’ 카드를 꺼내 들며 금리인하를 압박했다. 이같은 당시 당국의 행보가 이번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에도 동일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금리는 올리라고 권고하면서, 또 한편에서는 서민들의 이자부담을 줄이라고 하니 솔직히 답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라며 “업계에서도 꾸준히 방향성은 유지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듯하다”고 말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사진=금융위원회
김주현 금융위원장/사진=금융위원회

엇박자 내는 尹-금융당국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발언이 금융당국과 시장에 주는 시그널의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은행권을 때리기 위한 일련의 발언이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책금융상품의 금리 인상’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타운홀 미팅에서 은행권이 정책금융상품 금리를 올리는 문제가 있다며 당국의 관리·감독을 지시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정책금융상품 금리는 은행권이 추종하는 지표금리 못지않게 당국의 입김에 적잖은 영향을 받는다. 사실상 당국과의 협의, 또는 당국의 권고가 없다면 은행들도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게 쉽지 않은 것이다.

당장,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특례보금자리론 금리를 0.25%p 인상 적용해 공급한다. 이를 통해 전세사기 피해자를 제외한 우대형(주택가격 6억원, 부부합산 연소득 1억원 이하 대상) 금리는 연 4.50(10년)∼4.80%(50년)로 이전 대비 인상‧적용된다.

윤 대통령의 발언대로라면 이 상품 또한 은행에서 취급하기 때문에 은행이 이자장사를 목적으로 금리를 올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주금공 뿐 아니라 정책금융기관이 취급하는 정책금융상품의 금리는 은행이 아닌 공급 주체인 공기관이 결정한다.

특히 상당수 정책금융상품 역시 은행 자체 상품과 달리 국고채, 은행채, 코픽스(COFIX) 못지않게 금융당국의 ‘정책적 판단’이 금리 결정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금융상품 금리에 대해 은행을 저격한 윤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상 정부 소속 주무부처, 공공기관까지 비판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올 초 윤 대통령의 공공재 발언 이후 상당 기간 금리 체계가 엉키면서 조달 비용 등 일부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며 “최근 기조와 엇박자를 내는 발언이 나올수록 업계의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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