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여사·구연경·구연수씨, 구광모 회장에 상속회복청구소송
“유언장 없었다“ 절차상 문제 제기…㈜LG 지분 등 재분배 요구
특수관계인 보유 지분 많아…경영권 목적 지분 싸움 가능성 낮아
구본무 선대회장 핏줄임에도 수동적 역할 요구받아온 딸들 반기
“후계 검증 없던 장자 승계, 시대적 흐름과 대치…변화 필요“ 지적

고 구본무 LG 회장이 2016년 4월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열린 ‘LG혁신한마당’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 LG그룹.
고 구본무 LG 회장이 2016년 4월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열린 ‘LG혁신한마당’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 LG그룹.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재계 4위 LG그룹이 초유의 상속 분쟁에 휩싸였다. 총수 일가 여성들이 장자를 상대로 “상속 재산을 다시 분할하자”며 상속회복청구소송을 제기한 것. 

LG그룹은 4세 승계를 이어오는 과정에서 단 한 번의 잡음도 없었다. 장자 이외의 자녀들은 계열을 분리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LG가(家) 여성들은 그림자 역할에 머물렀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의 배우자인 김영식 여사와 두 딸, 구연경·연수씨가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낸 데 주목하고 있다. 보수적인 가풍에 눌려 지냈던 LG가 여성들이 제 몫을 주장한 건 이들이 장자, 그리고 아들 중심의 승계 방식에 문제제기를 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75년 만의 첫 상속 분쟁

13일 재계에 따르면, 김영식 여사와 구연경·연수씨가 소를 제기한 건 서울서부지법에 지난 2월 28일이다. 재계가 주목하는 대목은 이들이 낸 소송이 상속회복청구라는 점이다. 상속회복청구 소송은 법률상 상속권이 없는 인물에게 상속권자가 침해된 권리 회복을 위해 제기하는 소송이다. 

구본무 선대회장은 ㈜LG 지분 11.28%(1945만8169주) 등 2조원 규모의 재산을 남겼다. ㈜LG 지분 8.76%(1512만2169주)는 구광모 회장이 상속했고, 구연경씨와 구연수씨는 각각 2.01%(346만4000주), 0.51%(87만2000주)씩 받았다. 지분 대부분을 경영권을 쥔 후계자에게 몰아준 셈이다. 대신 김 여사와 두 딸들은 구본무 선대회장의 개인 재산인 금융투자상품·부동산·미술품 등을 5000억원 규모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LG그룹 측은 유산 분배에 대해 “가족 간 합의에 따른 결정”이라며 “모든 상속인들이 LG가의 원칙을 잘 이해하고 있고 5개월 간 협의를 거쳤다”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는 가족 간 갈등이 경영권 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상속을 둘러싼 잡음은 경영권 싸움으로 이어진 사례가 비일비재해서다. 롯데그룹이 대표적이다. 2015년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 별세 이후 차남인 신동빈 회장이 그룹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신동빈 회장은 최대 주주는 아니다. 

롯데그룹은 크게 총수일가→광윤사→일본 롯데홀딩스→호텔롯데→롯데지주를 지배하는 구조다. 광윤사의 최대 주주는 장남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으로 50%+1주를 쥐고 있다. 신동빈 회장(39.0%)보다 많은 것이다. 그러나 광윤사→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을 가진 친척들과 우호 지분으로 신동주 회장의 위협을 막아냈다. LG그룹에서도 구광모 회장의 지원군이 될 우호지분이 상당하다. 

지난해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열린 사장단 워크샵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최고경영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LG그룹.
지난해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열린 사장단 워크샵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최고경영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LG그룹.

LG그룹 총수는 지주사인 ㈜LG를 통해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다만 지주사 지분을 일가가 조금씩 보유하고 있다. 총수가 가문의 수장으로서 그룹의 주요 현안을 결정하더라도, 친척들도 일부 참여할 수 있게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LG그룹 측도 “대주주들이 합의·추대한 회장을 이사회에서 확정해왔다”면서 “총수가 보유한 ㈜LG 지분은 일가를 대표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구광모 회장이 ㈜LG 최대주주라 해도 지분을 임의로 처분할 수 없고, 성장의 수혜를 나눠 받는 구조인 것이다. 

지난해 12월 초 기준 ㈜LG의 지분을 보면, 특수관계인 30명이 41.7%를 갖고 있다. 복지재단을 재외하면 개인 주주는 구자경 명예회장과 구본무 선대회장의 가족들로 구성돼 있는데, 1% 이상 지분을 가진 건 구광모 회장(15.95%), 김영식 여사(4.20%), 구연경씨(2.92%), 구본식 LT그룹 회장(4.48%),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3.05%), 구본준 LX그룹 회장(2.04%) 등 6명뿐이다. 

경영계에서는 법정 비율대로 지분을 나눈다 해도 구 회장의 경영권이 위협받을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현행법상 배우자 1.5, 자녀가 1씩 재산을 분할 받는다. 이를 적용하면 김영식 여사가 3.75%, 구광모 회장과 구연경·연수씨가 2.51%씩 갖게 된다. 구광모 회장의 지분율은 9.7%로 낮아지는 반면 김영식 여사 7.95%, 구연경씨 3.42%, 구연수씨 2.72%로 늘어난다. 김영식 여사와 두 딸의 지분 총합은 14.09%, 구광모 회장의 2배 가까이 된다. 다만 구광모 회장이 여전히 개인 최대 주주이고, 구본능 회장 등 우호 지분이 상당하다. 

법원이 김영식 여사 측의 손을 들어줄지도 미지수다. ‘유언장이 없었으므로 법정 비율대로 재산정해야 한다’는 게 김영식 여사 측의 논리다. 반면 LG그룹 측은 “‘회사 내에서 재산을 두고 다투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는 가풍을 가족 간 협의와 합의를 통해 지켜져 왔다”고 반박하고 있다. 지분을 후계자에 물려주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얘기다. LG가의 친족들은 구광모 회장 편에 설 가능성이 다분하다. 

민법에서 규정한 상속권회복청구를 위한 제척기간은 3년, 단 상속권 침해가 벌어진 날로부터 10년 안에 소 제기가 가능하다. 김영식 여사 측은 유언장 부재를 뒤늦게 인지했다는 점만 입증할 수 있다면 LG그룹의 주장을 뒤집을 순 있다. 

여성들의 반기, 장자 승계 원칙 흔들까

김영식 여사 측은 ‘경영권 분쟁’과는 선을 긋고 있다. 소 제기의 이유에 대해 “가족 간 화합”과 “상속 과정에서 있었던 절차상 문제”를 꼽았다. LG그룹 측의 입장과 달리 상속인 간 의사 조율이 원만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그룹 내에서 지분 비율 등에 대해 불만을 제기할 수 없었던 분위기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故) 구자경 명예회장이 2018년 말 작고했던 만큼, 승계 원칙을 거론키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구광모 체제가 안정화되지 않은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후계자가 정해지면 계열분리가 이뤄져야 했지만, 구본준 LX그룹 회장은 2020년에야 독립을 결정했다. 2년여 간 관록을 지닌 경영인의 조력이 필요했음을 뜻한다. 

4세 경영이 확고해진 다음에야 ‘상속 절차’를 문제 삼은 건 감정적 대응에 가깝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김영식 여사 측은 지난해 7월과 올해 초 구광모 회장에게 재분배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구광모 회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구연경씨의 상속세를 납부하는 것으로 ‘원만히 해결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가 지난해 8월 저신장 아동에게 성장로르몬제 기증서를 건네고 있다. 사진. LG그룹.  

재계에서는 구광모 회장의 ‘특수한 위치’가 현재 갈등에 이른 원인으로 보고 있다. 구광모 회장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로, 구본무 선대회장이 외아들을 잃은 이후 양자로 입적됐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데일리임팩트에 “구광모 회장의 우호 지분이 적지 않아 경영권을 목적으로 한 지분율 게임이 벌어질 공산은 크지 않다”면서 “김영식 여사가 전면에 등장한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김 여사가 내용증명을 보낸 뒤 소를 제기했다”며 “정통성을 지닌 구본무 선대회장의 ‘핏줄’에 대해 배려해주지 않았다는 서운함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짚었다. 

특히 여성들의 역할을 제한한 데 따른 반발이 터진 것이라는 주장이 고개를 든다. 장자는 태어나는 순간, 후계자로 낙점되기에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압박감도 덜하다. 그러나 LG가 여성들은 능력 여부와 관계없이 수동적 역할을 요구받았다. 정유경 신세계그룹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정지이 현대무벡스 전무 등 재계 주요그룹 여성들이 전문경영인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에 반해 구연경씨는 LG복지재단 대표라는, ‘명예직’에 가까운 직함을 달고 있다. 

재계 여성들도 동등한 입장에서 경영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을 경우, 전면전을 불사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KCGI(강성부펀드)·반도건설 등과 연합해 반기를 들었다. ‘조원태 회장이 총수로 지정된 건 공동경영을 하라는 선대회장의 유훈을 어긴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재계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요구하는 데에는 시대적 흐름과 연관이 깊다. 대기업들은 최근 ‘능력에 따른 발탁’을 강화하고 있다. 인재 등용이 기업의 경쟁력으로 직결된다고 판단해서다. 그럼에도 총수 일가는 이 같은 흐름에서 비껴나 있었고, LG가는 유독 두드러졌다. 익명을 요구한 경영계 인사는 데일리임팩트에 “우리나라 재벌가는 매우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다”면서 “혈연에 의한 대물림을 하고 있으나, 후계자 검증이 굉장히 나이브해 시비를 자초하는 측면이 있다. LG가는 더욱 그렇다”고 꼬집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부각됨에 따라 과거와 같은 승계를 고수하기는 어려워졌다. 총수 일가라도 경영인으로서 자질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LG가에서도 여성 경영인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장자 승계 원칙이 바뀔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은 장남인 구본성 전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한 뒤 회사를 이끌고 있다. 구자학 아워홈 창업주는 고(故)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의 삼남이다. 범LG가에 속하는 아워홈은 2016뇬 구본성 전 부회장이 장자 승계 원칙을 주장하며 경영에 참여했으나 방만경영, 도덕적 해이 문제로 퇴진했다. 구지은 부회장은 2021년 대표이사로 복귀해 1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해외 확장과 신사업 진출에 속도를 내면서 경영 능력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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