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SK하이닉스 뉴스룸
사진. SK하이닉스 뉴스룸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달력(그레고리력)은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연도를 정하고 있다. 예수가 탄생한 해를 A.D(Anno Domini)1년으로 하고 탄생 이전은 B.C(Before Christ)로 역산되는 이유다. 

서기 2020년은 또 다른 BC, AD의 분기점이 되고 있다. 전 세계를 꽁꽁 묶어놓은 코로나(Covid-19)가 원인인데 코로나 이전인 BC(Before Corona)와, 이후 AD(After Disease)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2021년 2월 기준 코로나 팬데믹은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1년 남짓 기간의 진행만으로도 전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코로나라는 태풍이 쓸고 간 자리에 무엇이 남고 얼마나 큰 피해가 있을지 상상하기 두렵다. 이미 확인된 사상자와 실직자는 기록적이다. 양극화는 더욱 극명해졌고 파괴된 자연은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어려운 일을 겪고 나서 따지는 책임소재의 의미는 적지 않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코로나를 초래한 비난이 사회곳곳에서 일고 있는 가운데 승자독식의 냉엄한 경영현장 역시 반성의 목소리가 높다.

이제라도 환경(Environmental)을 돌아보고 사회(Social)의 어려움과 함께하며 투명한 지배구조(Governance)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이 CSR(기업의 사회책임활동)이나 CSV(공유가치창출), SV(사회적 가치) 등의 이름으로 사회적 어려움과 함께했으나 이익을 위한 분칠에 그친 채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난에 대한 자성이다. 

ESG경영이란 무엇인가

지난 1월18일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세계 144개국을 대상으로 ESG 수준을 평가한 보고서를 내놨다. 우리나라가 미국 일본 등보다 높은 등급으로 판정돼 정부는 크게 고무됐지만 경제계가 주목한 것은 무디스가 사상 처음으로 ESG를 기준으로 보고서를 냈다는 사실이었다. 서서히 달아오르던 ESG가 이제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확인한 것이다. 

 

무디스 국가별 ESG 신용영향점수 자료. 기획재정부
무디스 국가별 ESG 신용영향점수 자료. 기획재정부

ESG란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용어로  ESG경영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고려해야 할 조건으로 ESG 요소를 반영하는 경영활동을 말한다. 2019년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S&P와 무디스, 피치가 기업을 평가할 때 ESG요소를 적극 고려하기로 했다.

기업의 신용등급은 돈을 빌리거나 투자를 받을 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물건 잘 팔아 이익을 많이 내면 기업은 단단해지고 신용등급 역시 잘 받을텐데 재무적으로 관련이 없는 ESG를 등급결정의 기준으로 선언한데 이어 공식적으로 국가 등급까지 매겼으니 ESG가 경영현장에 미치는 영향은 직접적이다. 

사실 ESG의 세 항목은 어제 오늘 툭 튀어 오른 이슈는 아니다. 기업이 사회적인 변화와 어려움에 책임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CSR에서부터 사회가치의 중요성을 말할 때 빠지지 않은 기업의 핵심과제다. 1997년 출범해 지속가능 보고서에 대한 국제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국제기구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는 2016년 경제 분야 7개, 환경 분야 8개, 사회 분야 19개 주제와 각각의 지표 등을 보고서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ESG 각각의 개념이 이미 분명히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유엔은 2015년 제시한 지속가능 발전 목표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에서 ESG 요소를 보다 구체적으로 담았다. 2030년까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실천해야 할 과제로 17개를 제시했는데 이를 ESG기준으로 재분류하면 사회(S)가 11개(1~11번)로 가장 많고, 환경(E) 4개(12~15번), 지배구조(G)는 2개다. 국제표준화기구 ISO는 CSR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ISO 26000을 통해 7개 카테고리를 정의했는데 이 역시 5개가 S, 환경과 지배구조항목을 각각 1개씩 포함하고 있다. 

용어로의 CSR CSV 그리고 ESG

전통적인 CSR이나 한동안 임팩트있는 화두였던 CSV, 또한 지난 3년이상 국내 기업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SV와 ESG가 보이는 차이에 대한 검토는 ESG의 의미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그동안 CSR이나 CSV 활동에 열심이었던 기업은 기업대로, 이제 ESG경영을 위해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기업은 기업대로 효율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개념부터 명확히 하기 위해서다 하나같이 세상의 어려움에 나서라는 기업의 책무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데 같으면서도 다른 듯한 의미로 각각의 용어들이 순차적으로 경영현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각각의 용어가 담고 있는 뜻이 같을 수밖에 없는 것은 주문 대상과 목표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용어가 무엇이든 기업을 향한 주문이자 요구들이며 우리 사회는 물론 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높일 목적으로 제시된 방안이다.

이익만 추구하면서 초래된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정당하고 투명한 의사 결정을 하며, 마구잡이 개발로 초래된 자연환경적 폐해에 기업이 책임있게 나서라는 요구다.  

각각의 차이점은 용어의 출발과 배경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오래 전부터 있었던 기업의 자선활동 등이 CSR이란 용어로 구체화 된 계기는 1953년 미국 연방법원의 판정이라는 주장이 일반적이다(Helslin&Ochoa, 2008).

미국의 스탠다드 오일이 스탠포드 대학 엔지니어링 학과에 기부를 하자 일부 주주들이 주주이익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연방법원이 ‘스탠다드 오일의 기부활동은 미래 고용자를 교육시키는데 도움을 줌으로써 기업에도 이득이 된다’라는 판정을 내린 것이다. 

이후 CSR활동은 자선적 활동의 중요성과 주주의 이익이 사회자원에 바탕하고 있다는 인식, 주주는 물론 고객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까지 경영활동에 포괄해야 한다는 수준으로 진화했다. 기업경영에서 번 돈을 사실상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와 이해관계자 모두를 위해 쓰라는 포괄적인 주문이라는 분석이다. 

2000년을 전후해 체계를 갖추면 현장으로 확산돼 나가던 CSR경영은 2011년 미국 마이클 포터의 논문하나로 큰 변화를 맞게된다. 논문 ‘Creating Shared Value’(CSV)는 CSR활동에 미적거리던 기업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회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작업은 곧 기업에도 이익이 된다는 개념과 공동의 이익을 만들어 내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CSR을 ‘책임’이란 이름으로 부담스러워하던 기업들에게 ‘사회를 위해 돈과 관심을 쏟으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방법을 제시하니 관심이 집중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CSR에 적극적이었던 리만브라더스가 2008년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환경과 빈곤, 불평등, 부패 등에서 CSR에 대한 반성이 전문가들 사이에 일고 있던 시점이어서 CSV의 설득력은 대단했다. CSR은 낡은 개념이고 CSV가 옳은 방향이란 논란까지 불러 일으키면서 국내 많은 기업들은 사회공헌부서를 CSV팀 등으로 명칭을 바꾸기까지 했다.  

 

주요 사회가치 구현활동 용어 비교표. 자료. PSR
주요 사회가치 구현활동 용어 비교표. 자료. PSR

 

2017년은 한국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촛불정국에서 탄생한 정부는 사회가치(SV) 구현을 대대적으로 들고 나왔다. 공공기관을 필두로 일반 기업까지 확산해 나가겠다는 목표로 시작돼 사회가치는 기업의 사회책임 활동에 주류가 됐다. 

공기업은 물론 일반 기업들까지 CSR CSV 대신 사회가치 구현이란 이름으로 관련 조직을 재편하기도 했다. 사회가치는 사실 기업들에게 사회적 어려움을 풀어나갈 행동을 요구한 용어라기 보다는 기업가치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CSR, CSV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로서 이미 일반화된 용어다. 

이런 과정에서 지난해를 계기로 본격 등장한 용어가 ESG다. ESG 역시 유엔의 지속가능개발 목표나 GRI의 지속가능보고서, UN 지속가능개발 목표, ISO 26000 등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돼 온 개념이다. 새로울 게 없다는 얘기다. 심지어 ISO의 기존 국제표준에는 각각의 요소를 구체적으로 담아 측정까지 해왔던 이슈다(아래 표).

 

ESG관련 ISO 국제표준 자료. 더스쿠프
ESG관련 ISO 국제표준 자료. 더스쿠프

 

현재까지 제시된 ESG는 기존 사회가치 구현활동과 달리 리스크 요인을 최소화하고 기회요인을 극대화하는 투자자적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해관계자 전반의 어려움을 해소하려는 사회적 관점과 대비된다. 구체적으로는 환경의 경우 오염물질을 줄였는지를 따져 활동하는 CSR 활동과는 달리 ESG경영은 기후변화 리스크에 대비하는 전략과 프로세스를 담고 있는지를 본다. 

산업내에서 비교 가능하도록 구체적으로 관리하는 게 ESG 기준이다. 거버넌스의 경우 소액주주를 보호하고 회계투명성을 높이며 법질서를 위반하지 않는 활동과 임직원의 보수와 이사회활동, 의장의 리더십, 성과에 대한 평가, 이사회 보고 및 윤리경영 등을 포괄하는 특징도 갖고있다.

ESG경영은 결국 환경을 보호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기업윤리 정도로 인식했던 사회에 대한 기업의 역할에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며 지속가능한 투자대상으로의 보다 구체화된 대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와 함께 급부상한 ESG

 ESG가 새롭고도 강력하게 경영현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코로나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과거부터 ESG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한 활동의 중요한 요소였으나 다양한 목표 중 환경과 투명경영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 것이다.

환경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새로워졌으며 국가와 도시가 문을 닫고, 비대면 업무환경이 만들어지면서 지역사회나 기업 본원 가치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코로나로 비롯된 충격의 산물이다.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쏟아 부은 돈 때문에 극명해진 양극화의 해소와 ESG의 연관성을 지적하는 분석도 설득력을 갖는다. 대대적인 양적완화로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에 몰린 돈이 결국 또 다른 양극화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자산의 쏠림에 따른 소외계층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경제패권이 형성될 것이고 이 경우 신재생에너지 등 ESG 이슈는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신재생 에너지를 위한 자연조건과 기술력에서 앞선 미국의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이후 본격화하고 있는 개인과 기업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기될 미국의 다양한 패권 수단에 환경이 주요한 이슈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제 교역현장에서는 이미 RE100(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100% 사용)의 가입을 납품조건으로 내거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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