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과 LG화학 각 사 CI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 각 사 CI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의 최종 판결이 12월10일로 또 다시 연기되면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맞붙은 세기의 배터리 소송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불투명해졌다.

27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SK이노)에 따르면 ITC는 26일(현지시각) LG화학이 지난해 4월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판결을 12월10일로 6주 더 연기했다.

ITC는 위원회의 투표를 통해 최종판결의 재연기를 결정했다고 밝혔으나 그 배경이나 사유는 별도로 설명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미국 내에서도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는 데다 특히 최근 대선과 맞물려 정치적인 쟁점으로 비화하면서 ITC의 부담이 가중됐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로써 1년 6개월간 이어지고 있는 양사의 소송 리스크도 장기화되는 모양새다. 양사 모두 합의 가능성을 열어뒀으나 협상 과정에서 의견 차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최종판결을 기점으로 유불리가 극명하게 나타나게 되면 합의가 빠르게 타진될 수 있을 것으로도 예상했다. 하지만 최종판결이 연기되면서 합의 역시도 지지부진한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ITC소송에 지속적으로 성실하고 단호하게 임해 나갈 것”이라면서 “경쟁사가 진정성을 가지고 소송문제 해결에 나선다면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는 것이 일관된 원칙”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LG화학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소송이 시작된 후로 책임 소재조차 제대로 가려내지 못하는 등의 흐름을 고려해서 상대 측(SK이노)에 진정성을 요구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 측은 미디어SR에 “첫 협상에서 상대 측이 10조원의 합의금을 요구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금액이면 자사가 배터리 사업에 투자한 금액을 넘어서는 수준이고, LG화학 지분의 절반에 해당하는데, 어떤 것이 (합의에) 진정성 있는 자세인지 묻고 싶다”고 반박했다.

SK이노베이션 이날 입장문을 통해 "(최종 판결) 연기와 관계없이 소송에 충실하고 정정당당하게 임하겠다"며 "소송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없앨 수 있도록 양사가 현명하게 판단해 조속히 분쟁을 종료하고 사업 본연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두 회사는 ITC 최종판결의 연기된 배경에 대해서도 다소 차이를 보였다. LG화학 측은 “최종결정 연기와 관련해서는 최근 2차 연장되는 다른 소송 건도 있어 코로나19로 인한 영향 등으로 순연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반면 SK이노 측은 “ITC 위원회가 앞서 1차로 연기에 이어 추가로 45일이라는 긴 기간을 다시 연장한 사실로 비춰 볼때 위원회가 본 사건의 쟁점을 심도있게 살펴보는 것”이라는 해석을 제시했다.

이번 소송은 지난해 4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를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 직원을 대규모로 빼가면서 배터리 연구‧제조 등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ITC는 이에 대해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조기패소 판결을 내렸다.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하고 재판부의 포렌식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LG화학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다. 하지만 ITC는 4월 SK이노베이션 측의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 기존 조기패소 판결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진행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ITC가 예비판결 결정을 뒤집은 전례가 없어 여전히 LG화학 승소를 유력하게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판결이 다시 한 번 연기되면서 소송 장기화에 대한 불확실성은 커졌다.

이날 판결 재연기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 장기화 리스크가 가중하며 현재 결렬된 상태인 합의 논의가 재개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시장 조사업체인 IHS는 2025년 글로벌 배터리 시장 규모가 연 180조원 대를 넘어설 것으로 관측한 바 있다. 올 상반기를 기준으로 LG화학은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업계 중 1위(점유율 24.6%), SK이노베이션은 6위(3.9%) 업체다.

만약 ITC가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패소를 확정하면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제품의 미국 내 수입금지 효력이 발생한다. 영업비밀을 침해한 제품, 즉 배터리 셀과 모듈 등 관련 부품·소재도 미국 내 수입이 금지되기 때문에 사실상 미국에서의 배터리 생산이 불가능해진다. SK이노는 현재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으며 추가 투자 계획까지 밝힌 바 있어 더욱 난처한 상황이다.

하지만 ITC가 추가 검토를 통해 △LG화학 승소로 판결하되 미국 내 공익·경제성 평가를 통해 SK 수입금지 조치는 별도로 정하거나 △SK 조기 패소 판결을 뒤집고 관련 내용을 전면 재검토 하는 '수정(Remand)'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ITC는 4월 재검토 결정 당시 공중보건·복지와 미국 경제의 경쟁 조건, 미국 소비자 등과 관련한 ‘공익’을 고려해 판단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출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출처

이에 여론이 ITC 위원회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SK이노의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증설 계획이 곧 미국 내 침체된 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해 이를 요구하는 여론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대통령 선거를 1주일 남겨두고 막바지 유세에 나선 상황이다.

한편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최종 판결을 연기한 데 따라 두 회사에 대한 국내 주식 시장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LG화학은 27일 오전 11시 기준 전일보다 1만1000원 떨어진 63만5000원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SK이노베이션은 같은 시각 기준 1500원 상승해 시가 13만3000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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