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분쟁조정 우선 수용 후 신한금융투자에 구상권 청구 가능성 높아

(왼쪽부터) 라임자산운용, 신한금융투자 사옥. 사진. 라임자산운용, 이승균 기자
(왼쪽부터) 라임자산운용, 신한금융투자 사옥. 사진. 라임자산운용, 이승균 기자

[미디어SR 김사민 기자] 금융감독원이 라임자산운용 무역금융펀드 판매사에 `전액 반환`이라는 전례 없는 강수를 두면서 줄곧 라임 사기 사건의 피해자라고 주장해왔던 시중은행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30일 금융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2018년 11월 이후 판매된 라임 무역금융펀드 분쟁조정 신청 4건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결정했다.

이는 즉 판매 과정에서 펀드 수익률, 위험성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불완전판매가 아닌 계약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금융투자상품 분쟁조정 사례 중 최초로 판매사들에 "펀드 계약을 취소하고 펀드 판매계약의 상대방인 판매사가 투자원금 전액을 반환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판매사 불완전판매가 인정돼 손실금액의 최대 80%까지 배상 권고 결정이 나온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도 당시 역대 최고 수준의 배상 비율이었지만, 그보다 더 엄중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는 DLF와 라임 무역금융펀드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 다른 데에서 기인한다. DLF는 상품의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안전 자산`임을 강조해 판매한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라임 무역금융펀드의 경우 계약 체결 시점에 이미 투자원금의 상당 부분(최대 98%) 손실이 발생한 상황에서 운용사가 투자제안서에 수익률, 투자 위험 등 핵심 정보를 허위로 기재했다. 사실상 투자자를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것이다.

금감원은 또한 이를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판매해 투자자의 착오를 유발한 판매사에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일부 판매 직원은 투자자 성향을 공격투자형으로 임의 기재하거나 손실보전각서를 작성하는 등, 합리적인 투자 판단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라임자산운용과 신한금융투자 핵심 관계자들은 사기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금감원은 당초 사기에 의한 계약 취소도 고려했으나 사기죄가 확정될 때까지 배상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로 확정했다.

무역금융펀드 투자자가 분쟁조정을 신청한 108건 가운데 이번 분쟁조정 대상이 된 4건의 판매사는 우리은행, 하나은행, 신한금융투자, 미래에셋대우 등이다.

판매사들은 금감원으로부터 조정결정문을 받은 뒤 이사회 검토를 거쳐 결정하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분조위 결정을 면밀히 검토해 당행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의사결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우리은행도 결정문 접수 후 내부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수락 여부를 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은행들은 라임자산운용과 신한금융투자의 사실상 사기 문제로 벌어진 펀드 환매 중단 사태의 책임을 판매사가 모두 떠안아야 하는 다소 불편한 상황에 놓였다.

펀드 계약은 운용사, 판매사, 소비자 간 신뢰를 기반으로 한 계약인데 소비자와 일차적 접점에 있는 판매사가 모든 리스크를 가져가게 된다는 것이다.

판매사가 대표 사례 4건에 대한 분쟁조정 결과를 받아들일 경우, 2018년 11월 이후 판매된 나머지 무역금융펀드 사례도 전부 자율배상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개인 500명, 법인 58개사를 합해 총 1611억원 규모에 달한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앞으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우선 일차적으로 판매사가 배상하고 추후 잘잘못은 알아서 정리하라는 격"이라면서 "운용사나 금융 소비자 도덕적 해이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운용사의 불법 행위로 벌어진 문제지만 은행들은 원금 선지급을 통해 최대한 소비자 보호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은행 측 책임이 있으면 당연히 분조위 결과를 수용해야겠지만, 배임 이슈에 대한 법률적 판단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이번 금감원 분쟁조정 결정을 수용할 거란 관측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무역금융펀드 외 라임펀드와 관련해 이미 51% 선지급 방안을 확정 지었으므로 무역금융펀드 분쟁조정안을 거부할 명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미디어SR에 "은행들은 금감원 분쟁조정 결과 수용을 전제로 라임펀드 선지급안을 결정한 바 있다"면서 "무역금융펀드 선지급은 아니었지만, 다른 라임 펀드는 분쟁조정 결과에 따르면서 100% 배상안이 나오니 무역금융펀드는 수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일부 은행들이 앞서 DLF나 키코 사태 분쟁조정 결과에 수용하고 고객 배상에 나선 전례가 있기 때문에 업무상 배임을 적용할 여지도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라임펀드 손실에 대한 배상이 배임이면, 앞서 DLF 분쟁조정 결과에 따라 은행들이 자율배상을 진행한 것도 다 배임이 된다"면서 "전액 배상에 따른 법률적 문제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이 우선 분조위 결정을 수락한 뒤 신한금융투자를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하는 소송에 나서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사실상 와해한 라임자산운용과 신한금융투자가 공모해 무역금융펀드의 주요 투자자산인 인터내셔널인베스트먼트그룹(IIG) 펀드의 부실을 은폐한 정황이 파악됐기 때문이다.

김득의 상임대표는 "무역금융펀드 전액 반환은 비용이 아니라 고객 신뢰를 회복하는 투자이므로 대부분 판매사가 수용할 거라 본다"면서 "만약 은행들이 업무상 배임의 여지가 있다면 추후 신한금융투자에 구상권을 청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 분쟁조정은 당사자인 신청인과 금융사가 조정 결정문을 받은 뒤 20일 이내에 조정안을 수락해야 성립된다. 통상 결정문이 당사자에게 도착하는 데까지 7일 정도 걸리므로 오는 9일 이후 은행들은 이사회를 열어 조정안 수락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금감원 조정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판매사가 분쟁조정 결과를 수용하지 않으면 펀드 투자자들은 개별적으로 판매사와 기나긴 소송전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