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 스틸컷

예전에는 외화를 수입해서 개봉만 하면 돈을 벌던 시대가 있었다. 많은 영화 제작사들은 외화 수입 쿼터를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안달이었고 정부는 한국영화 진흥책으로 국산영화를 만드는 제작 배급사에 한해 외화 수입권을 할당해 주었다. 아카데미상 수상작이라도 되면 수입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때였다. 이때만 해도 한국영화는 ‘방화’라는 이름으로 천대받았다. 

지금은 한국영화와 외화의 스크린 점유율은 반반이다. 오히려 좋은 외화들이 블록버스터급이 아니면 소리 없이 개봉되어 조용히 사라진다. 볼 만한 외국작품, 영화팬들이 좋아할 만한 명작들이 단관 개봉하거나 예술영화관에서 며칠을 버티지 못한다.
영화 ‘룸’도 그런 작품이다.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며 상당한 울림과 감동을 주는 작품이지만 영화를 본 사람은 거의 없고 영화제목조차 생소하게 느끼는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무슨 사명감 같은 거로 무장한 채 글을 쓰고 있다. ‘기획’과 ‘자본’으로 만들어지는 한국영화에 식상했다면 이런 영화로 한번 영혼을 정화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 말이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2008년 오스트리아에서 벌어진 ‘요제프 프리츨’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열 일곱 살 소녀 조이(브리 라슨)는 하굣길에 괴한에 의해 납치된다. 무려 7년 동안 8평의 작은 ‘룸’에 갇히게 되고 납치범의 아이 잭(제이콥 트렘블레이)을 낳게 된다. ‘룸’에서 지옥 같은 생활을 버티던 조이는 어느덧 24살이 되었고, 아들 잭을 위해 다섯 살 생일케이크를 만들어준다. 그러나 조이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 탈출을 결심한다. 납치범 닉은 일주일에 한 번씩 생필품과 식량을 방에 집어 넣어줄 뿐 이들과 어떤 정서적인 교감도 하지 않는다. 

조이는 잭이 열이 올라 급히 의사를 만나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저 약만 던져 줄 뿐이다. 결국, 잭이 병으로 죽었다며 밖으로 내보내 잘 묻어 달라며 울부짖는다. 닉은 잭을 카페트에 돌돌 말아 트럭에 싣고 밖으로 나가고 그사이 잭은 엄마가 얘기해 준 대로 도시로 나오자 탈출한다. 잭에게는 처음으로 낯선 사물과 환경을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천장에 조그맣게 난 채광창으로 바라보는 하늘이 아니라 눈에 가득 파란 하늘을 담게 되고 TV에서만 보던 ‘가짜’ 자동차와 ‘가짜’ 꽃들과 ‘가짜’ 집들을 리얼로 보게 된다. 영화 전반부의 분기점인 잭의 탈출 과정이 긴박한 음악과 가슴 쫄깃한 상황으로 여느 스릴러 영화보다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한다. 연출의 힘이다.

한 영리한 여자 경찰관의 도움으로 범인은 체포되었고 두 모자는 비로소 갇혀있던 룸을 나오게 되며 잭은 창 너머 새로운 우주와 비로소 처음으로 대면한다. 밖으로만 나오면 소원이 없을 거 같았지만, 바깥세상도 역시나 사는 건 녹록치 않았다. 세상은 그들을 대상화하여 외계인처럼 대했고 잭의 아버지를 어떻게 보느냐는 무례한 질문도 서슴치 않았다. 7년 동안 변화된 가족들의 낯선 관계에도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급기야 조이는 스트레스성 무기력증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나 아들 잭은 자신의 힘이라고 믿는 머리카락을 잘라 엄마에게 보내주며 힘을 준다. 엄마 조이는 잭의 응원에 힘입어 새롭게 살아갈 용기를 다시 얻는다.

마지막으로 둘은 자신들이 갇혀있던 창고를 둘러본다. 다시는 이제 돌아보기 싫은 `룸`이라는 공간의 사물과 작별인사를 나누며 그들에게 다가올 또 다른 불안한 미래를 살아갈 동력을 얻는다.

룸의 문만 열면 신세계가 닥칠 것 같지만, 막상 밖으로 나오면 그에 못지않은 어려움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역시 같은 무게로 다가와 결국 자신만이 세상을 헤쳐갈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조용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환기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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