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를 이 칼럼에서 다룬 건 처음이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하 미스터)의 시청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시작부터 이 드라마는 화제였다. 영화가 감독의 창작물이라면 드라마는 누가 뭐래도 극본을 쓰는 작가의 것이다. 미스터의 작가는 드라마 판에서 가장 잘 나가는 김은숙이 썼다.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했던 ‘태양의 후예’와 ‘도깨비’의 작가이니 편당 1억원을 줘도 누가 딴지를 걸진 못할 거다. (24부작이니 전체 고료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드라마 출연은 그동안 거부하고 영화만 고집했던 이병헌이 주연 배우를 맡았고 신예 김태리가 여주인공 역을 매력적으로 소화하고 있다. 호화 캐스팅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랜 건 총 제작비다. 천만 영화를 기대하면 만들었던 ‘신과 함께’의 제작비와 맞먹는 430억이 투입되었다 하니 화면의 때깔이 좋은 건 어쩌면 당연한건지도 모른다.

이야기도 신선하다. 배경은 그간 영상매체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신미양요(1871년)부터 시작한다.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최유진(이병헌)은 양반에 의해 억울하게 돌아가신 부모님을 눈앞에서 보았다. 어린 소년은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군함에 몰래 승선해 미국에 홀로 떨어져 갖은 고초를 겪고 군인이 된다. 그리고 미국 군인 신분으로 자신을 버린 조국인 조선으로 돌아와 복수와 사랑을 그린 드라마다. 여기에 조선 고관의 딸 신분으로 의병을 도와 협객으로 활약하는 고애신(김태리)과 그를 연모하는 두 남자가 얽히면서 삼각, 아니 사각 관계의 로맨스가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인물은 고종이다. 고종이 여기서는 조금 다르게 나온다. 우리가 흔히 아는 고종은 우유부단하며 유약한 이미지로, 어린 시절은 아버지 대원군의 등쌀에 세월을 보냈고 장가를 가서는 민비의 치마폭에 쌓여 지내다가 운 좋게 러시아 공사관에서 숨어 살다가 쓰러져간 왕조 하나 지키기 위해 대한제국을 만든 못난 왕, 커피나 좋아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건사하기 위해 살아온 군주로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최근에 역사학자들 사이에 고종의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식민지 사관의 입장에서는 고종이 못날수록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부여받았다면 새로운 시각에선 암울한 상황에서도 국권을 수호하고 회복하려는 처절한 노력을 다한 계몽군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드라마에서 고종의 내탕금 비밀문서를 찾기 위해 조정과 일본, 미국이 혈안이 되어 있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고종에게는 요즘 말로 ‘비자금’이 필요했다. 군대를 양성하고 의병의 군자금을 마련하고 왕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내탕금 마련은 어찌 보면 반드시 필요한 통치행위였다. 실제로 이 내탕금의 상당한 금액이 의병의 활동자금과 만주에서 거병을 준비하던 대한제국 군인들에게 흘러갔다는 사료가 발견되고 있다. 고종은 자금을 상해와 러시아 은행에 숨겨 두었다가 점점 일본의 감시와 간섭이 심해지자 믿을 수 있는 은행으로 이체한다. 그곳이 바로 독일의 덕화은행(도이치뱅크)이었다. 몇 년 전 공중파 다큐멘터리로도 방영되었던 고종의 내탕금은 지금도 독일 은행에 잘 보관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가지 이유로 출금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모양이다. 지금 돈으로 하면 약 500억 정도가 된다고 하니 상당한 금액이다.

미스터에서 고종은 의젓하다. 외세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여러 외교적 경우의 수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책임을 회피하지도 않고 주어진 자신의 권력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고종의 몸부림이 눈물겹다. 지금까지 누구도 고종의 아픔을 위로해준 적이 없었던 듯하다. 나는 그래서 오히려 ‘미스터 션샤인’이 고종처럼 여겨졌다. 백성들에게 햇살을 비춰주려는 군주의 마음이 느껴졌다. 고종은 다시 조명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그것이 균형 잡힌 역사인식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