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공헌사업과 ESG 경영의 특수한 지형
- 동일한 지향점을 향한 통합 전략

‘ESG 경영과 공익법인의 동행’ 시리즈

1. 기업과 공익법인의 지속가능 생태계

2. ESG 경영의 긴밀한 파트너, 공익법인

3. 지속가능 생태계의 위기

4. 공익법인은 ESG에 기회인가 위험인가

5. 공익법인의 뉴 패러다임, ESG

ESG와 CSR. 사진=trustnet.trade
ESG와 CSR. 사진=trustnet.trade

환경, 사회, 거버넌스 영역에서의 지속가능경영을 뜻하는 ESG 경영이 화제다. 공시 의무화를 앞두고 일차적인 대상이 되는 상장 대기업뿐만 아니라 순차적 공시 대상 확대 및 공급망 편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상 외 기업들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이제 ESG는 단어 자체만큼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일반적으로 ‘친환경 경영, 착한 경영’을 위한 캠페인 정도로도 이해된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사회책임 활동을 뜻하는 CSR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뚜렷하지 않은 것이 여전한 현실이다.

비슷한 듯 다른 ESG와 CSR

CSR(Corporation’s Social Responsibility)은 ESG 용어 이전에 등장한 경제적, 법적, 윤리적 그리고 자선적 기대를 포함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개념이다. OECD 정의에 의하면 ‘기업과 사회와의 공생 관계를 성숙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기업이 취하는 행동’이고, EU 위원회는 ‘기업 스스로가 자신의 사업 활동을 할 때나 이해관계자와의 상호관계에서 자발적으로 사회적, 환경적인 요소들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1970년대부터 주목받기 시작하여 2000년대 초반에는 많은 기업의 필수 전략이 됐고 책임 있는 기업 행위를 뜻하는 ‘RBC(Responsible Business Conduct)’와 병행 사용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주로 기업이 지역 사회 혹은 환경에 환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활동이나 기부를 의미하며, 더 작게는 기업의 사회공헌사업이나 프로젝트를 지칭할 때 사용된다.

ESG는 기업이 환경, 사회, 거버넌스 영역에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지 특정 지표에 의해 판단하고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과 기회를 더욱 잘 포착하도록 하는 경영 방식이다. 2004년 UNGC(유엔글로벌콤팩트) 주도로 발의된 ‘Who Care Wins’ 보고에서 ESG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고, PRI(사회책임투자 원칙)에 반영되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2020년부터 빠르게 확산하였는데, 투자자와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CSR에 비해 정량 데이터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으며, 표준화를 추구한다는 특징이 있다.

ESG 경영의 대두와 CSR의 난항

2000년대 초, ESG 용어 등장 이전에 CSR의 개념이 국내에 유입되며 발 빠른 기관들은 2003년에 이미 CSR의 맥락에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다. 또한 2005년부터 기업의 사회적책임에 대한 국제적 기준의 필요가 제기됐고, 2010년 11월, 국제 표준화 기구인 ISO(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 표준인 ISO 26000을 공표했다.

이후 ESG 경영이 국내에 소개되고 보고 의무화를 예고하며 급진전 됐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시행하는 CSR 사업과는 달리 ESG 경영은 대상에 따라 시기가 다를 뿐, 공시 의무가 예고되었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의 우선순위 과제가 됐다.

이런 맥락에서 국내의 CSR과 ESG는 특수한 관계와 지형을 형성했다. 자원적 여력이 충분한 기업에서는 기존에 운영하던 CSR 부서 및 기업 재단의 경영을 유지한 채 ESG 경영을 전담할 부서를 설립하기 시작했지만 여력이 충분치 않은 경우 CSR과 ESG 부서를 통폐합하거나 기존에 추진하고 있었던 CSR 사업 내에 ESG 경영을 부분적으로 편입시키는 기업도 생겨났다. 한편 일찌감치 ESG 경영에 치중한 기업들에게 CSR 사업은 일부 ESG 지표를 만족시키는 수준으로 위치가 축소됐다. 지속적으로 상승하던 법인의 지정기부금의 액수도 하향세로 전환했다. 자연스런 흐름 속에서 탄생하여 확장되어 가던 CSR 사업은 대세가 된 ESG와 함께 그 지위와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전략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ESG와 CSR

이러한 배경에서 혹자는 CSR은 저물고 ESG의 시대로 전환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혹은 큰 흐름의 ESG 또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2010년대 이후 국내에서는 기업 경영의 최대 목적은 ‘이윤 창출’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이 도전받는 현상들이 목격되기 시작했다. 소비자가 기업의 근로자 대우 행태를 비롯하여 안전과 환경 원칙을 준수하지 않은 기업과 제품들의 목록을 자발적으로 공유하며 불매하는 조류가 형성된 것이다. 기업이 주요한 소비층으로 인식하는 MZ세대들도 자신에게 의미 있는 신념이나 취향을 소비로 표현하는 Meaning(신념)과 Coming Out(정체성을 드러내는 행위)의 합성 신조어인 ‘미닝 아웃’ 성향을 갖고 친환경 제품을 사거나, 동물 복지를 비롯하여 소외계층에게 기부로 연결되는 제품을 소비하는 경제 활동을 한다.

이런 현상은 CSR과 ESG 경영이 산업계 내부의 흐름이거나 국내 상황과는 무관한 해외만의 사정이 아닌,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다음 단계 자본주의 사회로의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것을 보여준다.

많은 전문가는 ESG라는 용어 자체는 새로운 단어로 대체될 수 있을지언정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전 세계적 흐름안에서 크게 후퇴하거나 사라질 가능성은 적다고 말한다. ESG 과열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현장에서의 ESG는 여전히 대세다. 한 예로 신년 서신을 통해 ESG의 부흥에 일조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회장 래리핑크는 2023년 6월 ESG 용어를 쓰지 않겠다고 언급했지만, 이후 블랙록은 기후변화 분야 투자를 확대했다.

ESG 위기론의 주장에 지속가능경영이 계속될 것이라고 대응하는 맥락에서 CSR의 난항도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 추구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는 계속되고 심지어 점차 확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광대학교 임종옥 교수는 한국산업경제학회의 저널을 통해 ‘ESG 사회평가와 사회공헌 활동비와의 관계’란 연구에서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비가 ESG 사회평가에 양(+)의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EU 위원회는 CSR과 ESG를 별개의 전략으로 보지 않고, 보다 응집력 있는 사회를 구축할 뿐 아니라 기업을 더욱 지속가능하고 혁신적으로 만들어 지속가능한 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가져오게 하는 하나의 전략이라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기업이 ESG와 CSR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합리적인 판단으로 보인다. ESG과 CSR은 각각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지만, 기업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목적이 같다. 기업이 단기적인 이익보다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사회와의 공존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투자자 및 다양한 이해관계자는 기업에게 ESG와 CSR을 각각 요구하기 때문에, 두 전략의 우열이나 선후를 따지기보다 동행을 추구해야 한다.

UN 총회에서 2015년 채택한 UN SDGs(지속가능한발전목표)의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것(Leave No One behind)’이란 약속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두 가지 활동은 각각 활성화해야하고, 또 전략적으로 지속가능경영의 맥락에서 통합되어야 한다. 비록 개념과 특징이 혼용된 과도기이지만, 이 시간을 통해 ESG와 CSR이 건전하게 함께하는 국내 고유의 지속가능성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 기대된다.

<조혜진 코스리 선임연구원>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