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시니어봉사단 김두성 씨

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시니어 봉사단 김두성 씨. / 사진 = 구혜정 프리랜서.
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시니어 봉사단 김두성 씨. / 사진 = 구혜정 프리랜서.

[데일리임팩트 권해솜 기자] 그의 교실은 활기차다. 아이들은 앞다투어 손을 들어 말하고, 힘 있게 목소리 높인다. 선생님 바로 앞에 가까이에 앉아 깊은 교감을 나눈다. 선생님과 가위, 바위, 보를 하며 보내는 즐거운 수업 시간. 교실 안 분위기가 딱딱할 필요는 없다. 흥미를 갖게 하고 행복하게 다가갈 수만 있다면 이게 진짜 교실 아닐까. 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시니어봉사단(시니어 봉사단) 김두성(68) 씨의 교실 문을 살짝 열어봤다. 

시끌벅적한 초등 방과후 수업 시간  

지난달 20일, 서울 강서구 방화2사회복지관 3층 도서관 옆 작은 교실에서 김두성 씨의 창의력 수업이 열렸다. 

“오늘은 올해 첫날이라 흥미 위주로 수업을 준비해 봤어요. 목요일은 저 말고도 다른 봉사 선생님이 '생태교육'과 '과학 키트 교육'을 맡고 계세요. 그러다 보니 제 첫 수업이 좀 늦었는데, 초성 퀴즈도 하고 연상게임, 빙고도 하고 정답을 맞히면 선물도 안겨줬습니다. 요란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방과 후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이 잘 따라주더군요.” 

까르르 넘어가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교실 바깥으로 새 나올 정도니 김 씨의 예상이 적중한 셈이다. 수업을 마쳐야 할 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아이들은 선생님과 어울리느라 교실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하니까 저도 젊어지는 느낌이에요. 집에 가만히 있기보다 몸도 움직이고 봉사도 할 수 있으니 즐겁습니다.”

2017년 8월 한양대학교 부속 초등학교의 교감으로 정년퇴임한 김 씨. 여전히 녹슬지 않은 실력으로 어린아이들과 웃음 넘치는 교실을 만들어낸다. 

그는 특히 ‘굿네이버스 미래재단’을 있게 한 ‘굿네이버스 교육전문위원’의 일곱 명 중 한 명이다. ‘굿네이버스’가 생긴 지도 어느덧 30여 년, 초창기 회원의 나이도 어느덧 은퇴자 대열에 합류했다. 사회에서 은퇴했지만 아이들을 위해 좀 더 힘써 보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모여 ‘굿네이버스 미래재단’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굿네이버스 미래재단에 대해 제안하고 이야기하던 초기에는 인원이 일곱이었어요. 3년쯤 지나 지금은 열여덟 명으로 봉사자가 늘었습니다. 진심으로 뜻있는 분들과 함께하려고 해요. 굿네이버스 미래재단 본부도 노력해 주시고요. 퇴직을 앞둔 굿네이버스의 교육전문위원을 시작으로 봉사에 관심 있는 분들을 추천받기도 했습니다. 어린이 교육 봉사에 뜻있는 분들이 모여서 단단하게 커나가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김 씨가 굿네이버스 회원이 되고, 봉사자로 살게 것은 교사 시절 학교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1977년 임용돼 공립학교에서 10년 생활하고, 난 뒤 88년에 한양대 부설초로 옮겼습니다. 학교에 여러 봉사단체가 학교로 모금하러 왔는데 제가 그 담당이었어요. 쌀 모으기도 하고, 저금통도 모으고 외국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편지 쓰는 활동도 하고 말이죠. 교사 신분이니 어린이 대상 봉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여러 봉사 단체와 교류하게 됐다는 김 씨. 그러다 2000년대 들어서 굿네이버스에 스며들었다. 2015년에는 굿네이버스 해외 봉사 활동에도 참여하면서 활발한 행보를 이어갔다. 여기저기 눈이 닿고 마음 가는 곳에 한 발짝 더 다가가며 봉사의 영역을 키워 갔다. 

“성동구에 있는 한 복지관에서 7, 8년 정도 집사람도 같이 아이들을 지도했어요. 아내는 바이올린을, 저는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한양대병원 어린이 병동에 있는 병원 학교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백혈병 등 힘든 병으로 오래 입원 중인아이들이 학업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겁니다. 일주일에 3~4일 공부하면 수업 인정을 해주거든요. 선생님으로서 할 수 있는 봉사는 제법 했답니다. 한양대병원에도 10년 이상 있었습니다. 퇴직하고 난 다음에 안 하게 됐습니다. 코로나도 있었고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초성게임. 게임의 정답을 맞히는 어린이에게는 작은 선물을 주기도 한다. / 사진=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제공.
아이들과 함께 하는 초성게임. 게임의 정답을 맞히는 어린이에게는 작은 선물을 주기도 한다. / 사진=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제공.

한국어 선생님으로 또 새로운 봉사 

퇴직하고 나니 선생님 신분일 때보다 몸과 마음이 더 자유로워졌다. 봉사하는 삶에 몰입하며 살다 보니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봉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친형 부탁으로 형님이 운영하는 회사의 인도네시아 지사장으로 1년여 근무했습니다. 형님께서 암센터를 설계하는 일을 하시거든요. 그곳에 있으면서 좀 심심하기도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졌습니다. 마침 제가 살던 집 아래층 사는 아이에게 물어보니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더군요. 그래서 한 6개월 가르쳤습니다. 한국어를 좀 구체적으로 가르쳐 볼까 싶었을 때 코로나19가 발생했어요. 한국에 돌아오게 됐죠.”

인도네시아 생활을 정리하고 난 뒤 그는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 자격증이 생기니, 봉사하는 시각과 대상도 넓어졌다.

2015년 굿네이버스 글로벌 시민학교 인도네시아 봉사활동을 다녀온 김두성 씨. / 사진 = 김두성 제공. 
2015년 굿네이버스 글로벌 시민학교 인도네시아 봉사활동을 다녀온 김두성 씨. / 사진 = 김두성 제공. 

“시니어봉사단 자격으로 아이들 수업도 하지만 외국인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현재 제가 소속된 곳만 서너 군데 되는 거 같습니다. ‘BINGO 세계시민 한국어학당’이라는 곳은 제가 교장을 맡고 있어요. 50세 이상인 한국어 교사 40여 명이 모여 있죠. 이주민들을 위해 한국어를 가르치는 분도 있었고 각자 흩어져서 활동하다가 단체 하나 만들어 보자고 제가 주동했어요(웃음). 지금은 이집트와 캄보디아, 요르단, 튀르키에 등에 사는 학생 150여 명이 온라인으로 수업받고 있어요. 대기자가 천 명은 됩니다.”

6개월 과정이 무료이고 한글의 기초부터 최고급 과정까지 고루 배울 수 있으니,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6개월 과정이지만 학생이 수업에 불참하는 등 불성실하면 다른 지원자에게 기회를 준다고 했다.

“이들 중에는 한국 기업에 입사를 원하거나 한국 대학에 입학 혹은 석사 과정을 밟기 위해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준비하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그만큼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한국 대학에 입학할 때 제가 직접 추천서를 써줬습니다. 지난번 캄보디아 여행 갔을 때는 온라인으로만 보던 학생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습니다.” 

김두성 씨가 가르치던 이집트 학생이 KOICA(한국국제협력단)의 지원을 받아 부산외국어대학교 한국어 2주 연수를 온 적도 있다. 학생이 부산으로 가기 전, 집으로 초대해 직접 한국의 가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남산에서 경복궁까지 한국문화를 느끼게도 해주고요, 서울 나들이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는 제가 함께 가는 대신 지하철 타는 법을 알려줬습니다. 직접 우리나라를 다녀보면 좋잖아요? 아이들도 좋아했고, 저 또한 뿌듯했습니다.”

75세까지 해외봉사 열 번 나갈 계획

이외에도 KOICA, 성동50플러스센터 등 봉사를 위해 갈 곳이 매주 넘쳐나니 바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고 김 씨는 말했다. 

“화요일은 성동구에 가서 창의력 수업을 하고, 수요일에는 장애인 복지관, 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시니어봉사단 활동은 목요일입니다.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 저녁은 외국 학생들과 줌 수업을 해야 하니 하루도 못 놀아요(웃음). 그런데 나는 그게 좋아요.”

퇴직하고도 학생들을 위한 파워포인트(PPT) 교재를 만드는 게 피곤할 법도 한데 그저 좋다며 웃어버린다. 

“선생님이라면 학교 생활하면서 PPT는 다루게 됩니다. 사실 좀 잊어버렸다가도 최근에 다시 하니까 할 수 있겠더라고요. 좀 더 멋지게 만들고 싶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요.”

김두성 씨는 아이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수업이 끝나면 교실 밖으로 뛰어 나가기 바쁠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도록 웃으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 사진=구혜정 프리랜서.
김두성 씨는 아이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수업이 끝나면 교실 밖으로 뛰어 나가기 바쁠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도록 웃으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 사진=구혜정 프리랜서.

평생 초등교육을 위해 살았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도 그는 은퇴자로서 사회에 조금은 베풀면서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을지 궁금해 물으니 또다시 봉사 얘기를 꺼낸다.

“75세까지는 직접 현장에서 뛸 겁니다. 그리고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75세까지 해외 봉사 열 번 떠나는 거예요. 지난해 10월에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다녀왔어요. 마침 9월에는 굿네이버스 미래재단에서 캄보디아로 해외 봉사를 갈 계획입니다. 가게 되면 제가 가르치던 학생도 좀 만나고 싶어요.”

수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소통이라고 했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큼 마음을 나누고 서로 훈훈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수업은 없다고 말했다.

“소통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고 봉사입니다. 난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있는 교실에는 이해와 소통이 있었으면 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아이들과 함께하며 교사로 일해왔는데, 퇴직하고도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김두성 씨. / 사진=구혜정 프리랜서.
젊은 시절부터 아이들과 함께하며 교사로 일해왔는데, 퇴직하고도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김두성 씨. / 사진=구혜정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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