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요 둔화에 재고 증가…주요 반도체 가격도 2달 넘게 하락

D램 3강 마이크론, DDR5 양산…고부가 제품 확대로 수익성 개선 효과

중국 YMTC·SMIC, 기술 진전 속도…“수년 내 위협적 존재로 부상할수도”

EUV(극자외선) 공정을 적용한 14나노 DDR5 D램. 사진. 삼성전자.
EUV(극자외선) 공정을 적용한 14나노 DDR5 D램. 사진. 삼성전자.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시장에 메모리반도체 재고가 쌓이고 있다. 업계의 전망은 하나로 귀결된다. 수요 둔화, 그리고 가격 하락이다. 

하반기를 버티려면 새로운 수요처가 절실한 상황. D램 3강 업체가 모두 차세대 제품 양산에 들어감에 따라 수익성 방어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흐른다. 

그러나 중국업체들이 추격의 속도를 올리고 있어, 기회와 위기를 함께 맞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복잡한 분위기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급감하면서 반도체 상위 200개 기업의 재고자산 회전일수는 110일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모리반도체가 팔리기까지 3달 이상 걸린다는 뜻으로, 재고가 쌓이고 있다는 신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재고자산도 증가했다. 2분기 DS부문의 재고자산은 21조5079억90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71% 급증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도 31% 늘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도 6조2266억5100만원에서 11조8787억3800만원으로 91%나 증가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도 무려 33% 많다. 

실제 메모리반도체 가격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7월 PC용 D램(DDR4 8GB) 고정거래가격이 전월 대비 14.03% 하락했고, 메모리카드·USB용 낸드플래시(128GB 16Gx8 MLC) 역시 3.75% 떨어졌다. 이에 주요 메모리반도체 가격 추이를 반영하는 DXI지수는 2달 넘게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업황이 나빠진 만큼, 판매량 대비 수익성이 좋은 고부가 제품의 역할이 중요해진 상황이다. 메모리반도체 업계가 DDR5에 기대를 걸었던 이유다. 

DDR은 더블 데이터 레이트(Double Data Rate)를 줄임말로 JEDEC에서 규정한 D램 표준 규격이다. PC, 서버 등 범용으로 사용되는데, 뒤에 붙는 숫자가 높을수록 성능이 향상됨을 의미한다. 

DDR D램 중에서도 DDR5는 빅데이터, AI, 머신러닝 등에 최적화된 차세대 D램으로 꼽힌다. 이전 세대인 DDR4과 비교하면 속도가 2배 이상 빠르고 전력 효율성도 30% 가량 높다. 전력 소모 역시 기존 제품 대비 약 25% 줄였다. 이같은 장점으로 인해 DDR5은 스마트폰은 물론  PC, 서버, 전기차 등으로 응용처를 넓힐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스마트폰, PC와 달리 서버용 CPU 출시가 지연되면서 DDR5로의 교체가 더뎠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서버용 제품은 PC용보다 가격이 높은 데다, 지속적인 증설이 필요한 까닭에 대규모 판매가 꾸준히 이뤄진다”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서버용 제품군을 늘리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서버용 D램의 판매가 늘어나면 D램 전체 평균판매가격(ASP)이 올라가기에 D램 가격 하락을 방어할 수 있다. 

SK하이닉스가 업계 최초로 샘플 출하한 24Gb DDR5 D램과 96GB, 48GB D램 모듈. 사진.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업계 최초로 샘플 출하한 24Gb DDR5 D램과 96GB, 48GB D램 모듈. 사진. SK하이닉스.

이런 가운데 마이크론이 서버용 DDR5 D램을 본격 판매키로 하면서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마이크론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함께 D대 3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인텔과 AMD의 차세대 DDR5 서버 등에 대한 업계 검증을 위해 커머셜과 산업 채널 고객사에 판매하기로 했다. 신제품은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와 협력해 설계하고 자체 DDR5 생태계 구현 프로그램(TEP)을 통해 응용처별로 초기 검증을 거쳤다. 인텔과 AMD가 서버용 CPU 신제품을 다음달 출시할 예정인 만큼, 마이크론의 합류는 DDR5 시장 확대를 가속화할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DDR5 시장 점유율이 올해 4.7%에서 2025년 40.5%까지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데, 예상보다 빠르게 비중이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DDR5을 양산 중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내심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5개 레이어에 극자외선(EUV) 공정을 적용한 DDR5를 양산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SK하이닉스는 업계 최대 용량의 DDR5 시제품을 출시한 데 이어 CXL, HBM같은 활용 기술을 강화해왔다. DDR5 채용이 늘어날 경우, 기술을 선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호기를 만끽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업체들의 기술 추격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서다. 

애플은 중국 YMTC가 만든 128단 낸드플래시를 보급형 제품에 탑재하기로 했다. YMTC가 128단 낸드 시제품을 공개했을 때만 해도 기술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강했다. 애플이 YMTC를 공급사로 선택했다는 것은 가격경쟁력과 기술력에서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했음을 뜻한다. 

중국의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SMIC 역시 기술 진전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SMIC의 7나노(㎚·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공정을 적용한 반도체를 생산 중이다. 캐나다 반도체 전문 조사기관 테크인사이츠는 SMIC가 7나노 공정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했다. 

YMTC와 SMIC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상징하는 기업들이다. 중국 정부는 이들에 각각 수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해 집중적으로 키웠다. 다만 중국 정부의 지원금을 노린 유령기업들이 적지 않았던 데다, 미국이 안보상의 이유로 EUV와 같은 고성능 반도체 장비의 중국 반입을 막으면서 중국업체들의 기술력은 낮은 평가를 받곤 했다. 이를 비웃듯 SMIC는 2년 만에 7나노 제품을 내놨다. 삼성전자가 3년, TSMC가 5년이 걸린 점을 감안하면 무서운 속도다. YMTC는 지난 5월 192단 낸드 성능 검증을 마쳤고, 연말부터는 232단 낸드도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에 업계는 낸드 기술 격차가 2년 안팎으로 줄어든 것으로 본다. 

YMTC의 128단 낸드플래시. 사진. YMTC.

이로 인해 예사롭지 않은 중국의 기술 진화 속도에 국내 반도체 업계는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미국의 견제 속에서도 이 정도 기술 개발이 이뤄졌다는 게 조금 무섭다“며 “지금은 불안정하더라도 판매처를 늘리면 빠르게 기술 수준이 올라갈텐데,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낸드와 파운드리 시장에서 중국의 존재감이 커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국내 반도체 기업은 낸드 시장의 절반 가량을 쥐고 있다.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YMTC가 가격을 낮춰 자국 기업들을 적극 공략할 경우,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현지 매출이 감소하고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파운드리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삼성전자가 16.3%의 점유율을 기록할 뿐, 나머지 업체들은 선두권에 진입하지 못했다. 이런 때 애국소비를 내세워 중국업체들이 SMIC 주문량을 늘린다면 세계 시장 점유율에서도 변동이 생길 수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과도한 우려는 금물이라면서도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할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데일리임팩트에 “아직까지는 기술 격차가 상당하고, 중국 반도체의 성능이 실제보다 과장된 측면이 있을 수 있다“며 “또 중국 반도체 구매는 현지 시장을 겨냥한 마케팅의 성격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김 연구원은 “물론 중국이 빠르게 추격하고 있고 수년 내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할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순 없다“면서 “결국 한국기업, 나아가 반도체 업계가 지향할 방향은 초격차다. 기업은 첨단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고, 정부는 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