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이달말 미국 방문…4대 그룹 총수 등 '역대급' 전망
공통 관심사인 '경제 안보' 포함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모색
쟁점인 '규제 해소' 낙관 힘든 상황.."기업인이 직접 나설 수도"

조 바이든(왼쪽에서 두번째)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가운데)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초미세 공정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들은 윤 대통령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감탄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조 바이든(왼쪽에서 두번째)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가운데)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초미세 공정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들은 윤 대통령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감탄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이달 말 미국 출장길에 오른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에 동행하기 위해서다. 

민간과 정부의 '2인3각'을 강조해 온 윤석열 대통령인 만큼, 이번 미국 방문에서도 기업인들에게 '윤활유' 역할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기업들이 또 다시 대미 투자와 같은 선물을 안겨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기업들의 '성의' 표시와 별개로 이들의 민원이 얼마나 즉각적으로 해결될 지는 불분명하다. 미국의 각종 규제들로 우리 기업들의 주력 사업도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중국에 대한 견제 수위를 점차 높이고 있다. 우리 기업의 경영 불확실성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하되, 경영상 이해득실을 따져야 하는 기업인들의 방미행은 녹록치 않을 전망이다. 

'역대급' 사절단 끌고 미국행

14일 재계에 따르면, 오는 24일부터 28일까지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찾는다. 한국 정상이 미국 땅을 밟는 건 12년 만이다. 

한미정상회담은 정치적으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양국 간 우호를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지지세력의 결집을 꾀할 수 있어서다. 내년 총선을 앞둔 윤 대통령으로선 사분오열된 여권을 규합하고 이탈된 지지층을 끌어모을 수 있는 기회다. 

게다가 윤 대통령에겐 외교적 성과를 낙관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미국 방문의 주요 의제 중 하나는 경제 안보다. 한미 정상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분야다. 공급망 안정, 첨단 기술 분야에서 상호 이익 증진을 위해 한단계 격상된 경제 협력을 기대할 수 있다. 미국쪽 행사를 기획 중인 미국 상공회의소는 양국 정상회담에 맞춰 인텔, IBM, 퀄컴, GM 등 주요 기업을 초청할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쪽 실무를 맡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다양한 경제 행사를 계획 중이다. 한미 첨단산업 비즈니스 포럼, 첨단산업·에너지 분야 양해각서(MOU) 체결식, 한미 클러스터 라운드 테이블 등 예정된 행사만 4건이다. 별도로 스타트업,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행사도 진행된다. 

지나 러먼드 미국 상무부 장관(왼쪽에서 일곱번째)과 이창양 산업부 장관(왼쪽에서 여덟번째)이 지난해 서울 용산구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참석한 기업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산업부.
지나 러먼드 미국 상무부 장관(왼쪽에서 일곱번째)과 이창양 산업부 장관(왼쪽에서 여덟번째)이 지난해 서울 용산구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참석한 기업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산업부.

이에 경제사절단은 역대 최대 규모로 꾸려질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정상 간 공식 회담과 별도로 경제 분야 협력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돼 왔다"며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첨단산업 분야에서 미국 정부·기업들과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시점임을 감안할 때, 사절단 규모는 이전 정부보다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은 물론 10대 그룹 총수가 동행할 것으로 점쳐진다.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구자열 무역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최진식 중견기업연합회 회장 등 경제 6단체장도 함께 한다. 이 밖에  혁신 스타트업이나 미국 내 네트워크가 탄탄한 중소·중견기업인들도 포함될 것으로 여겨진다. 

전경련은 업무협약 같은 성과를 낼 수 있거나, 반도체·전기차·배터리·바이오·친환경 등 양국이 주목하는 분야에서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위주로 선발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방미사절단의 총 인원은 70명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사절단 규모는 50여명, 역대 가장 많은 기업인들이 대서양을 건너는 셈이다. 

자국 중심주의에 커지는 '미국發 리스크'

이번 경제사절단 모집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을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기업들의 요청으로 신청 기간을 하루 연장했을 정도다. 미국발 리스크에 대한 기업들의 부담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한국과의 경제안보 구축을 강조했다. 한미 관계를 전통적 안보동맹에서 경제·기술동맹으로 확대하면서, 공동의 가치와 번영을 함께하는 전략적 공동체로 거듭 났다. 

양국 정상의 만남에서 미국 정부의 과실이 더 컸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인공지능(AI)·태양광·콘텐츠까지 경제 협력 범위를 넓히고 대규모 대미 투자를 약속받았다. 특히 반도체·배터리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돼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단을 갖게 됐다. 하지만 미국 측의 요구는 더 집요하게 변하고 있다. 

삼성전자 시안 반도체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총 527억달러의 보조금을 주는 대신 매우 자세한 정보를 미 상무부에 넘겨줘야 한다. 수익성 지표, 예상 현금흐름 전망치, 주요 제품 제조원가, 제품별 생산량과 재고, 상위 10대 고객, 생산장비 같은 민감정보가 포함된다. 군사적 목적의 반도체 공급, 반도체 생산시설 공개를 해야 한다. 영업기밀을 요구한 것도 모자라 1억5000만달러 이상 보조금을 받으면, 전망치를 웃도는 이익을 거뒀을 때 보조금의 최대 75%를 반납하라고 요구했다. 

중기 경영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향후 10년 동안 중국 공장의 생산능력을 5% 이상 확장할 수 없다고 못 박아서다. 이전세대에 해당하는 범용 반도체여도 10% 이상 생산량을 늘릴 수 없다. 이를 어기거나 중국 등과 10만달러 이상 중대한 거래를 할 경우, 보조금을 뱉어내야 한다. 보조금 혜택을 받는 기업은 철저하게 미국의 이익에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중국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중국 시안 공장은 전체 낸드 생산량의 40% 가량을 책임진다. SK하이닉스 우시(D램), 다롄(낸드)에서 만드는 메모리반도리 또한 적지 않다. D램은 40% 이상, 낸드 역시 20% 이상이 중국에서 제조된다. 

중국을 국제 사회에서 고립시킬 목적으로 발표한 인플레인션감축법(IRA)도 경영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미 재무부가 발표한 IRA 세액공제 세부 지침을 보면, 북미에서 생산되지 않은 전기차는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아이오닉5, EV6 등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까닭에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나마 미국에서 양산되는 제네시스 GV70도 세액 공제를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GV70에 탑재되는 SK온 배터리 셀이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어서다. 대당 7500달러, 한화로 약 980만원의 세액 공제를 받지 못할 경우 북미 시장에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반(反)기업 정책이 수년 간 지속되면서 민간 활력도가 저하됐다. 재계에서는 차기 정부에서는 기업들에 지운 규제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미국 국빈 방문에 동행하는 기업 총수들이 미국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의 세일즈 외교 원군 역할에 기업의 대변자로서 움직이게 될 경우, 기업인들의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정부는 '우리 기업의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게 노력하겠디'고 연신 강조하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다소 회의적인 기류가 감지된다. 정부는 반도체지원법, IRA 등 우리 기업의 경영에 악영향을 미칠 규제가 나올 때마다 미국 정부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관계부처 장관까지 나서 미국 당국자와 지속적으로 협상했지만, 위험요인 제거에 실패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방미에서 정부의 몫까지 기업 총수들이 대신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 정부가 우리 기업을 우군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기에, 이를 이용해 미국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총수 개인의 정재계 인맥과 미국 측 대관 인력을 동원해 최대한 기업들의 입장을 설명하고, 관련 규제에 우리 기업의 입장이 반영되게끔 설득에 나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대미 투자 속도가 빨라질 순 있다. 미국 정부가 안심할 수 있게 추가 투자를 약속하거나, 이미 발표했던 투자안을 구체화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정부를 대신해 기업인들이 이처럼 나서는 상황에 대해 재계에서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개별 기업의 이익 대변자로 움직여야 할 시기에 '가시적 성과'를 원하는 정부의 요청대로 세일즈 외교의 원군으로도 뛰게 생겼기 때문이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한국 기업의 이익이 궁극적으로는 미국 정부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우리 정부가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껏 기업들은은 대규모 고용, 투자를 약속하는 등 정부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지만,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던 약속을 지켰는지 의문이다. 미국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도록 이번 방문에서 기업의 입장을 확실하게 전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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