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LX·SK네트웍스·한화·현대重·CJ제일제당·LS전선, 전진 배치

총수의 강력한 지지 속 신사업 주도…중장기 성장동력 발굴 매진

“불공정 행위에 민감한 젋은 투자자들, 승계 과정서 명분 입증해야”

기업들이 불확실성의 시대, 산업계 재편에 따라 후계 승계의 속도를 올리고 있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기업들이 불확실성의 시대, 산업계 재편에 따라 후계 승계의 속도를 올리고 있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지난해 연말부터 주요 기업 오너가(家) 3·4세들이 경영 보폭을 넓히며 존재감이 키우고 있다. 기업의 성장엔진이 될 핵심사업과 미래 유망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차기 오너 경영인으로서 면모를 갖춰 나가고 있다. 3·4세 후진들이 걸음이 빨라지면서 재계의 분위기도 한층 역동적으로 변할 전망이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씨가 롯데케미칼의 일본 지사에 합류, 미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신씨는 일본 롯데와 롯데홀딩스 업무도 겸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0년 일본 롯데와 일본 롯데홀딩스에 부장으로 입사한 신씨가 롯데케미컬 임원으로 합류하면서 재계에서는 경영 수업에 들어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금까지 신씨의 행보가 부친인 신동빈 회장과 중첩되기 때문이다.

신동빈 회장은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았다. 노무라증권 런던지점과 일본 롯데상사를 거쳐 35살 때인 1990년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하며 한국 롯데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신씨 역시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후 컬럼비아대 MBA를 받고 노무라증권 싱가포르 지점, 일본 롯데에서 근무하다가 롯데케미칼에 합류했다. 

일각에서는 한국과 일본 롯데 계열사 지분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성급한 추측’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디. 그러나 1986년생으로 알려진 신씨의 나이를 생각하면 과한 해석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분석이다. 신 회장도 35살부터 오너 경영인으로서 입지를 다져갔다. 특히 최근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지분을 확보하는 이상으로 명분이 중요해진 점을 고려하면, 신씨가 스스로의 역량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자면 신 회장이 ‘지원자’로서 힘을 실어줄 수 있을 때 신씨가 핵심사업에서 과감히 도전해 성과를 올리는 편이 낫다. 그룹의 미래 먹거리인 수소, 바이오와 연관성이 높은 롯데케미칼 입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다. 

재계에서는 신씨가 그룹의 핵심인 유통사업 전면에 등장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롯데가 경쟁사와 역행하는 전략으로 ‘버티고’ 있어서다. 

신 회장은 지난해 경쟁사 출신까지 끌어들이며 온라인 역량 강화에 힘을 쏟았다. 사업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기존 비즈니스유닛(BU) 체제를 헤드쿼터(HQ) 체제로 전환하고 식품·쇼핑·호텔·화학·건설·렌탈 등 6개 사업군으로 계열사를 유형화해 계열사 수장들에게 중장기 사업 전략부터 인사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권한을 주는 대신 사업 실행력을 높일 것을 요구했다.

다만 강도 높은 쇄신 의지와 달리 쇼핑은 역행했다. ‘백 투 더 오프라인’으로 방향을 틀면서 온라인 쇼핑의 존재감이 더 줄었다. 실제 올 1분기 실적을 견인한 것은 백화점과 마트였다. 온라인 쇼핑 매출은 전년 대비 4.1% 감소한 260억원에 그쳤고, 적자 규모도 230억원에서 450억원으로 커졌다. 백화점·마트·롭스 등 온라인 사업 주체를 이커머스 사업부로 통합 이관한 결과라 해도 경쟁사들과 다른 흐름이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오프라인 쇼핑은 리오프닝 수혜로 경쟁사들도 살아나고 있다”며 “성장분야인 이커머스 분야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해 위치가 애매해졌다”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극내 온라인 쇼핑 시장 규모는 209조원으로 전년 대비 19.8% 성장했다. 이 기간 롯데의 온라인 쇼핑 사업은 매출은 1379억원에서 1082억원으로 21.5% 감소했고, 영업적자는 948억원에서 1558억원으로 늘었다. 성장성의 표지인 거래액 또한 7조5575억원에서 8조4508억원으로 11.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시장의 성장률에 미치지 못한 셈이다. 신 회장이 주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와의 거리감을 줄이고 분위기를 일신하는 차원에서 신씨의 등판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 내에서 존재감을 높이는 주요 기업 3·4세는 신씨만이 아니다. 신씨와 동갑내기인 구형모 전무 역시 경영 반경을 넓히는 중이다. 구 전무는 구본준 LX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지난해 5월 초 LG전자에서 LX홀딩스로 자리를 옮겼다. 신성장 동력 발굴과 전략적 인수합병(M&A)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던 구 전무가 지난 3월 11개월 만에 깜짝 승진을 하자, 재계는 후계자로서 영향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최성환 SK네트웍스 사업총괄 또한 지배력을 확대 중인 후계자다. 최신원 전 회장의 장남인 최 총괄은 올해 이사회에 합류했다. SK 그룹 오너 3세 중에서도 일찍 경영에 참여해 경험을 쌓은 데다, 최 전 회장의 나이까지 고려하면 승계 속도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보유 지분이 2%가 채 되지 않아 지배력에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SK네트웍스는 올해 사업형 투자회사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며 최 총괄에게 힘을 실어줄 분위기다. 최 총괄은 사업조직 관리와 신성장추진본부의 투자 관리·인수합병(M&A)을 관장하고 있는데, 보다 공격적인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최근 재계 주요 기업 오너가(家) 3·4세들이 존재감을 높이며 경영권 승계 속도를 올리고 있다. (왼쪽부터) 최성환 SK네트웍스 사업총괄,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 정기선 현대중공업그룹 사장,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 구본규 LS전선 대표. 사진. 각 사. 

오너 2세들의 나이나 산업계 변화 속도를 고려하면 후계 승계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상당수의 후계자들이 이르면 20대 중반에 입사해 수년 안에 임원을 달고 핵심 사업의 키를 잡는다. 더욱이 선대 오너 경영인들이 지녔던 ‘관록’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경영계 인사는 데일리임팩트에 “분야를 막론하고 첨단 기술을 도입하지 않으면 변화에 조응할 수 없게 됐다”며 “기술 이해도가 높은 경영인이 필요하고, 첨단 기술에 관심이 많은 3·4세들이 역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후계자의 존재감이 커지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양날의 검이다. 안정적 경영 체계가 구축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반면, 관리해야 할 위험요소가 늘어난다. 대물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최소화해야 하고, 후계 명분을 만들기 위한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후계자 자질을 증명하기 위해 과감한 도전을 하는 동시에 본업도 챙겨야 한다. 강력한 지지 없이 원만하게 진행되기 어려운 것이다. 때문에 총수나 최고경영인이 ‘조력자’를 자청하며 후계자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은 부친인 김승연 회장의 지지 아래 ‘선구안’을 입증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한화그룹의 실질적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화의 사내이사로 합류한 김 사장은 태양광, 수소, 우주항공, 헬스케어, 블록체인까지 관심을 드러내면서 새 동력을 만들고 있다. 우주항공은 김 사장이 가장 공들이는 분야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한화디펜스, 한화시스템, 쎄트렉아이까지 발사체부터 엔진까지 아우르는 수직계열화를 구축했다. 그룹 내 우주사업 사령탑인 스페이스 허브를 이끌며 카이스트와 우주연구센터 설립하고 한화시스템의 우주인터넷 기업 원웹 투자 및 이사회 참여권 확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누리호 75톤급 엔진 제작 등을 주도했다. 우주항공은 공공 프로젝트가 많고, 스페이스X를 비롯해 선두기업이 입지를 굳히는 중이라 실적보다는 투자에 무게를 실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김승연 회장이 현금 창출력이 높은 핵심 계열사를 관리하며 김 사장이 신사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정기선 현대중공업그룹 사장도 조력자에 합을 맞추고 있다.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 사장은 올해 승진 4개월 만에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 지주사인 HD현대 사내이사와 대표를 모두 맡았다. 경영권 승계의 시동을 건 것이다. 수소, 디지털 헬스케어, 자율운항 선박, 로봇 등을 성장 동력으로 삼고자 미국 MBA 출신 전문가들이 포진한 신사업추진실을 통해 인수합병 후보군을 검토하고 있으며, 사내벤처 아비커스를 통해 자율운항 솔루션 고도화를 추진 중이다. 미래에셋캐피탈과 함께 340억원 규모의 신성장펀즈를 조성해 헬스케어 헬스케어·바이오 유망 스타트업 투자도 늘리고 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HD현대), 가삼현 부회장(한국조선해양)이 투톱으로 나서 정 사장이 단기 성과에 얽매이지 않고 장기 동력을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강조되고 있어, 승계의 명분을 만드는 건 매우 중요하다. 과거처럼 ‘책임 경영’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시장을 설득시키기 어렵다. 신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결국 성적으로 승계 정당성을 보여줘야 한다. 이에 견조한 실적을 올리는 데 기여한 후계자들은 재계 안팎의 이목을 끈다. 

이선호 경영리더는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 산하 식품전략기획1담당을 맡아 해외시장 확장을 추진 중이다. 그는 비비고와 미국프로농구팀 LA레이커스 파트너십 체결을 주도하고, 만두·김치·치킨·김·소스·가공밥·멀티그레인 등 7대 글로벌 전략제품(GSP)  대형화 전략을 짰다. CJ제일제당은 GSP 매출이 급격히 뛰면서 올 1분기 전체 식품 매출 중 해외(1조1765억원) 비중이 45%를 넘어섰다. 이 경영리더가 임원으로 승진할 당시 우려도 줄어든 모습이다. 

구자엽 LS전선 회장의 장남인 구본규 LS전선 대표 또한 경영 능력을 보여주며 차기 총수 후보군으로 부상 중이다. 그는 지난해 LS엠트론에서 그룹 내 최대 계열사인 LS전선 CEO 겸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농·임업용 기계 제조업체 LS엠트론은 2018년 17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던 회사였지만 구 대표가 경영을 맡은 지 4년만에 500억원에 가까운 흑자를 내는 기업으로 환골탈태했다. 특히 3세 가운데 지난해 정기 인사에서 자리를 옮긴 인물은 구 대표가 유일하다. 구 대표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반전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기업들의 승계 속도는 더욱 빨라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실력’을 부각시키는 분위기는 강해질 것으로 여겨진다. 소액주주나 해외 행동주의 펀드 등이 최근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어, 후계자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지 못하면 시비에 휘말리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하다간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후계 승계에 돌입한 초기에는 신사업 투자 등을 이유로 성과를 내기 어렵더라도 중기적으로는 CJ제일제당이나 LS엠트론처럼 성장세와 실적을 동시에 보여줘야 원만한 승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젊은 투자자들은 오너가의 불공정 행위에 민감하다. 자신이 투자한 기업의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며 “최대 주주이고 민간 기업이라 해도 경영권 승계의 이유를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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