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제공 : 롯데지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제공. 롯데지주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지난 10월 중순 귀국 이후 두문불출하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이틀에 걸쳐 울산 석유화학공업단지 내 화학 계열사 3곳의 생산설비를 둘러보는 등 현장 경영에 나섰다.  지난달 중순 일본에서 귀국한 이후 첫 공식적인 대외 행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식음료, 호텔, 면세 등 롯데그룹의 주요 사업이 큰 손실을 보고 있는 가운데 신동빈 회장이 그룹의 신성장동력을 친환경 고부가가치 소재로 점찍은 것으로 관측된다.

신동빈 회장은 19일 석유화학공업단지 내 롯데케미칼 및 롯데BP화학 생산설비 등을 둘러보고, 롯데백화점 울산점을 직접 방문해 현장 점검과 직원 격려에 나섰다.

18일에는 같은 산단 내 롯데정밀화학 공장을 방문해 생산설비를 직접 둘러봤다. 이 자리에는 김교현 롯데그룹 화학BU장, 정경문 롯데정밀화학 대표 등이 동행했으며 현장 경영 일정은 이날로 마무리된다.

롯데는 2016년 삼성그룹의 화학부문을 3조원에 인수하면서, 국내 화학업계의 빅딜이자 그룹 창립 이래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 계약을 성사시킨바 있다. 삼성SDI의 케미칼 사업부문,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 등 3개 회사를 롯데 계열사로 끌어안으면서 롯데는 종합화학사로 거듭나게 됐다.

신동빈 회장은 롯데정밀화학의 생산현장을 제일 먼저 방문했다. 롯데정밀화학 울산공장은 전체 부지 약 126만㎡ 규모로, 총 10개 공장에서 에폭시수지원료(ECH), 메셀로스 등 37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롯데정밀화학 제품의 전체 생산량 중 90% 이상이 울산공장에서 생산된다.

신동빈 회장은 이번 방문에서 “코로나19 및 기후변화 등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쟁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며 친환경적인 고부가 스페셜티 소재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선제적인 안전관리를 주문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18일 오후 롯데정밀화학 울산공장을 방문해 메셀로스 제품이 사용된 배기가스 정화용 자동차 세라믹 필터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롯데지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18일 오후 롯데정밀화학 울산공장을 방문해 메셀로스 제품이 사용된 배기가스 정화용 자동차 세라믹 필터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롯데지주

신동빈의 현장경영...그룹 위기감, 화학사업으로 진화작업 나서나

올해 롯데가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어 신동빈 회장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 모양새다. 롯데는 중국의 사드 경제보복으로 현지 사업을 철수하고, 일본의 불매운동까지 덮친 상황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공습까지 삼중고에 처한 상황이다.

이에 신동빈 회장은 최근 외부 전문가들을 만나 롯데가 처한 위기의 근본적인 배경과 타개책에 대한 의견을 경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 차원에서 컨설팅업체에 정식으로 자문을 의뢰하는 경우는 있어도 총수가 직접 외부 목소리를 듣겠다고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신 회장의 고민이 단순히 계열사의 ‘실적 개선’이 아니라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에 대한 근본적이고 보다 총체적인 큰 그림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낳고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롯데가 오프라인 중심의 내수 소매 유통업 부문의 한계를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직시하게 됐다고 진단하고 있다.

롯데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크게 △식품(제과·칠성음료) △유통(백화점·마트) △화학·건설(케미칼·정밀화학) △관광·서비스(호텔·면세점)로 나뉘는 가운데 유통 사업 매출이 전체 그룹 매출에서 36.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롯데는 주력 사업인 유통업계 변화에 상대적으로 느리게 적응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유통업계가 온라인 위주로 재편되는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얘기다.

롯데그룹 7개 유통 계열사들이 지난 4월 온라인 쇼핑 플랫폼 ‘롯데ON(온)’을 출시했으나 9월 기준 월 사용자는 100만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신세계의 SSG(쓱)닷컴은 월 사용자 138만명, 쿠팡은 1991만명을 기록하는 것과는 대조된다. 

하지만 롯데그룹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전반적인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까지 진행되지는 않는 것으로 안다”면서 경쟁력 강화가 필요한 사업 부문 등은 아마도 이달 내 나올 인사 결과로 가늠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즉 신 회장은 주력 사업을 유지하되 유통 다음으로 매출 비중이 큰 화학·건설(34.4%) 부문의 혁신을 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롯데는 최근 롯데정밀화학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 소재인 전지박(동박) 제조사인 두산솔루스에 2900억원을 간접투자하는 등 영역 확장에 나선 바 있다. 롯데알미늄도 배터리에 들어가는 양극박 공장 증설 투자에 뛰어든 상태다.

신 회장이 화학 사업에서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ESG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코로나19의 배후 원인으로 기후변화가 지목된 만큼 ‘친환경’ 전략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필수 요소로 대두되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미디어SR에 “롯데정밀화학에서 개발하는 친환경 소재에 성장 동력이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이에 따라 해당 사업의 경쟁력 확보를 주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8일 오후 롯데정밀화학 울산공장을 찾은 신동빈 회장이 신규 증설한 메셀로스 공장 라인의 제품분쇄기 배출배관 경로를 살펴보며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 롯데지주
지난 18일 오후 롯데정밀화학 울산공장을 찾은 신동빈 회장이 신규 증설한 메셀로스 공장 라인의 제품분쇄기 배출배관 경로를 살펴보며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 롯데지주

이날 신 회장이 강조한 대로 최근 롯데정밀화학은 그린소재인 셀룰로스 계열 제품에 총1,8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 중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1150억원 규모의 건축용 첨가제 메셀로스 공장 증설, 239억원 규모의 식의약용 제품 ‘애니코트’ 공장(인천) 증설이 완료된다. 2022년 상반기에는 370억원 규모의 식의약용 제품 추가 증설도 완료할 계획이라고 롯데 측은 밝혔다.

롯데정밀화학은 친환경 촉매제인 요소수 브랜드 ‘유록스’의 개발 및 판매도 강화하고 있다. 요소수는 디젤차의 SCR(선택적 촉매 환원, Selective Catalytic Reduction) 시스템에 쓰이는 촉매제로 배기가스의 미세먼지 원인 물질 중 하나인 질소산화물(NOx)을 제거해 대기환경 개선에 큰 도움을 준다.

유록스는 요소수 시장점유율 약 50%를 유지하는 등, 12년 연속 국내 판매 1위(환경부 집계 자료 기준)를 이어오고 있다.

한편 롯데케미칼, 롯데BP화학도 생산설비 증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화학 3사간 시너지가 기대된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말 울산공장 PIA(Purified Isophthalic Acid, 고순도이소프탈산) 설비 증설에 500억원을 투자하며 고부가 제품 일류화를 추진하고 있다. PIA 는 PET, 도료, 불포화 수지 등의 원료로 사용되는 고부가 제품이다.

롯데케미칼의 PIA연간 생산량은 52만톤으로 글로벌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PIA의 주원료로 사용되는 메타자일렌(MeX) 공장에도 1,250억원을 투자해 20만톤을 증설, 안정적인 원료 수급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롯데BP화학 또한 1,800억원을 투자해 초산과 초산비닐 생산공장을 증설했다. 내년 초부터 본격적인 생산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기업분석 전문가인 오일선 CXO연구소장은 미디어SR에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상황에서 기업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현재 경쟁력을 가진 부문에 집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오 소장은 이어 “롯데그룹의 경우 온라인 위주로 재편되는 시장 흐름에 대처가 늦은 점이 아쉽다"면서 "하지만 내부로부터 시작되는 혁신을 시급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오 소장은 “이번 임원 인사에서 젊은 인재, 여성 인재의 활용 정도로 내부 혁신의 강도를 가늠해볼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롯데, 이달 내 임원 인사 단행할 것으로 예상

그룹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롯데는 적어도 이달 내로 사업 부문(BU, Business Unit)별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해 정기 인사가 12월 중에 단행됐던 것과 비교하면 한 달여 가까이 앞당겨지는 셈이다. 이를 위해 이미 그룹 전 계열사 임원 600여명에 대한 최근 3년치 인사평가를 한달 가량 앞당겨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은 지난 8월 창사이래 처음으로 연말 정기인사 시기가 아닌데도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을 비롯해, 롯데물산, 롯데렌탈 등 일부 계열사 대표를 교체한 바 있다.

강희태 유통BU장(부회장), 이영호 식품BU장(사장), 김교현 화학BU장(사장) 등이 모두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둔 가운데, 신동빈 회장의 ‘혁신’ 의지가 임원 인사에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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