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제공 : 롯데지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제공. 롯데지주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롯데그룹이 이례적으로 연중 계열사 임원 인사를 단행하면서 신동빈 롯데 회장의 오른팔이자 2인자였던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코로나 사태 이후 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이 바닥을 치면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그룹 전반의 쇄신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롯데가 계열사 임원 인사를 연말이 아닌 지난 13일 오후 갑작스레 단행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롯데그룹은 매년 연말에 인사를 발표해왔으나 올해는 이례적으로 연중 임원 인사를 발표함으로써 지금이 비상시국임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줬다. 최근 코로나19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등 대내외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자 유통업을 주축으로 하는 롯데의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특단의 대책을 강구중인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롯데지주는 13일 오후 이사회를 열어 황 부회장의 대표이사 해임 안건을 의결했다. 황 부회장이 맡았던 롯데지주 대표이사 자리는 이동우 전 롯데하이마트 대표이사 사장이 맡았다.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좌), 이동우 신임(내정) 롯데지주 대표이사 사장. 사진. 롯데지주 제공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좌), 이동우 신임(내정) 롯데지주 대표이사 사장. 사진. 롯데지주 제공

롯데는 “위기 상황에서 그룹의 생존과 미래 성장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혁신과 변화가 시급하다고 판단했다”면서 “미래 대비를 위해 새로운 인물을 발탁하고 그룹의 미래성장동력 발굴에 집중하기 위한 임원인사 및 롯데지주 조직개편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그간 롯데그룹의 성장을 이끌어온 롯데지주 대표이사 황각규 부회장은 그룹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판단 아래 용퇴를 결정했다. 황 부회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비즈니스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젋고 새로운 리더와 함께 그룹의 총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면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황 부회장은 롯데지주 이사회 의장으로 남는다.

황 부회장은 롯데에서만 40년을 일해 그룹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 불렸다.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부장 재직 시절 신동빈 회장과 함께 일하면서 큰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이 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으로 옮길 때 황 부회장에게 ‘글로벌 롯데’를 만들자며 국제부를 신설해 그를 영입한 것도 잘 알려져 있는 일화다.

그는 특히 롯데그룹의 굵직한 인수합병을 총괄하며 롯데그룹이 몸집을 키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7년 대한화재(현 롯데손해보험) M&A가 대표적이다.

황 부회장은 신 회장이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됐을 당시의 공백을 훌륭하게 메우는 한편 그룹의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시키는 데도 한 몫했다.

이날 인사로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 아래 '황각규-송용덕'이 이끄는 3각체제에서 '신동빈-송용덕-이동우'로 이어지는 수직 체계로 전환하게 됐다. 송용덕 부회장은 지난해 정기 인사로 롯데지주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롯데그룹은 이에 대해 경영 전략 등 대외 활동은 황 부회장이, 인사 등 내부 살림은 송 부회장이 맡는 투톱 체제로 운영한다고 밝혔으나 재계에서는 송 부회장의 선임이 황 부회장에게 쏠린 무게중심의 균형을 잡으려는 신 회장의 의도가 깔려있다고 해석했다.

롯데지주 신임 대표이사로는 롯데하이마트 대표이사 이동우 사장이 내정됐다. 이동우 사장은 롯데백화점에 입사해 2007년 롯데백화점 잠실점장, 경영지원부문장 등을 두루 거쳤으며 2012년 롯데월드 대표로 자리를 옮긴지 2년 만에 롯데그룹이 하이마트를 인수하면서 2015년 하이마트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그는 롯데하이마트 대표이사를 맡은 후 하이마트의 성장세를 이끌어 ‘파워 유통전문가’로 불리기도 한다. 롯데 그룹은 계열사 간 시너지를 창출하는 데 성공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이끌어 낸 그의 능력을 중심으로 그룹 내 혁신과 위기 극복을 이끌어 내겠다는 전략이다.

이동우 신임 대표이사의 자리는 황영근 롯데하이마트 영업본부장이 차지하게 됐다.

언택트 공습...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필요하다 판단한 듯

황 부회장의 퇴진과 함께 롯데지주의 내부 조직개편도 이뤄졌다. 롯데지주의 경영전략실은 ‘경영혁신실’로 개편됐으며 그룹의 미래 먹거리가 될 신사업 발굴과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 전략 등을 모색하는 데 집중해 나가겠다고 롯데 측은 밝혔다.

롯데그룹은 최근 몇년 동안 사드 사태와 한·일 관계 악화로 국내외에서 입지가 좁아졌다. 올해 들어선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반기 누적 적자만 1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최근 롯데그룹은 주력인 유통과 화학 부문의 고전을 타개하기 위해 이커머스에 대한 투자를 강화한다고 밝힌 상태다. 롯데쇼핑 7개사의 통합쇼핑몰 '롯데온' 구축에 3조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고, 재택근무 확대 등 근무 환경 쇄신 작업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 롯데 계열사 앱에서 다른 계열사로 이동하는 ‘송객율’은 ‘롯데온’ 출범 이후 2%에서 37%까지 늘었지만 롯데쇼핑의 2분기 실적은 흑자를 겨우 유지하는 수준으로 집계되면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이는 롯데그룹 내부에서 인적 쇄신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된 계기가 됐다. 앞서 신 회장은 지난달 14일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업무상의 낭비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최고경영자(CEO)가 해야 하는 첫 번째 일"이라며 경영 혁신과 비용 절감을 강조했다.

롯데의 미래 전략을 책임지고 설계할 경영혁신실장으로는 롯데렌탈 대표이사 이훈기 전무가 임명됐다. 이훈기 신임 경영혁신실장은 전략과 기획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물로, 롯데케미칼 타이탄 대표이사와 롯데렌탈 경영기획본부장을 거쳐 2019년부터 롯데렌탈 대표이사로 보임한 바 있다.

현 경영전략실장인 윤종민 사장은 롯데인재개발원장으로 이동하고 현 롯데인재개발원 전영민 원장은 롯데액셀러레이터 대표이사를 맡는다.

롯데물산 대표이사 김현수 사장은 롯데렌탈 대표이사로 이동했으며 롯데물산 대표이사로는 롯데지주 류제돈 비서팀장이 내정됐다. 롯데는 지속적으로 전문성 있는 새로운 리더들을 발굴해 미래 성장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이같은 롯데그룹의 이례적인 임원 인사를 두고 재계 관계자는 미디어SR에 “경영 일선에서 언택트 환경으로의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이에 대처하기 위해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향후 롯데 그룹 내에서 세대 교체가 급속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으며, 경영자는 결국 ‘실적’으로 평가받게 되는 만큼 황 부회장의 용퇴도 사실상 그룹의 실적이 영향을 미쳤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평가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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