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들이 녹색산업 투자를 늘리는 게 본질 아니야
금융의 근본 시스템을 지속가능금융 체계로 만들어야
'눈가리고 아웅식' 그린 워싱 금융은 더이상 용납 안돼

사진.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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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SR 김사민 기자] 정부가 '한국형 뉴딜'의 일환인 그린 뉴딜에 전폭적인 투자를 약속하면서 금융당국은 11년 만에 다시 녹색금융 카드를 꺼내 들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13일 녹색금융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녹색금융 추진TF' 첫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금융위는 정부의 그린뉴딜 사업 추진에 따라 녹색산업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녹색금융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금융당국은 국제 논의동향에 동참하기 위해 주요국 금융당국으로 결성된 녹색금융협의체(NGFS), 기후변화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CFD) 가입도 추진하기로 했다.

소비자에게 다소 생소한 개념인 '녹색금융'은 환경, 에너지 등과 관련된 금융활동을 통합적으로 일컫는 말로 환경개선, 금융산업 발전, 경제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금융 형태를 말한다.

정부가 녹색금융 정책을 내민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11년 전인 2009년에 이명박 정부는 신성장 동력 중 하나로 녹색금융을 선정하고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지원을 펼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정부가 설립한 '녹색금융협의회'는 지난 2012년 4월 7차 회의를 마지막으로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녹색금융협의회는 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손해보험협회, 생명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등 금융 유관기관, 관계부처 50여명으로 구성돼 2009년 출범한 협의 채널이다. 

당시 녹색금융 정책이 꾸준히 활성화되지 못하고 지지부진했던 것은 금융사에서 '그린워싱' 현상이 나타나고, 녹색금융 상품은 많이 출시됐으나 뚜렷한 투자기준이 없는 등 명확한 체계가 정립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린워싱(Green Washing) 현상이란 'Green(그린)'과 White washing(화이트 워싱-더러운 곳을 가리는 행위)'의 합성어로, 기업들이 실질적인 친환경 경영과는 거리가 멀지만 녹색경영을 표방하는 것처럼 홍보해 투자를 받는 행태를 말한다.

또한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며 녹색금융이 받았던 추진력이 약해지면서 관련 정책은 흐지부지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다시 꺼내든 녹색금융이 금융회사의 친환경 관련 투자에 대한 부담만 가중하고 충분한 실효성을 거두지 못할 것에 대한 회의가 제기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녹색금융은 단순히 녹색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금융 시스템의  '녹색화'에 역점을 두었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미디어SR에 "이명박 정권의 녹색금융은 관련 상품을 만들어 기업을 단순히 지원하는 개념이었다면, 이번 정책은 금융 감독 시스템에 녹색금융을 내재화하겠다는 것"이라면서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이 직접 NGFS와 TCFD에 가입한다는 것은 금융 시스템 자체를 녹색화해 금융회사를 감독하고 관련 정책을 마련할 때 환경 관련 리스크를 감독체계에 포함한다는 의미다. 금융당국은 물론 전체 금융권이 녹색금융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이 감독 체계에 기후변화 요소를 고려하게 되면 석탄화력발전소나 고탄소 기업 투자 비중이 높은 금융사는 자산 가치 하락으로 자산건전성이 떨어질 수 있다. 녹색금융의 추진이 금융기관의 녹색화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은 우선 기업의 환경 관련 정보 공시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투자 결정에 환경 리스크가 고려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계획이다. 투자에 기업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하는 'ESG 투자'는 전 세계적으로 지속해서 확대되는 추세다. 

글로벌 ESG 투자의 85% 이상을 유럽과 미국이 차지하고 있으며, 국내는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ESG 정보를 활용한 책임 투자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으나 아직 초기 단계다. 국내에 설정된 ESG 펀드 순자산 규모는 약 39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이종오 국장은 "녹색금융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므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화 시기를 앞당기거나 늦추는 문제"라면서 "금융기관들은 녹색산업 투자를 늘리는 게 본질이 아니라 근본 시스템을 지속가능금융 체계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미 집중호우, 폭염 등의 환경 문제가 금융 리스크를 초래하고 있는 상황에서 2008년과 같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금융권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 전 세계가 뜻을 모으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지속가능금융 체계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영업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은 "기후변화 리스크를 식별하고 관리·감독하는 등 금융시스템 안정성 유지를 위해 기후변화에 충실히 대응해 나가겠다"면서 "그린워싱 등 과거에 녹색금융 관련해 드러난 문제점이 보완될 수 있도록 녹색산업의 투자범위 등을 관계기관과 협의해 명확히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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