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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환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기업가치(firm value)는 보통 기업이 발행한 총 주식 수량에 주가를 곱한 시가총액(market capitalization)에 의해 측정된다. 따라서 기업가치는 매일매일 주식시장에서 결정되므로 단기적으로 변동이 심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극단적인 행태를 보일 수도 있다. 예컨대 잘 나가던 기업이 경영을 잘못해 연속 적자에 시달리다가 시장에서 퇴출되면 기업가치는 제로로 수렴하게 될 것이다. 반면 무명의 스타트업 기업이 획기적인 기술을 발판으로 단 기간에 엄청난 가치를 가진 기업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사실 우리는 이 두 가지 극단적인 상황을 종종 경험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2000년부터 2019년에 이르는 20년간 기업가치의 변동 추세를 통해 시장에서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이를 통해 앞으로 일어날 변화를 예측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파이낸셜 타임스> 자료에 의하면 시가총액 기준 2000년 세계 10대 기업은 다음과 같다.

 

순위

기업명(국가)

업종

시가총액(백만 달러)

1

제너널 일렉트릭(미국)

복합(기계, 전자, 금융 등)

477,406

2

시스코 시스템즈(미국)

네트워크용 하드웨어

304,699

3

엑슨모빌(미국)

석유·가스

286,367

4

파이자(미국)

제약

263,996

5

마이크로소프트(미국)

소프트웨어

258,436

6

월마트(미국)

소매업

250,955

7

시티그룹(미국)

금융

250,143

8

보다폰(영국)

이동통신

227,175

9

인텔(미국)

컴퓨터 하드웨어

227,048

10

로열더치셸(네덜란드)

석유·가스

206,340

<표 1: 2000년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이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 10대 기업에는 각 분야의 전통적인 강자들이 포진되어 있다. 지금부터 20년 전만 해도 19세기말 발명왕 에디슨이 세운 <에디슨 전기회사>를 모체로 하는 미국의 제너널 일렉트릭(GE)은 전설적인 경영자 잭 웰치(Jack Welch)의 리더십 하에서 기업가치와 실적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이었다. 그런데 현재 GE는 더 이상 10대 기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 2018년 6월 30개 종목으로 구성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다우지수)’에서도 제외되었다. 이것은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GE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896년 다우지수에 편입된 이후 100년 넘게 지위를 유지했던 유일한 기업인 GE의 영광은 이제 과거지사가 되어버렸다.

또한 2000년은 우리에게 친숙한 구글이나 아마존, 그리고 페이스북 같은 정보기술기업들이 부상하기 이전이기에 이 표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 때만해도 운영체계를 장악한 마이크로소프트, 중앙처리장치를 독점하던 인텔, 그리고 네크워크 장비를 공급하는 시스코 시스템즈와 같은 기업들이 안정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을 무렵이다. 그 밖에 제약회사나 정유회사 같은 전통기업들이 공존하고 있던 시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10년을 건너뛰어 2010년 시가총액 기준 세계 10대 기업을 살펴보자. 10년 전과 비교해 상당한 변화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표 2: 2010년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순위

기업명(국가)

업종

시가총액(백만 달러)

1

엑슨모빌(미국)

석유·가스

368,711

2

페트로차이나(중국)

석유·가스

303,273

3

애플(미국)

휴대폰 제조

295,886

4

BHP(영국·호주)

광산업

243,540

5

마이크로소프트(미국)

소프트웨어

238,784

6

중국 공상은행(중국)

은행업

233,369

7

페트로브라스(브라질)

석유·가스

229,066

8

중국 건설은행(중국)

은행업

222,245

9

로열더치셸(네덜란드)

석유·가스

208,593

10

네슬레(스위스)

식품업

203,534

이 기간 중인 2008년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으며, 그 영향은 기업가치에 반영되었다. 2000년과 비교해 눈에 띠는 것은 10대 기업에 3개가 포함될 정도로 중국 기업이 약진했다는 점이다. 금융위기로 구제금융을 받은 미국 은행들은 기업가치가 급격히 하락한 반면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은 중국 은행들의 가치는 크게 상승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석유회사들의 기업가치는 오히려 상승하는 기조를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대 기업에 4개나 포함되었다. 그리고 인텔이 제외되고 애플이 추가된 정도 외에는 정보기술기업 가운데 별 다른 변동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은 정보기술기업들의 위상이 그다지 크게 향상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불과 10년 전의 상황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2년 후인 2012년 10대 기업의 시가총액은 다음과 같다. 불과 2년 만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순위

기업명(국가)

업종

시가총액(백만 달러)

1

애플(미국)

휴대폰

500,610

2

엑슨모빌(미국)

석유·가스

394,610

3

페트로차이나(중국)

석유·가스

264,833

4

BHP(영국·호주)

광산업

247,409

5

공상은행(중국)

은행

236,457

6

차이나모바일(중국)

이동통신

234,040

7

월마트(미국)

소매업

228,245

8

삼성전자(한국)

반도체·휴대폰

227,581

9

마이크로소프트(미국)

소프트웨어

224,801

10

로열더치셸(네덜란드)

석유·가스

222,669

<표 3: 2012년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이 표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가 8위에 올랐다. 일시적이나마 마이크로소프트보다 시가총액이 컸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특이하다. 이것이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10대 기업에 포진되어 있던 사례인데,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감안할 때 조만간 다시 10대 기업에 재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회의적이다.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기술이 주도할 미래의 글로벌 경제에서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에서 보유하고 있는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표는 2012년까지도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과 같은 정보기술기업들이 아직 시장에서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음 2015년 시가총액을 살펴보면 3년 전과 비교해 또 다른 의미에서 상당한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애플, 알파벳(구글의 지주회사), 마이크로소프트가 상위 5위 안에 안착한 것은 이 시점부터다.

순위

기업명(국가)

업종

시가총액(백만 달러)

1

애플(미국)

휴대폰

598,344

2

알파벳(미국)

지주회사(구글)

534,090

3

마이크로소프트(미국)

소프트웨어

449,799

4

버크셔 해서웨이(미국)

지주회사

323,750

5

엑슨모빌(미국)

석유·가스

325,167

6

아마존(미국)

전자상거래

323,099

7

제너럴 일렉트릭(미국)

복합(기계, 전자, 금융 등)

313,892

8

존슨앤존슨(미국)

헬스케어

287,153

9

웰스파고(미국)

금융업

281,770

10

제이피모건체이스(미국)

금융업

245,126

<표 4: 2015년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한편 2013년에는 엑슨모빌이 2위, 버크셔 해서웨이가 5위에 포진했으며, 2014년에도 엑슨모빌이 2위, 버크셔 해서웨이가 4위에 포진했었다. 그러다가 2017년부터 엑슨모빌과 버크셔 해서웨이는 상위 5위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후 엑슨모빌이 10위 밖으로 밀려난 점은 특기할 만하다. 과거 제너럴모터스(GM)나 GE와 같은 전통 강자들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기후변화를 곧 심각하게 인지하기 시작할 것이고, 이로 인해 화석연료에 대한 수요가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시가총액의 변화만으로도 산업구조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감지할 수 있다. GE는 2015년에는 반짝 10대 기업에 포함되었으나 곧 10위 밖으로 밀려났다.

이제 가장 최근인 2019년 시가총액 기준 상위 10기업을 살펴보면 다음 같다. 이 표에서 정보기술기업들의 약진을 확인할 수 있다.

<표 5: 2019년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순위

기업명(국가)

업종

시가총액(백만 달러)

1

아람코(사우디아라비아)

석유·가스

1,900,000

2

애플(미국)

휴대폰

1,305,000

3

마이크로소프트(미국)

소프트웨어

1,203,000

4

알파벳(미국)

지주회사

922,130

5

아마존(미국)

전자상거래

916,150

6

페이스북(미국)

소셜미디어

585,520

7

알리바바 그룹(중국)

전자상거래

569,010

8

버크셔 해서웨이(미국)

지주회사

553,530

9

텐센트(중국)

소셜미디어

461,370

10

제이피모건체이스(미국)

금융업

437,230

여기서 특기할 점은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인 아람코(Aramco)가 2019년 기업 공개를 통해 미국 증시에 상장됨에 따라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올라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독점기업으로서 아람코의 특이한 상황을 반영한 것일 뿐이기에 앞으로 계속 1위를 고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표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의 대표적인 정보기술기업인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및 페이스북 외에 중국을 대표하는 정보기술기업인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10대 기업에 포진되어 있다. 즉 10개 중 7개가 정보기술기업이다. 이런 추세는 2017년부터 시작되었는데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보기술은 현재 모든 기술들의 기술, 즉 메타기술(meta technology)로서 모든 분야에서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인공지능 기술에 그치지 않고 블록체인 기술을 비롯한 거의 모든 기술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기술들이 수렴(convergence)하는 과정에서 어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 기업가치에 획기적인 변화를 초래할지 누구도 예단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젊은 시절 『부와 빈곤』이라는 저서를 통해 1980년대 미국 레이건 행정부가 추진했던 “공급 중심 경제학”을 대중에게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던 조지 길더(George Gilder)는 뒤늦게 기술 분야로 진출해 여러 벤처 기업의 설립에 관여하기도 했고, 각종 기술 컨퍼런스를 주도하면서 기술 분야의 저서를 여럿 출판했다. 최근 저서 『구글의 종말(Life After Google)』에서 길더는 인터넷 플랫폼을 기반으로 빅데이터를 독점하고 있는 구글의 비즈니스 모델은 이미 뚜렷한 한계에 드러내고 있다면서 조만간 블록체인 기술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면 구글은 결국 몰락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파격적인 예측을 하고 있다. 길더의 주장이 맞는다면 구글의 기업가치는 머지않아 급격히 감소할 것이다. 우리는 구글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구글에 맞서 잠재적인 경쟁 기업들이 어떤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따라서 시장에서 구글이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정보를 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시가총액의 추세를 예의주시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도 기업의 시가총액 추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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