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기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 이영환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19.10.2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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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픽사베이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기업은 국민경제 순환의 세 측면인 생산, 분배 및 지출에서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고용, 투자 및 기술혁신을 통해 국민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동력을 제공한다. 따라서 기업이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기업의 이해관계자(stakeholder)들은 물론, 국민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것은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는 국가에서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동안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목적으로는 크게 주주가치극대화나 이해관계자가치극대화가 지지를 받아왔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황금기에 해당하는 1940년대 초에서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는 대압착기(Great Compression)라 불린다. 여기서 ‘압착’이란 임금 격차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여러 국가에서 높은 경제성장이 지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상당히 완화되었기에 황금기라 불린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기간 동안 기업이 이해관계자가치를 추구했던 것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반면 1970년대 이후 이해관계자가치 대신 주주가치가 강조되면서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더욱 악화되었으며 이는 객관적 자료에 의해 확인되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예컨대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의 『불평등의 대가』,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의 『자본주의를 구하라』는 이런 주장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저서들이다. 이들은 기업들이 주주가치극대화를 위해 단기 실적에 초점을 맞춤에 따라 연구·개발 투자를 소홀히 하는 등 장기적 성장기반을 약화시켰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기업이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가에 따라 국민경제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입증되었으며 이는 정부의 규모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이 문제의 진원지는 미국이고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다른 국가들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왔으므로 과거 무슨 이유로 미국에서 기업의 목적에 관한 공적 담론에 이처럼 큰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이와 관련해 두 가지 결정적인 요인을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자유시장을 지지했던 대표적인 경제학자로서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대학의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2006) 교수의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대법원판사를 역임한 루이스 파웰(Lewis Powell)이 작성한 《루이스 파웰의 메모(The Lewis Powell Memo: A Corporate Blueprint to Dominate Democracy)》다. 파웰은 영향력 있는 기업변호사로서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판사로 임명되기 직전 미국 상공회의소의 부탁으로 이 메모를 작성했는데, 여기서 뉴딜정책 이후 실시된 복지정책과 노동법 강화, 소비자 및 환경 보호정책 등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던 일련의 정부정책에 대한 기업의 반격을 촉구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했다. 핵심은 자유기업 시스템을 회복하기 위해 교육, 연구, 출판, 미디어 및 법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 방위적인 반격을 개시하는 것이었다.
 
한편 밀턴 프리드먼은 자유시장경제의 우월성을 옹호한 저서 『Capitalism and Freedom』(1962)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기업 경영자들과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주주와 노동조합원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을 넘어서는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견해가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자유경제의 성격과 본질을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다. 자유경제에서 기업이 지는 책임은 오직 하나뿐인데, 이는 게임의 규칙을 준수하는 한에서 기업 이익극대화를 위해 자원을 활용하고 이를 위한 행동에 매진하는 것, 즉 속임수나 기망행위 없이 공개적이고 자유로운 경쟁에 전념하는 것이다.”
 
이어서 프리드먼 교수는 1970년 <The New York Times magazine>에 실린 《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이라는 제목의 짧은 기고문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늘리는 것이라는 간단명료한 주장을 펼쳤다. 그가 이런 극단적인 주장을 펼친 논리적 배경은 첫째, 책임은 개인이 지는 것이지 기업이 지는 것이 아니며, 둘째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상태에서 전문경영자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사회적 책임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자신을 고용한 주주들에 대한 도덕적 해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즉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이 발생하며 이로 인해 기업의 생존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프리드먼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상당한 반론이 있었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모호함과 자의적 측면으로 인해 논리적인 면을 강조하는 학계의 폭 넓은 지지를 받았다. 사실 기업의 이해관계자에는 종업원, 소비자, 기업이 속한 공동체 등 다양한 주제들이 포함되므로 이해관계자가치를 추구한다는 것과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이해관계자들 가운데 누구의 가치에 얼마만큼의 비중을 둘 것인지, 즉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일관성 있는 답을 제시하기 어렵다. 이것은 이해관계자가치를 지지하는 경우 항상 제기되는 문제로서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파웰의 메모에 의해 촉발된 기업들의 조직적인 반격과 함께 프리드먼 교수의 주장이 널리 수용되면서 기업의 목적은 주주가치극대화라는 것이 별다른 거부감 없이 수용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영향을 받은 여러 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되기에 이르렀으니,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기조에 입각한 IMF의 권유로 이런 추세가 확산되었다. 자본시장이 자유화되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하면서 주주가치극대화는 자연스럽게 상장기업의 목적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전에 우리나라 상장기업들이 이해관계자가치를 중시했다는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엉겁결에 주주가치극대화가 기업의 목적으로 공인되었을 뿐이다.
 
이것이 얼마나 견고하게 자리 잡았는지는 2008년 전대미문의 금융위기를 경험한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상황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의 전문경영자들의 모임인 <비즈니스 원탁회의(Business Roundtable; BRT)>는 지난 8월 19일 181명의 전문경영자들이 서명한 《기업의 목적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1972년에 출범한 BRT는 대표적인 로비단체로서 각종 친기업적인 정부정책을 이끌어냈으며 1997년에는 기업의 목적은 주주가치극대화에 있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BRT가 다음과 같은 파격적인 내용이 담긴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 소비자들에게 가치를 제공한다.
• 종업원들에게 투자한다.
• 납품업자들을 공정하고 윤리적으로 대한다.
• 기업이 속해 있는 공동체를 지원한다.
• 기업에 자본을 제공한 주주들을 위해 장기적 가치를 창출한다.
 
이 내용에 의하면 BRT에 속한 대기업들은 주주가치 일변도에서 벗어나 이해관계자가치를 추구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이 성명서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해관계자들 하나하나 모두 중요하다. 우리는 기업, 공동체 그리고 국가의 미래 성공을 위해 이들 모두에게 가치를 제공할 것을 약속한다.”
 
이것은 나름 중요한 선언이다. BRT에 속한 기업들의 전문경영자들이 불평등 악화, 대중소비의 위축, 불확실한 미래 등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여러 요인들로 인해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고육지책으로 발표한 성명인지 아니면 그동안 주주가치극대화를 추구한 결과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담은 성명인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명확하지 않다. 실제로 이 성명서에 대해 여러 전문가들이 구체적인 실행 여부에 대해서 다분히 회의적인 반응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핵심 요인은 역시 이해관계자가치를 추구하는 데 따른 모호함 때문이다. 예컨대 기업이 제품 가격을 인하하면 소비자에게는 유리하겠지만 주주들에게는 불리할 것이 자명한데, 누구의 가치를 우선할 것인지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안정을 위해서는 고용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로 인해 손실을 보게 됨으로써 은행의 신용평가 하락에 따른 불이익을 부담하는 문제도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런데 이 성명서에 앞서 지난 4월 9일 세계최대의 헤지펀드를 운영하는 미국의 투자회사 <Bridgewater Associates>의 창업자이자 전문경영자 레이 달리오(Ray Dalio)는 《자본주의는 왜 그리고 어떠한 개혁이 필요한가(Why and how capitalism needs to be reformed)》라는 장문의 글에서 자본주의가 존속하려면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다보스 포럼의 단골 초청인사일 뿐만 아니라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인 중 한 명이다. 필자는 미국 대기업의 전문경영자들 상당수는 레이 달리오와 유사한 위기의식을 느꼈기에 그런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단기주의의 관점에서 주주가치에만 역점을 둔다면 기업의 생존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면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편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우 기업의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어떻게 해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공감해 다양한 방법으로 기업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기업이 이익을 내든 손실을 보든 일관성 있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면 우리 실정을 감안해 기업의 목적에 대한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즉 몇몇 재벌들이 국민경제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 산하의 대기업들이 어떤 목적을 추구할 것인지 분명히 밝히고 이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논의는 중구난방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기업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이런 저런 사업을 지원하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기업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자는 기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해관계자들의 가치를 어떤 방법으로 구현할 것인지 명확한 프로그램을 마련한 후 이를 공표함으로써 확고부동한 의지를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정부는 장기적 관점에서 조직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들을 선별해 세제, 금융 및 정부 조달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혜택을 주는 실행 가능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기업이 유리한 환경에서 경영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실현된다면 굳이 무리한 방법을 동원해 재벌개혁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 이것은 재벌을 포함해 정부와 국민 모두를 승자로 만드는 방법이다.

이영환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ylee11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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