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드라마제작현장의 장시간 노동개선과 턴키 계약 근절을 위한 방송스태프와 영화산업노동조합 관계자들의 합동 기자회견. 사진. 구혜정 기자

노조에 가입한 스태프들이 드라마 현장에서 블랙리스트가 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3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는 드라마제작현장의 장시간 노동개선과 턴키 계약 근절을 위한 방송스태프와 영화산업노동조합 관계자들이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정의당 추혜선 국회의원과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전국영화산업노조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이날 기자회견은 추혜선 국회의원의 인사말과 함께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김두영 지부장의 입장문과 전국영화산업노조 안병호 위원장의 입장문이 이어졌다.

희망연대노조 측은 "지금까지 드라마제작현장은 방송사 → 드라마제작사 → 분야별 팀(조명, 동시녹음, 장비, 미술 등) → 스태프로 이루어진 다단계하도급 고용구조를 유지해왔다. 따라서 분야별 팀에 소속된 스태프들은 연출 감독(주로 방송사 소속으로 파견되어 드라마제작과정 전반의 문제를 결정하고 총괄 지휘 역할 수행)과 드라마제작사의 업무지시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턴키계약(분야별 감독급과 장비료·인건비 등을 구분하지 않고 프로젝트 전체를 ‘용역비’로 일괄 계약하는 방식) 관행으로 인해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의 사각지대에서 △최저임금 미적용 △장시간 노동 △잦은 안전사고 등에 시달려왔다"고 전했다.

tvN '화유기'의 스태프 추락사고, 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스태프 사망사고 등, 연이어 현장에서 사고들이 발생했지만, 책임의 주체가 모호했던 것은 모든 이런 불공정한 근로 환경 때문에서 비롯된 것이다.

희망연대노조는 "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드라마제작스태프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지난 2월, 언론시민단체들은 드라마제작현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하였고, 지난 9월, 고용노동부는 드라마제작현장 근로감독결과를 확정했다. 근로감독결과의 핵심은 ‘드라마 제작현장 종사자들은 대법원의 근로자성 판단기준을 근거로 보았을 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된다는 것이었다"라고 전했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드라마제작스태프 177명 중 157명에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등 실질적으로 대다수 드라마제작스태프들이 방송사(연출감독)나 드라마제작사의 구체적 업무지시를 받고 있는 노동자라는 것을 인정했다. 또 턴키계약 등 드라마제작현장의 불공정한 계약관행에 대한 여론으로 인해 CJ ENM이 출자한 제작사인 스튜디오드래곤에서는 드라마제작스태프들과 개별 계약을 원칙으로 진행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피부에 와닿는 변화는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3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드라마제작현장의 장시간 노동개선과 턴키 계약 근절을 위한 방송스태프와 영화산업노동조합 관계자들의 합동 기자회견. 사진. 구혜정 기자

희망연대노조 측은 "아직도 드라마제작현장에서는 △ 1일 18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 △ 스태프들에 대한 사용자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턴키계약 강요가 지속되고 있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에 소속된 조합원들은 새로운 드라마 제작 시, 개별 근로계약체결을 요구하고 있지만, 제작사들은 이를 거부하며 여전히 턴키계약을 강요하고 있다"라고 폭로했다.

이들에 따르면, 드라마 제작사들은 수 년 동안 여러 작품을 함께해온 스태프들이 개별 근로계약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여전히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드라마제작사가 영화제작/광고제작 현장에서 일해 온 조명·동시녹음 등 분야별 스태프들을 직접 섭외하여 기존의 턴키계약 관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소속 일부 조합원들이 차기 드라마제작에서 배제되는 등 ‘드라마제작현장의 블랙리스트’마저 작동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폭로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는 언론노조와 한국방송협회가 체결한 ‘2018년 지상파방송사 산별협약’제15조를 근거로 드라마제작현장별 스태프 노동조건에 대한 협의를 위해 방송사와 드라마제작사에 면담을 요청했으나, 방송사와 드라마제작사들은 일방적으로 면담을 거부하거나 지연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또 지상파방송사들이 가입되어 있는 한국방송협회가 지난 11월 19일 발표한 스태프 처우 개선방안은 지상파방송사 중간광고를 도입하려는 목적으로 한 보도자료이며, 노동조합이나 드라마제작현장스태프들과 단 한 차례도 논의된 바 없었다고도 주장했다. 35개 드라마제작사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에서 역시 각종 사용자단체들과의 토론회를 통해 방송업계 노동시간 단축 흐름에 제동을 걸고 있다고. 

희망연대노조 측은 "이날의 기자회견은 드라마제작현장의 장시간 노동과 턴키계약 관행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블랙리스트’를 통한 방송스태프 조합원 배제·퇴출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사회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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