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무역협회·경총 회장 2~3월에 임기 만료
단체 외연 확장에 역할…기업 이해관계 적극 설득
미국 대선·한국 총선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 가중
킬러규제 혁신 절실…"합일된 목소리 낼 환경 필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사진=SK그룹.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사진=SK그룹.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국내 경제계를 대표하는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수장들 임기가 올해 끝난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면서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됐던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공식 행사에서 배제됨에 따라 이들 단체의 위상은 높아진 터다. 대한상의는 재계의 소통창구로 자리 잡았고, 무역협회와 경총은 공급망 구축과 노사 관련 이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차기 수장을 놓고 재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재계에서는 세 단체 모두 연임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최태원 회장과 손경식 회장, 구자열 회장 모두 연임 의지를 밝히고 있어서다. 미중 갈등, 글로벌 공급망 재편, 기업 규제 강화와 같은 대외 변수 속에서도 재계를 중지를 모으고 안정적으로 수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다만 대외 활동에 전념하기에 녹록치 않은 경영 여건은 변수. 그러나 세 사람을 대신할 인물도 마땅치 않은 만큼, 연임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9일 재계에 따르면 무역협회, 경총 회장은 오는 2월, 대한상의 회장은 3월에 임기가 만료된다. 재계가 가장 주목하는 인물은 최태원 회장이다. 

최 회장은 지난 2021년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의 요청을 받고 장고 끝에 대한상의 회장직을 수락했다. 

대한상의 출범 후 4대 그룹 총수가 회장을 맡은 것은 최 회장이 처음. 재계 2위인 SK를 이끄는 만큼, 최 회장 존재만으로도 대한상의는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대한상의는 최태원 체제 아래 환골탈태를 거듭했다.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를 기업 경영에 접목하며 ESG 경영을 본격화 했는데, 대한상의 역시 최 회장의 주도로 빠르게 변했다. 

대한상의는 IT, 금융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젊은 기업인을 대거 영입해 산업계 재편에 발빠르게 대응했다. 특히 사회가 기업에 요구하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촉매제 역할을 자청했다. 소통플랫폼, 신기업가정신협의회(ERT)가 대표적이다. 기후 변화, 저출산, 세대간 갈등, 기회의 불균형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기업이 풀어나갈 수 있게 논의의 장을 마련했다. 특히 계획경제 아래 급성장했던 대기업의 오너경영체제가 지닌 단점들을 보완하고 상생과 협력의 주체로 자리할 수 있게 유도했다. △혁신·성장 △윤리경영 △조직문화 △친환경 경영 △지역사회 발전과 같은 과제에 참여한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700여곳이 넘는다. 

기업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데에도 일조했다. 최 회장은 SK그룹에서도 '홍보맨'을 자청하며 활발한 대내외 소통에 나서왔다. 대한상의 수장을 맡은 뒤에도 최 회장은 타운홀 미팅, 예능, 유튜브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접점을 늘렸다. 

덕분에 대한상의의 위상은 격상됐다. 전경련을 대신해 정부의 카운터 파트너가 됐다. 신년인사회를 포함해 경제계 주요 행사는 대한상의의 몫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전, 전경련에 힘을 실어주려는 움직임이 포착됐지만, 대한상의의 입지를 오히려 굳건해졌다. 전경련의 과도한 친정부 행보에 정부가 거리를 둔 까닭이다. 그런 가운데 최 회장은 대한상의의 수장으로서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이어갔다. 그는 세계박람회 민간유치위원장을 맡아 지난해 부산 홍보전을 이끌었다. 개최지 선정 투표를 한 달 앞두고는 프랑스 파리에 상주하며 각 국 주요 인사를 직접 설득했을 정도로 활약했다. 최 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대한상의를 대표 경제단체로 인식시키는 데 결정타가 됐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한 번 더 회장직을 수행할 것으로 본다. 최 회장이 대한상의에 애정을 드러내고 있어서다. 그는 지난 3년 간 주 1회 상의로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도 추진 중이다. 한국은행과 함께 공동세미나를 마련, 경제 패러다임 변화와 복합위기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연말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아직 기간이 남았으니까 다른 사람들 의견도 듣고 저 자신도 돌아보겠다"고 밝힌 상태. 이를 두고 '연임을 염두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사진=한국무역협회.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사진=한국무역협회. 

무역협회도 구자열 회장의 연임이 유력시 된다. 무역협회는 최근 15년 동안 관료 출신이 수장을 맡아왔다. 그렇다 보니 정부 정책 방향에 따라가는 경향이 강했다. 산업 현장의 애로사항이 반영되지 않다 보니, 무역협회는 업계의 대변인으로 역할하지 못했고, 입지도 좁아졌다. 

LS그룹 총수 시절 '야전사령관'이라 불릴 정도로 구 회장은 현장 감각이 남다른 기업인으로 꼽힌다. 그는 무역협회에서도 현장과 스킨십을 늘리며 긴밀히 소통했다. 무역협회 회장으로 그가 한 첫 건의도 '전시회 인원제한을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전시산업이 고사 위기에 처하자 "수출과 내수 회복에 중요하다"며 정부에 기준 완화를 요청했다. 

구 회장은 이처럼 현장 맞춤형 지원을 내놓으며 업계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역할을 했다. 신시장 개척, 공급망 강화, 민간 네트워크 활성화를 추진했고 수출 전선에 있는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협회의 외연 확장을 이끌기도 했다. 셀트리온·스마일게이트·CJ ENM 등 신산업 분야로 일컬어지는 바이오·IT·콘텐츠 기업을 회원사로 맞아들여 다양성을 확보했다. 

무역협회가 정부에 건의한 규제 개혁안은 130여건, 수출·통상 관련 기업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이는 민간 협력 강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실제 무역협회는 지난해 밴 플리트 상을 수상하며 한미 경제 협력의 마중물로 인정받았다. 밴 플리트 상은 한미 관계에 기여한 개인 또는 단체에 주는 상이다. 

무역협회는 올해 통상 대응력을 높일 예정이다. 미국 대선과 같은 정치 이벤트가 국내외 통상정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서다.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 우리 기업이 진출한 주요 국가 정책에 대응할 조직을 꾸리기로 했다. 통상 문제는 개별 기업이 대응하기 어려운 분야인 까닭에 국가 간 협력 체계를 구축해 기업의 운신 폭을 넓히자는 취지다. 수장 교체기, 조직의 신설은 현장 중심의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구 회장은 실제 무역협회 회장직에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인 고(故) 구평회 E1 명예회장에 이어 회장직을 수행하게 됐기 때문이다. 구 회장의 연임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사진=데일리임팩트.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사진=데일리임팩트.

경총 역시 손경식 회장이 한 번 더 키를 잡을 것으로 점쳐진다. 손 회장은 2018년 회장에 오른 뒤 3번째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경총은 손 회장 주도로 기업이 가장 곤혹스러워 하는 노사관계에서 확실한 성과를 냈다. 대기업 편중의 친기업정책을 우선한다는 지적도 받았지만, 기업 경영의 불안 요소를 해소하고 이해관계를 설득시키는 데 역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은 손 회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노조법 개정안은 노동조합이 불법 쟁의 행위를 하더라도 사용자가 노조와 조합원에 대해 손해배상청구·가압류로 제재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노조의 편법 행위에 대응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손 회장은 수차례 관계부처, 국회를 찾아 기업의 고충을 전달하며 설득했다. 

경총은 현재 외연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노사관계에 집중했던 이전과 달리 종합경제단체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재계 주요 현안을 선점하고 아젠다를 주도할 인물이 필요하다. 이에 손 회장이 4연임에 나설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그동안 경제단체들은 기업 관련 규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상법·공정거래법 등 이른바 공정경제3법 제·개정 당시 기업의 입장이 전달되지 못했다. 기업인 출신 경제단체장이 등장한 배경이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아무리 전문경영인 체제가 확립됐다 해도 단기 성과를 낼 수 없는 대규모 투자 등은 오너가 아니면 섣불리 결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총수들이 경제단체장직을 수락할 정도로 기업 규제를 계속 됐기에 정부와 기업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경영 환경 개선에 목소리를 낼  구원투수로 총수들이 나섰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변수는 있다. 대내외 변수로 기업 경영 여건이 악화되면서 그룹 살림을 챙길 필요성이 커졌다. 최 회장, 손 회장은 각각 SK그룹, CJ그룹을 각각 이끌고 있는데 두 그룹은 지난해 부진했다. 수익성을 책임졌던 SK하이닉스는 반도체 한파에 조 단위 적자를 기록하면서 그룹 재무 건전성에 악영향을 끼쳤다. CJ그룹도 CJ제일제당, CJ ENM을 비롯한 핵심 계열사 실적이 하락하면서 돌파구가 절실한 상황이다.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하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LS그룹 경영권을 사촌인 구자은 회장에게 넘긴 구자열 회장은 그나마 낫다. 지주사인 ㈜LS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지만 총수처럼 경영을 책임질 위치도 아니고, LS그룹도 지난해 비교적 호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LS그룹도 재무 건정성이 위험한 상태다. ㈜LS의 연결 기준 부채 비율은 지난해 상반기 기준 195%나 된다. 부채비율이 200%를 넘기면 재무안정성이 위험한 것으로 판단한다. 구 회장이 이사회 의장으로서 그룹의 경영 전략과 중장기 비전에 대해 세밀하게 들여다 봐야 할 시점인 것이다. 

올해 총선 이후 국내 정치 지형 변화에 따라 기업 관련 규제도 달라질 수 있다. 변곡점을 맞는 기업 경영 환경을 개선할 인물이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기업인들이 경제단체장을 수행하면서 모처럼 공통 현안에 대해 합일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은 긍정적이다. 기업들이 요구했던 킬러규제 혁신을 이끌어 낼 적기인 것이다. 대한상의, 무협, 경총 모두 차기 수장에 대한 하마평이 전무한 것도 기업인 단체장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민간 투자 활성화를 요구하면서도 정부 정책은 친시장적이지 못한 게 현실"이라며 "대한상의, 한경협, 무협, 경총까지 주요 경제단체들을 기업인들이 이끌면서 시의적절한 정책제언을 할 조건이 갖춰졌다. 대승적 차원에서 최 회장과 구 회장, 손 회장이 연임을 수락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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