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과 동시에 재계와 스킨십…전방위 지원 강조

민간 주도 성장 전략 제시…노동 규제 혁신 가시화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 부재…“철밥통 깰 의지 있나” 지적

지난달 부산세계박람회 유치기원 대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왼쪽)이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대한상공회의소.
지난달 부산세계박람회 유치기원 대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왼쪽)이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대한상공회의소.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

‘자유’를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일성에 재계가 내심 흐뭇한 기색이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적폐의 대상으로 몰리며 각종 반(反)기업 규제에 발목 잡혔던 만큼, 민간의 자율을 강조한 윤 대통령의 약속이 “남다르게 느껴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윤 대통령의 취임 첫날 행보는 재계의 기대감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취임식부터 외빈 만찬까지 주요 대기업 총수들과 경제단체장들이 함께 했고, 윤 대통령도 거듭 ‘민간 주도 경제’ 원칙을 강조했다. 재계와 물리적 거리를 좁히는 데 각별히 신경 쓰는 모습에 ‘기업 경영 환경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재계는 윤 대통령이 추진할 규제 개혁의 속도와 폭이 과감한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만 규제 개혁의 핵심으로 꼽히는 노동개혁이 얼마나 실행력 있게 추진될지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특히 노사관계 선진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회장, 구광모 LG그룹회장,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사진.코시스(해외문화홍보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회장, 구광모 LG그룹회장,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사진.코시스(해외문화홍보원)

“시장경제 원칙 지키겠다” 거듭 강조…기업과의 협력적 관계 ‘약속’

윤 대통령은 재계와 상견례가 빠른 편에 속한다. 당선인 신분으로 재계와 만난 대통령들도 있었지만, 친기업적 행보를 보이진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된 지 일주일 만에 주요 그룹 총수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전 대통령도 대선을 치른 지 9일 만에 삼성·현대기아차·SK·LG 등 4대 그룹 총수를 포함해 주요 대기업 총수들, 경제5단체장과 만났다. 두 사람 모두 기업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중소기업 보호를 전제했고, 이 전 대통령은 기업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 이 전 대통령과 다소 결이 다른 상견례도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당선 이후 약 3주 가량 지났을 무렵, 4대 그룹 총수들과 상견례를 가졌다. 다만 이때의 만남은 IMF 외환위기 조기 극복을 위한 협력에 방점이 찍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기업 구조조정 5원칙’에 합의할 것을 요구했다. 5원칙에는 LG전자의 반도체 사업, 삼성의 자동차사업 등 사업 구조조정과 재벌 총수들의 사재 출연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재계에서는 윤 당선인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당선인 시절 경제단체장과 간담회를 갖고 ‘핫라인 구축’을 약속하기까지 했지만, 정작 투자와 고용의 주체인 대기업 총수들과는 만나지 않았다. 

더욱이 윤 대통령은 검사시절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렸고, 공정한 경쟁에 대한 소신도 강했다. 공교롭게도 대기업 수사를 전담하는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공조부)가 덩치를 키우자 ‘사정정국이 형성되는 게 아니냐’는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기업들이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윤석열 라인’으로 불리는 법조계 인사를 영입한 이유다. 

올해 LG전자 사외이사로 합류한 강수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대통령이 1997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근무할 당시 카풀을 한 인연이 있다. 롯데쇼핑 사외이사 명단에 이름을 올린 조상철 전 서울고검장은 윤 대통령의 사법연수원이자 법무부 장관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이다. 롯데홈쇼핑이 사외이사로 영입한 김우현 전 수원고검장은 윤 대통령의 사법연구원 1년 선배이고, 포스코홀딩스 법무팀장(부사장)을 맡게 된 김영종 법무법인 호민 대표변호사는 윤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다. 

실제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올 1분기 국내 30대 그룹 사외이사 현황을 분석한 결과, 795명 중 228명(28.7%)이 관료 출신이었고, 전직 관료 가운데 법조계 인사가 37.7%를 차지했다. 특히 올해 사외이사로 선임된 167명 가운데 관료 출신은 51명(30.5%)에 달했는데, 검찰과 법원 출신이 각각 13명이나 됐다. 혹시나 모를 외풍을 막기 위한 방탄용 인사인 셈이다. 

그러나 취임식 이후 재계에 흐르던 긴장감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윤 대통령이 재계를 ‘경제 협력의 파트너’로 예우해줬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취임사에서 자유와 평화, 번영을 강조했고, 특히 자유는 무려 35번이나 언급해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만찬장에서도 “시장경제의 원칙을 지키겠다”고 약속하면서 “더욱 자유롭고 개방된 글로벌 경제 안보 질서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재계를 향한 러브콜은 말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취임식에 이례적으로 5대 그룹을 포함한 대기업 총수부터 경제단체장, 온라인 플랫폼 기업 대표까지 다양한 분야의 경제인들을 초청해 ‘민간 중심 성장’의 신호를 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이성희 농협중앙회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구현모 KT 대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주요 그룹 수장들이 참석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최진식 중견기업연합회 회장 등 6개 경제 단체장들도 자리했다. 

신생 플랫폼 기업 대표들 역시 재계 수장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초대됐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 김성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강한승 쿠팡 대표, 김슬아 컬리 대표, 안준형 오아시스마켓 대표,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 박태훈 왓챠 대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안성우 직방 대표, 이수진 야놀자 대표가 취임식에 함께 했다. 

5대 그룹 총수와 경제7단체장들은 외빈 만찬에 초청받기도 했다. 재계 총수가 외빈 만찬에 초청받은 것은 처음이다. 이에 재계에서는 정부 주도 방식을 지양하고, 기업과 국가가 함께 성장하는 역동적 경제를 만들기 위해 민간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는 해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취임식에 초청된 경제인의 면면이나 규모를 보면 기업들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인상”이라며 “고강도의 규제 개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윤 대통령은 정부의 간섭을 줄이고 시장의 기능을 활성화하겠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대통령 주재 규제혁신전략회의와 산업혁신전략회의, 민·관·연 합동 규제혁신추진단을 구성해 민간이 규제 개혁을 주도할 기반을 마련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기업의 협력자로 역할한다. 반도체·인공지능(AI)·배터리·바이오·디스플레이 등 첨단 전략산업에서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펼치는 한편, 기업의 성장을 위해 금융·세제 지원을 늘린다. 자율과 혁신을 바탕으로 우리경제의 체질을 바꿔놓겠다는 구상이다. 

14일 오전 11시 30분 중구 서소문동에 위치한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전국택배노조가 향후 투쟁 계획에 대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김성아 기자
14일 오전 11시 30분 중구 서소문동에 위치한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전국택배노조가 향후 투쟁 계획에 대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김성아 기자

“민간 활력도 높인다”지만…노동 개혁 완주 가능성에 ‘희의적’ 시각도

재계의 시선은 윤 대통령이 보여 줄 규제 개혁에 쏠린다. 역대 정부들은 기업 규제를 ‘전봇대’ ‘손톱 밑 가시’ ‘붉은 깃발’ 등으로 지칭하며 개선을 공언했지만 이뤄지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만 해도 5년간 총 5798건의 규제가 생겼다. 가장 친기업적 정부로 불렸던 이명박 정부에서도 5827건의 규제가 신설·강화됐다. 

한국의 기업규제는 외국 자본의 투자 기피를 부르는 요인으로 꼽혀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이 국내에 투자한 외국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31.1%가 ‘불투명한 입법 규제 남발‘을 지적했고, 27.9%는 ’일관성 없고 예측 불가능한 행정규제’를 문제 삼았다. 

무엇보다 노동 규제는 민간의 활력도를 떨어뜨려왔다. 경직된 노동시장, 갈등적 노사관계는 기업들의 해외 투자를 가속화하는 요인이 됐다. 최근에는 노동이사제 도입,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확대 기조 등으로 기업들 사이에서는 “기업이 뛸 운동장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하소연까지 나온다. 노

동시장 유연화는 조만간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에는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확대하고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등 연장 근로시간 총량 관리, 스타트업·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 완화 등 지원방안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기존에는 근로시간 정산기간이 1~3개월에 불과했지만, 재계의 요구대로 1년까지 늘어나면 기업별로 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제조업의 경우, 일이 몰릴 때는 집중 근무를 했다가 다른 기간에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직무·성과 중심의 보상체계 확립도 물살을 탈 것으로 점쳐진다. 윤 대통령은 국정과제를 통해 임금직무정보시스템을 통한 직무·직업별 임금정보 제공을 강화하고 기업 수요에 맞는 임금체계 개편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과잉 규제로 지적받았던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보완될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은 산업안전보건 관계 법령 개정 등을 통해 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지침·매뉴얼을 통해 경영자의 안전 및 보건확보 의무를 명확하게 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산업계 재편과 노동현장의 변화를 제도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의지가 강한만큼, 노동 과제 개선을 과감하게 추진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용춘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용정책팀장은 데일리임팩트에 “지난 정부에서는 경직적인 근로시간 단축에 초점을 맞췄다면 현 정부에서는 유연한 근무시간을 통해 보다 효율적인 인력 활용이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처럼 공공의 책임을 강조하고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체제를 구축해왔지만 현 정부에서는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민간이 고용과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갈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규제들이 손질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나 노사관계 재정립이 대표적이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국정과제에서 빠졌고 노사관계의 추를 바로 잡을 방안도 제시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의 대표성·독립성 강화를 위해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안착을 지원하기로 했다. 노동위원회 내 노사관계 전문가인 상임위원 중심 조정체계도 확립한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거듭 약속했었다. 또 경영활동에 타격을 주는 강성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혀왔다. 국정과제에 ‘노조의 불법파업 등에 대해선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아쉽다는 평가다. 

매년 산업 현장에서는 노조의 투쟁이 반복되고 있다. 임금협상 과정에서 판을 깨고 쟁의에 돌입하는 경우도 다반사. 삼성전자 노조를 노사협의회의 임금 협상이 ‘불법’이라며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노사관계의 주도권이 노조에 넘어간 모양새다. 

노동정책을 총괄한 수장으로 한국노총 출신의 노동운동가를 세운 것을 두고도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986년부터 30여년 간 노동운동 외길을 걸었다. 게다가 노동계의 반발이 예상되는 현안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결단력과 조직관리 능력이 필요하지만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장관이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으로 재임할 당시 재단은 2년 연속 미흡 등급을 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운동가 출신 인사는 데일리임팩트에 “노조의 존재 이유는 이제 투쟁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면서 “복수노조 허용 이후 각자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쟁의행위를 활용하기 때문에 회사로서는 리스크가 2배 이상 커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 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은 민간 확산을 위한 디딤돌이었다”며 “게다가 ‘진골’ 노동운동가가 노동정책을 총괄하게 됐으니, 지금의 기울어진 판을 슬쩍 건드리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윤 대통령이 노동 개혁을 완수할 가능성에 희의적이다. 규제 개혁을 선언하는 이상으로 구체적 행동을 보여줘야 하는데, ‘상황 관리’의 신호가 감지된다는 것이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이 장관이 지금껏 걸어온 이력을 보면 전혀 노동개혁의 마인드가 보이지 않는다”며 “노동시장의 불공정을 바로 잡고 노조의 철밥통을 깨야 하는데 친정에 칼을 들이대겠느냐.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격이 됐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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