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편하게 살 곳은 어디에?

[데일리임팩트 권해솜 기자] 초고령사회가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최근 시니어 복지와 주택과 관련해 정부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정부가 주도하는 고령자복지주택이 문을 열거나 착공을 서두르고 있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지역의 특수 상황으로만 볼 수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나라 최초 고령자복지주택인 전남 장성군 ‘누리타운'의 조감도. / 사진 = 장성군청.
우리나라 최초 고령자복지주택인 전남 장성군 ‘누리타운'의 조감도. / 사진 = 장성군청.

점점 늘고 있는 고령자복지주택

지금까지 민간에서 제공하는 시니어타운은 알았는데, 정부가 주도하는 시니어타운, 즉 ‘고령자복지주택’에 대해서 잘 몰랐다. 기록을 찾아보니 정부가 최초로 고령자 주택을 언급한 시점은 2005년이다.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고령사회에 대비해 국민임대주택단지 중 일부 지역에 고령자용 시범주거단지 2곳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분위기였고, 고령사회에 대한 체감이 무뎌서인지 사업 진행이 원활하지 않았다. 6년이 지나서 2011년에 고령자용 시범주거단지가 선을 보였고, 2015년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의 복지주택사업 착수에 들어갔다. 2017년까지 ‘공공실버주택’으로 불렸으며, 2019년부터 지금의 ‘고령자복지주택’이라는 명칭을 붙여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은 물론 전국 각지에 조금씩 고령자복지주택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7월에는 경기 포천, 부천(신도시), 강원 화천, 횡성, 충북 증평, 충남 홍성, 전남 고흥이 국토교통부로부터 고령자복지주택 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710세대의 고령자복지주택을 공급할 예정이다. 2023년 10월 기준 총 79곳 8238세대가 선정됐고, 이 중 27곳 3254세대가 준공된 상태다. 앞으로 2027년까지 5000세대를 더 공급한다는 게 국토교통부의 계획이다. 

고령자복지주택은 일반 시니어타운과 고령자를 위한 환경이라는 점은 같지만, 다른 부분이 있다. 시니어타운은 재력이 있는 시니어가 원하는 곳을 골라 지역 이동을 선택한다면, 고령자복지주택은 주택이 있는 지역에 주소지가 있는 65세 이상이어야 하며, 무주택자 혹은 기초생활보장수급자(기초수급자)가 신청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2023년 기준 총자산 2억5500만원 이하, 월 소득 1인 기준 234만원 이하, 2인(부부) 기준은 300만원 이하이면 대상에 속한다. 주택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일반 입주자는 평균 10만원 정도 월 임대료를 내고 살 수 있다.

고령자복지주택 입주를 원한다면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주거복지 포털사이트 ‘마이홈’에서 직접 공고를 확인하고, 자격요건이 되면 신청할 수 있다. 재계약 주기는 2년이며, 입주자만 원한다면 죽을 때까지도 살 수 있다. 단, 사는 동안 입주자의 자산이 늘거나 주택을 소유하게 되면 계약 기간까지만 살고 퇴거해야 한다. 

고령자복지주택의 개념도. 1층과 2층은 복지 시설이고, 그 위로는 주거시설이 들어선다. / 사진 = 국토교통부.
고령자복지주택의 개념도. 1층과 2층은 복지 시설이고, 그 위로는 주거시설이 들어선다. / 사진 = 국토교통부.

맨 처음 선보인 장선군 ‘누리타운’

2019년 전국 최초로 선보인 고령자복지주택인 전라남도 장성군의 ‘누리타운’에는 장성 거주자 중 65세 이상, 150세대, 180명이 모여 살고 있다. ‘EBS 건축탐구 집’은 물론 다양한 매체에 소개되면서 고령자복지주택의 존재를 알려왔다. 최초로 지어진 만큼  뒤이어 생긴 고령자복지주택이 벤치마킹하기 위해 배워갈 정도로 첫 테이프를 잘 끊어 놓았다. 

누리타운은 우선 장성군 외곽이 아닌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고, 보건소가 바로 옆에 있어 기본적인 의료 혜택을 받고 있다. 지방병원 소멸 현상으로 병원 가기 힘든 상황에서 최적의 입지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시니어의 주거를 이야기할 때 ‘병원 가까이 살아야 할 것’에도 어느 정도 부합한다. 

시니어 주택에서 필수인 문턱 단차를 모조리 없애 휠체어의 이용 편의성은 물론 걸려 넘어지는 사고도 미연에 방지했다. 어디를 가나 잡고 걸을 수 있는 안전 손잡이가 있으며, 집 안에는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세면대와 가스 밸브 차단기, 주방 환기구 등이 설치돼 있다. 집 밖으로 나가면 휠체어 등 보조 장치를 이용하는 입주자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공간이 넓은 직사각형 엘리베이터도 세 군데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배치했다. 복도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도 여유로울 뿐 아니라 앉아 쉴 수 있는 휴게 공간도 복도 중간에 마련돼 있다.

일반 아파트라면 면적도 돈이라서 복도나 계단 같은 공유 이용 시설 등에 대단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 이곳은 정부 주도로 공공을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 시설이라 최대한 모두에게 좋은 방법을 택했다. 집 내부는 홀로 거주하는 25㎡-A형(7평형)과 부부 혹은 두 명이 거주하는 35㎡-A형과 B형(11평형) 세 가지 유형이며, 넓지는 않다. 사실 일반 시니어타운도 입주자에게 모든 짐을 다 가지고 오는 것을 권하지 않고, 식사도 공동으로 하므로 큰 평수를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누리타운은 특히 입주자 대부분이 멀지 않은 곳에 살다가 자연스럽게 입주했다.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즉, 살던 곳에서 쭉 나이 들어가는 삶을 이곳 입주자들은 어느 정도 구현하며 살고 있다. 처음 입주했을 때는 생소했겠지만, 지금은 이웃 주민, 가까운 친구들과 모여있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안정감을 높일 수 있어 이 또한 큰 장점이다. 

이 밖에도 1층 노인복지관에서의 문화‧교양‧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배우고 익히는 하루를 보낸다. 무엇보다 마을에 넓게 분포해 살던 시니어들이 한 공간에 살고 있어 노인 돌봄 문제도 쉽게 해결했다. 지자체 입장에서 집마다 방문하며 안부를 묻고 다니는 것도 일인데 이제는 아파트에서 대부분 해결하고 있다. 

부산시 부산진구의 도란도란하우스. / 사진 = 부산진구청.
부산시 부산진구의 도란도란하우스. / 사진 = 부산진구청.

고령자복지주택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시니어 주택 모델도 나타났다. 경기도 안산시는 2021년 LH 경기지역본부와 함께 안산형 ‘노인맞춤형케어주택’을 내놓았다. 대단지 아파트 형식이 아닌 기존 주택을 LH가 사들이고 재건축해 제공했으며, 현재 안산시 상록구 일동‧본오2동, 단원구 고잔동 등 3곳에 29세대가 살고 있다. 

여기도 입주 조건은 안산시에 주소지가 있는 만 65세 이상 무주택자였다. 특이한 점은 △장기요양 재가급여자 △등급외자 △퇴원(예정)자 등 돌봄이 필요한 시니어를 우선 입주 대상자로 선정했다는 점이다. 독립적인 주거 공간과 함께 건강관리와 돌봄서비스 등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공유 공간이 있다. 이용료는 호마다 차이가 있으나 최근 문을 연 본오2동은 보증금 220만 원에 월 임대료 20만3000원으로 알려져 있다. 

노노케어의 현장이 된 공유주택 

안산형케어주택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 또 다른 차원의 시니어 공유 주택이 2021년 서울과 부산에서 문을 열었다. 서울 도봉구 ‘해심당’과 부산 부산진구 ‘도란도란하우스’이다. 

해심당도 LH와 도봉구청 그리고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안산시와 마찬가지로 LH가 기존 건물을 매입해 지상 4층 임대주택으로 재건축했다. 현재 시니어 25명이 입주해 있으며, 이곳도 역시 문턱을 없애고 휠체어 사용을 감안해 화장실 문을 넓게 설계하는 등 유니버설디자인(전 세대가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설계했다. 도봉구가 주소지인 65세 이상 무주택자 중 심사를 거쳐 입주했으며, 일반 입주자는 보증금 800만 원에 월임대료 30만~40만 원선을 내면 최장 20년 동안 살 수 있다. 

부산 최초로 들어선 시니어주거공동체 ‘도란도란하우스’는 시니어들이 모여살면서 건강한 시니어가 건강하지 않은 시니어를 돌보는 개념의 ‘노노(老老)케어’가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지하1층, 지상 4층 규모로 지어진 집에 모두 12명의 시니어가 거주하고 있다. 부산진구에서 홀로 거주하던 65세 이상이라는 것 외에 재산 보유액 혹은 무주택 여부를 제시할 필요 없다. 보증금은 500만 원에 약 18만 원 정도의 월세를 내며 2년 계약, 최장 10번 계약을 연장해 20년 동안 거주할 수 있다. 외부 강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등에 의존하지 않고 입주자들이 만든 규칙을 따르고, 식사는 물론 문화‧교육 프로그램도 입주자들이 운영하고 있다. 

찾아보니 최근 꽤 많은 곳에 시니어를 위한 주택이나 시설 등이 생겨나는 듯하지만, 사실 시설이 턱없이 모자란 실정이다. 게다가 관리 허술로 고령자복지주택에 입주한 시니어들이 피해 보는 사례가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아파트 2개 동, 지상 12층 규모로 지어져 올 1월부터 182세대(9월 말 기준)가 사는 충북 영동 부용고령자복지주택은 지난달 말 감사원으로부터 감사를 받았다. 이유는 복지주택단지 안에 공동목욕탕을 만들었는데, 알고 보니 건축법상 공동주택시설에서는 목욕탕 영업이 불가하다는 규정이 있었다. 영동읍 주위에 대중목욕탕이 한 곳인 것을 감안해 인근 주민을 위해 목욕탕을 비롯해 식당 등 시설을 만들었으나, 입주 이후 10개월 동안 이용이 불가해 입주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현행법상 용도변경도 어려워 철거 후 다른 시설로 활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당초 취지는 좋았으나, 현행법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막대한 시설에 비용을 들였다가 후속 조치도 빠르게 이뤄지지 않아 입주민들의 원성을 샀다. 

중산층 시니어가 들어갈 곳은 없나

고령자복지주택 입주대상자를 선정하는 것에도 전반적인 허점이 보인다. 모집 대상에 지역주민을 강조하는 이유가 에이징 인 플레이스 구현이 목적이라지만, 65세 이상 무주택자이거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중산층 시니어가 갈 곳이 없다. 일반 시니어타운에 들어가기에는 부족하고, 또 고령자복지주택을 이용하기에는 재산이 많아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중산층 시니어. 벌써 복지 사각지대에 몰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공무원 출신인 A씨(72)는 은퇴 후 경기 양주시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다가 5년 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다. A씨는 “고령자복지주택이 생겼다기에 알아봤으나 공무원 연금이 나오는 상황에 집이 한 채 있어 엄두도 내지 못했다”며 “여름부터 우울증까지 겹쳐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하지만, 대책이 없어 살던 곳을 버리고 자녀들이 있는 지역으로 이사 가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A씨는 이어 “젊은 시절 열심히 살아왔으나 재산상 늘 중간 위치라 제대로 된 복지 혜택을 받아본 적이 없다”면서 “고령자복지주택도 남들에게나 해당하는 소리”라며 포기하듯 말했다. 

앞에서 언급했듯 국토부는 2027년까지 고령자복지주택을 5000세대 더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준공되거나 착공, 준비하고 있는 곳과 합하면 1만3258세대가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7년 고령인구는 1167만 명을 넘기며 전체 인구의 22.73%가 된다. 5000곳을 더 짓더라도 고령자복지주택 보급률은 0.1%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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