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의 현장 터치] 강정길 엘메카 대표 “환자와 보호자 고통 줄여줄 것”

8년의 고난과 연구개발 끝에 탄생한 자동화석션기…글로벌 진출 꿈꾼다

강정길 대표가 엘메카의 자동화 석션기 'AIS-1000'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강정길 대표가 엘메카의 자동화 석션기 'AIS-1000'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김병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이 우리나라에 상륙한지 1년이 넘었다. 코로나19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다양한 문제점을 비로소 수면 위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의료 시스템의 문제도 그 중 하나다. 나름 의료강국으로 자부해왔던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도 지독한 감염병에 민낯을 드러냈다. 중증환자를 위한 병상은 턱없이 부족했고, 의료진·간호사들은 제대로 된 지원조차 받지 못한 채 감염병동에서 1년 넘게 사투를 벌이고 있다.

상당수 의료업계 종사자들이 한결같이 원하는 해결 방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의료기기의 고도화’다. 의료과 IT기술이 융합하는 ‘헬스케어’ 기술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총아로 떠오른 만큼, 이를 활용한 혁신적 의료기기의 개발·도입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의료기기의 개발은 결코 간단치 않다. 첨단 기술과 의료 지식이 필요하기도 하거니와,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기기인 만큼 수많은 테스트와 시험 등 검증과정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말, 서울 강서구 엘메카 본사에서 만난 강정길 대표는 누구보다 이러한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강 대표는 오는 상반기 중, 공개 예정인 의료기기 ‘자동화석션기(모델명 AIS-1000)’ 개발에만 무려 8년의 시간을 쏟아 부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그는 환자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주고 싶다는 확고한 목표 아래 인고의 세월을 버텨냈다.

그래서인디 강정길 대표의 말에는 깊은 울림이 있다. “저희 회사명인 ‘엘메카’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구나 편안한 휴식과 안식을 얻듯이, 저희도 환자와 보호자가 겪는 고통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기업이 되고자 이렇게 이름을 지었죠. 지난 8년은 결코 만만치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저희가 개발 중인 이 제품이 분명 의료계와 환자, 보호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저희의 오랜 꿈과 목표가 현실화되는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기대되고 가슴이 떨립니다.”

◆‘유일무이’한 제품을 만들다

석션기는 전세계 모든 병원에서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의료기기다. 석션기는 주로 자가 호흡 및 컨트롤이 어려운 중증의 환자들에게 사용된다. 대다수 중증 환자들은 누워서 생활하다보니 가래가 생겨도 쉽게 뱉지를 못한다.

하지만 무작정 가래를 방치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칫 가래가 기도를 막아 호흡에 불편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의료진들은 ‘석션기’를 환자의 기도에 삽입, 인위적으로 가래를 빼낸다. 쉽게 말해 석션기는 ‘가래 제거기’인 셈이다.

강정길 대표는 창업 전, 의료기기 전문회사에서 근무하며 처음 석션기를 접했다. 그 당시만 해도 석션기는 회사가 팔아야 할, 그리고 관리해야 할 제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연히 석션기 사후관리를 위해 방문한 어느 노부부의 집에서 그는 창업에 대한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강정길 엘메카 대표. 사진. 구혜정 기자.
강정길 엘메카 대표. 사진. 구혜정 기자.

강 대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셨어요. 할머니가 직접 석션기를 조작해 가래를 빼고 계셨죠. 아무래도 손이 서툴다보니 할아버지께서 너무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자신이 잘 돌보지 못해 할아버지가 아프신 것 같다며 우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니 더 마음이 아팠죠. 그때 불현 듯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람이 아닌 기계가 자동으로 작동해 오차없이 가래를 빼준다면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을 말이죠. 분명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시장 조사에 돌입했어요.”

강 대표에 따르면 2010년대 이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자동화 석션기’ 관련 특허가 출원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특허가 실제 제품까지 이어진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쉽게 말해 특허는 있었지만, 이를 기술적으로 구체화해 상품을 만든 기업이나 사람은 없었던 셈이다.

강정길 대표에게는 오히려 기회였다. 누구도 하지 못한 것을 자신이 해낸다면 시장에서도 분명 열렬한 호응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하지만 역시나 제품 개발은 쉽지 않았다. 수많은 특허가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어느 누구도 이를 현실화시키지 못했던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강 대표는 "기술적으로 해당 모델을 구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필요했음이 새삼 실감났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강 대표는 멈추지 않았다. 가능성 하나만 믿고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분당 서울대병원과 협업을 통해 꼼꼼한 기술 검수와 임상시험도 거쳤다. 좀 더 완벽을 기해야 했기에, 애초 계획했던 기간을 훌쩍 넘겼다. 그렇게 8년의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강정길 대표와 엘메카 임직원들은 머릿속에만 존재했던 ‘자동화 석션기’ 개발에 성공했다.

강 대표는 “이번에 엘메카가 개발을 완료한 전세계에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자동화 석션기”라며 “이미 개발단계부터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제품 도입과 관련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력 앞세워 글로벌 시장 진출

엘메카가 국내외 시장의 러브콜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독보적인 기술력이다. 출시를 앞두고 있는 자동화 석션기는 환자의 객담(喀痰) 수준을 파악해 자동으로 고통 없이 빼준다. 여기에는 산소 포화도를 비롯해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자동 파악해주는 헬스케어 기술과 시스템이 뒷받침한다.

강정길 대표는 “최근에는 몇몇 국가에서 특허를 상품화한 기기를 선보이고 있지만 제대로 된 성능을 구현하지는 못했다”며 “기술력 하나 만큼은 엘메카가 전 세계 최고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강정길 대표가 자동화 석션기를 작동하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강정길 대표가 자동화 석션기를 작동하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1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면서 강정길 대표가 유독 자주 언급하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헝가리’였다. 코로나19가 끝난 후 헝가리로 휴가를 떠나겠다는 낭만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참고로 그는 조만간 헝가리 정부의 특별 초청으로 헝가리를 방문할 예정이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얼마 전 헝가리 현지 시장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엘메카의 제품을 눈여겨 보고 있다며 제품을 보여줄 수 없냐는 거였죠. 당연히 가능했기에 화상통화를 통해 제품을 보여주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헝가리 정부 측에서 연락이 왔어요. 제품이 매력적이라며 아예 헝가리에 제품 제조 공장을 세우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죠. 헝가리에 생산거점을 두고 유럽시장을 공략해보는 내용도 포함돼있었습니다. 좀 당황스러웠지만 너무나 진지하게 접근했기에 저도 다양한 경우의 수를 따져보았죠. 며칠 내로 헝가리정부에서 ‘2주 격리’ 없이 방문이 가능할 수 있도록 관련 서류를 보내올 예정이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결과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벌써부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저희 제품을 찾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고무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엘메카는 향후 해외진출 과정에서 신한은행에서 운영하는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 ‘신한스퀘어브릿지 인천’의 지원도 기대하고 있다. 현재 엘메카는 신한스퀘어브릿시 인천의 ‘글로벌 멤버십’에 속해있다.

향후 해외진출 시 신한금융의 다양한 지원(글로벌 창업지원기관 및 AC/VC 등과의 협력 프로그램 구축)을 받을 수 있다. 이미 글로벌 멤버십 소속 기업들 가운데 일부는 신한금융의 지원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강정길 대표는 “3월 중, 주요 병원을 중심으로 제품 공급을 시작할 예정”이라며 “추후에는 국내외 의료기관과 요양병원, 나아가 가정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기기를 고도화해 나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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